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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여름호)/신작시/낡은 의자 외 1편/김복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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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의자 외 1편
너는 늘 앉아있고 나는 걷기만 했는데 너는 주름 사이 실핏줄이 터지고 짓무른 곳이 너무 많다. 25년 동안 한 곳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으니 웬만한 道는 다 터득한 자세다. 나는 많이도 걸었는데 멈추어 앉을 곳이 없다
양말 속에 감추는 산타클로스의 선물도 몰래 훔쳐보고 비 오는 날이면 거실 유리창에 달라붙은 청개구리들과도 놀던, 차례상에 들르시는 증조부모 얼굴도 모두 기억하는, 군대 짬밥 처음 먹고 휴가 온 아들들의 별 같은 눈빛도 기억하는
이젠 너도 눈감을 때가 되었구나 슬쩍 작은 소리로 말하는 내 말을 알아듣고, 한 십년 그 자리 더 지키겠다고 궁둥이 벽 쪽으로 바짝 끌어당기는
네 몸이 낡고 삭아서 가라앉는 것도 모르고 사람을 앉히는가, 나도 누군가의 의자가 되어 낡아가지만, 네 살가죽 속에서 들려오는 힘에 겨운 소리를 듣는다. 먼 옛날 꽃살내 풍기는 몸이었다는 걸, 아득한 깊이였다는 걸
해바라기 학교
1.
해바라기들이 아프다
무뇌아나
샴쌍둥이다
걸음마도 할 수 없는
해바라기, 휠체어를 탄다
체르노빌에는 해바라기 학교가
많이 있었다 지금은 장애자
해바라기 학교가 더 많이 생겼다
사람은 사람을 만들고 지구는
지구가 제 몸을 만든다
바다는 소금을 만들고
다시마를 키우고
쓰나미도 제 목숨값 하고
사는 걸 막을 수 없다
2.
시금치가 억울하고 흙이
억울하고 바다는 휴업상태다
사람은 이 사건에서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다?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후쿠시마원전. 사건일자:2011. 3. 11
공판조서내역:폐포와 심장기형
판결문:폐수종으로 인한 양수요법이나
폐쇄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콘크리트 폐쇄법 적용
인간:30km 후방으로 추방, 금족령
선고유예:2000년. 원전 1, 2, 3, 4, 5, 6호기.
첨서:지구는 더 이상 묵비권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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