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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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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자
가을 잎 외 1편
몸서리도 없이 떨구고 있다
잎은 있던 자리를
뒤돌아보려는 듯
수직으로 내리지 못하고
머뭇머뭇 비틀거린다.
피서 일기
구나리는 혀를 길게 빼고 헥헥헥, 에어컨에 허천난 집집마다 창문도 열지 않는다. 상가 셧터는 무겁게 입을 다물고 부적처럼 붙은 하얀 종이쪽지에 “휴가”, “휴가”.
가게에 팥바구니 쥐 드나들듯 하던 사람의 발길도 끊겼다. 갑자기 동네가 고요하다. 선풍기도 없이 더운 마루바닥에 잠뱅이 하나를 걸치고 벌렁 누워 모기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며느리의 전화가 왔다. 피서 갈 준비를 하란다. 아들이 장가를 가더니, 이게 무슨 서쪽에서 해 뜰 일이냐, 대충 챙기는 것도 없이 삼십이 넘었어도 마냥 어린애 같은 막내를 앞세우고 차에 올랐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줄기, 푸른 산등성이, 뱀이 또아리를 친 듯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얼마를 가다가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지는 계곡에서 짐을 풀었다. 새막 같은 방갈로가 계곡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우리는 그곳에 두 개의 방갈로를 잡았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마자 막내는 화장실을 간다고 한다. 화장실이 퍼세식이었다. 막내는 죽어도 무서워 못 들어간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사타구니를 비비 꼬는 폼새가 금방 똥을 쏟아놓을 듯 얼굴이 노래진다. 아무리 달래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막내, 그 만자중에 암반짝 같은 넙덕지를 내놓고 푸드득, 쏟아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어머 왠일이야, 하며 벌레를 씹는다. 정신없이 인분을 치우고 방갈로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막상 나도 들어가려 했던 변소깐을 잊고 왔다. 다시 변소를 가려는데 막내 또 급한지 저도 간다고 나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막내의 똥, 막내야 너는 좀 참아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뿔따구가 난 막내 냇가에 깔린 모래를 움켜쥐고 마구 뿌린다. 무심히 방가로에 걸터앉아 있던 사돈 노인이 모래가 들어간 눈을 부비며
비명이시다. 제풀에 놀란 막내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을 무작정 뛰며 도망간다. 막내를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된 며느리의 형부가 엉겹결에 맨발로 따라 뛰고, 신발이나 신고 뛰라고 소리치며 그의 마누라가 신발을 들고 뒤따라 뛰었다. 점심에 쐬주를 납죽납죽 마신 제 형은 방갈로에 널부러져 도망간 동생을 찾아오라고 흔들며 악을 썼지만 날 잡아 잡수 하고 요지부동이다. 막내를 잡아온 사돈들은 얼마나 정신없이 뛰었는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헐떡거린다. 와중에 잊고 있던 내 볼일이 항문을 압박한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화장실, 도무지 관절 무릎이 아파 쭈그릴 수가 없다. 감옥소 식구통 같은 좁은 창구멍의 창틀을 움켜잡고 엉거주춤 배설에 몸부림을 치고 나니 변소깐이 지옥이었다. 밤은 오고 계곡물 속에 물오리 떼 같던 사람들이 각기 방가로로 들어가 화투놀이에 정신들이 없다. 며느리와 아들이 어딜 갔다 온 듯 다가와 가만히 속삭인다. 엄마, 저기 높은 곳에 있는 펜션에 올라가면 양변기 화장실이 있어요. 거기 가서 살짝 보고 오세요 한다. 화투놀이에 한참 열이 오른 나이가 많으신 사돈 양반들, 사돈 양반들은 화장실을 안 가시나요. 응, 우리는 저기 저 위에 가서 슬쩍 했지유 한다. 저기 저 위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날 밤이 깊어 며느리를 따라 높은 펜션을 찾아 올라갔다 대문도 없는 팬션 안으로 들어가 살금살금 화장실로 들어갔다. 막내는 화장실의 양변기를 보더니 무슨 보물단지나 만난 것처럼 너무 좋아 여자 화장실인지도 모르고 잽싸게 들어간다. 앙칼진 여자의 외마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 후닥닥 도망치는 소리가 나고 도망가는 막내 뒤에서 여자는 저 미친 놈 저 미친 놈 하며 소리친다. 방가로로 돌아와 잠을 자려니 어지럽게 꿈틀거리던 꼴짜기를 지워버린 어둠 속에서 계곡물은 더 크게 소리쳤다.
오정자∙2006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풀숲은 새들의 몸을 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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