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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송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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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선
초 외 1편
고요가 흐르는 거실에서
어둠을 밀어내는 순간, 일회용이 되네요.
밤과 대추, 그리고 곶감을 차례로 깨우는 불빛이
뿌리만 살짝 태우네요.
담배꽁초처럼 피워내지 못한 꽃의 시간들이
제상 밑으로 흘러내린 그림자를 만지작거리고 있네요.
예고 없는 정전이라도 부를 듯
초혼가를 읊조리는 할아버지 손바닥 위에서
꿈틀, 바람은 혼백이 돌아가야 할 길을
서둘러 재촉하지만
마흔이 넘도록 분내 한 번 맡아본 적 없는
아들놈의 눈자위, 스위치가 없어 해마다 정전이네요.
어매 제사상에 술 한 잔 칠 줄 모르네요.
대문 나서는 할머니 발끝에서
촛농이 잠시 멈추어 쿨룩거리던
서까래의 얼룩을 지우네요.
발목까지 내려온 심지 사이 새끼줄처럼 비비 꼬여
어물쩍 끌려가는 할머니 못다 태운 시간들이
문 없는 벽 속으로 초조하게
숨어드네요.
감또개
―그림자 밑의 청중들
그가 없이는 어떤 행사도 거행할 수 없다 바짓단은 모심기 나가려던 참인지 양말 모가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햇빛이 발을 뻗어 그의 얼굴을 쓰윽 문지른다 콧구멍 후벼 파던 손끝에서 청중들의 표정은 두루마리화장지처럼 풀어지지만 까까머리들은 훌쩍훌쩍 종이컵으로 누런 코를 함께 나눈다 행사장을 지휘하는 총싸움 소리가 바싹 마른 꼬투리처럼 새까맣게 하늘을 지저귀는 시간, 비뚜름하게 머리 위에 얹힌 새마을모자와 준법정신이 새겨진 노란 완장 하나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다 그의 호루라기 소리에 후닥닥 청중들의 그림자마저 새가 되어 날아오르고 마침내 그는 꺾인 어깻죽지에 수염을 붙이기 위해 나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손톱 밑에 때가 새까맣게 낀 손가락을 분질러 청중들에게 나누어 준다 애드벌룬 아래, 검정고무신을 내려놓은 그의 웃음은 뚜껑이 없다
감나무는 쓸데없는 청중을 버린다
송미선∙경남 김해 출생. 2010년 ≪시와경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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