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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황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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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숙
2리터 심장 외 1편
지하철 바닥에 신문지 깔고 잠든 사내의
심장을 훔치기 위해 내려앉은
영하 18도
독을 품은 칼바람이 발끝부터
스믈스믈 삼키기 시작한다
죄어오는 검은 입을 뿌리칠 겨를도 없이
고통의 수위는 이미 무감각
어둠이 걷히기엔 아직 먼
차디찬 시멘트 바닥
허기진 배를 움켜 쥔
웅크린 잠도 딱딱하게 굳었다
주린 검은 입을 막으려 다가오는
새벽 4시의 발자국들
잠든 사내의 잠을 열고
뜨거운 2리터 물병을 넣어준다
저승사자와 맞서는 심장을 보듬고
뼈를 찌르는 냉기 속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는 자원 봉사자들
노숙자들의 얼음 못 박힌 심장을 바꾸어 준다
술에 취해 잠든 사내의 검은 입술이
붉어지며 관자놀이를 따라 눈썹이 꿈틀거린다
하루를 살아내겠다
11월
덧니를 뺐다
눈물 속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빛났다
반갑지 않은 빗속에서도 시간은 제 몸을 키우고
비바람에 하늘이 흘러간다
열정 없는 카드놀이처럼 지루한 먹구름 속에서
어두운 계단을 밟고 내려간다
선잠이 발끝에 매달리고 불안한 계절의
계단 모서리마다 멈추지 않는 선혈처럼
붉은 곰팡이 옷을 입었다
내 몸에 박힌 뿌리가 끊어질 때
우지끈, 숲이 흔들렸던가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는 내 것도 있어
덧니의 빈자리가 크다
벌목을 마친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서고
겹쳤던 자리 우묵하고
아직 피는 멈추지 않는다
그때, 네 별자리를 세상 밖으로 내놓으면
기나긴 우기가 시작될 거라는
그의 말이 생니를 뺄 때처럼 무덤덤하다
비는 그치지 않고
목덜미를 누르는 불편한 마음짐승
하늘이 파랗게 따뜻해지도록
과하시過夏柴 몇 장 지펴본다
황경숙∙2009년≪애지≫로 등단.
추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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