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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최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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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돈
빨래 외 1편
고요가 흐르는 거실에서
아내와 함께 젖은 빨래를 널고 있다
빨래는 조금씩 마르고
세월의 모퉁이에 추억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나는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한 칸 두 칸 채워가면서 알았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채워지는 게 아니고 스스로 채워가는 것이라고
머무는 게 아니고 스스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젖은 빨래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제 몸 구석구석이 마르듯
세월의 행간에 붉은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한 칸 두 칸
젖은 빨래를 채워가면서 알았다
창가를 넘어온 햇살 한 움큼,
젖은 옷깃에 앉아 평화로이 쉬는 동안
나는 오늘도 내 삶의 물기를 툭툭 털어
착착 널고 있다
의자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어도 괜찮다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어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다
종일토록
마음을 비우며 살아가는 공원의 빈 의자 어깨에
하루를 건너느라 몹시 지친 한낮의 고요가
잠시 쉬었다가 간다
해질녘
텅 빈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의자가
세상을 끌어안고 고요에 묻혀 있다
의자는 비어 있을수록 더 깊어진다
비어 있을수록 그리움이 더 쌓인다
푸른 내일을 준비하는 순간들로 가득한 의자 옆,
추억의 그림자를 데리고 온 바람이
의자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간다
최해돈∙2010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시집 <밤에 온 편지>, <기다림으로 따스했던 우리는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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