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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고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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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24회 작성일 11-06-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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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산
언어들이 쌓이다 외 1편


빛이 어스름의 목울대 주위에서 붉은 울음 주워 담고 있다
먹잇감 찾는 갈매기는 부리를 허공에 비비며
빈 허파 속에 오늘을 채워간다
먼 곳의 뱃고동은 직선으로 뻗어 내 귀에 닿는다
이 직선에는 항상 가장 빠른 길을 선호하는
단단한 철학이 있다 
뻗침의 블랙홀은 완벽한 방음벽이다
만약 장례식을 한다면,
이 벽이나 뻗침이 끝나는 곳에서 해야 한다
해변 모래 사이사이 희로애락이 고여 있다
모래틈에 궁서체로 쓰여지는, 오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억샛빛 인연들,
수천 년 전부터 이곳에 만남 흔적들,
시간은 돋을 새기고 지운다
낙화암에서 3천 궁녀가 죽기 전
이 해변의 모래를 밟으며, 궁녀들은
비밀유서를 모래틈 사이에 고이고이 끼워 넣었다는
풍문과 같은, 이런저런 말의 뼈다귀들이 어지러이 놓여 늙어간다
허공이 어떤 사연의 살빛에 물들지 않은 저녁녘이지만
내일, 잘 모르는 연인이 이곳 모래틈에 먹빛 문장 하나
쓴다는 말이 있다
  
안개 짙은 언어들이 모래틈에서 늙으며 쌓인다






힘의 落花 


나무 줄기손의 악력이 미치는 파장으로
이파리가 태어난다
악착 같이 힘을 모아 수직으로 수평으로
미세한 퇴적층이 끝에 모여 자란다
옆으로 자라는 만큼 
위쪽의 공간도 자리를 알맞게 내준다
땅의 짱짱한 결을 찢으며 
밑으로 파고드는 뿌리의 푸른 혈관이 굳세다
  
바람이 하늘의 아래쪽
흰 눈썹 만지는 사이에도,
사방으로 수만 분의 1mm씩 자란다

지구에 흠집을 낸지 수백 년, 
허공의 상처를 수없이 쓰다듬으며
일정한 크기를 가진다

이파리 하나 한 획을 매끈하게 그으며
지상에 닿을 때 쯤
붉게 물든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일정한 크기의 모양이 사라지면
땅 속 핏줄의 흐름이 멈춘다
사방으로 미는 힘도 落花한다

고은산∙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말이 은도금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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