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41호 (봄호) 반수단상/ 박익홍 시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95회 작성일 11-12-20 22:56

본문

콘크리트 틈새에 핀 민들레꽃

―전문계 고교에 진학한 여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동화

박익흥|시인




봄이 다할 무렵, 민들레꽃은 시들고 그 자리에 하얀 솜털을 낙하산처럼 펴든 작은 씨앗들이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모두들 설레는 마음으로 어느 바람을 타고 어디로 날아갈까? 기대반 설렘반으로 씨앗들은 서로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과 앞으로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거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지요.

“얘들아! 이제 우리는 헤어질 때가 되었어.”

“그래. 바람만 불어오면 우린 그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가겠지!”

그러는 대화 중에도 작은 바람은 불어 낙하산처럼 펴든 솜털을 흔들고 갔습니다.

“좋은 바람을 만나야 할 텐데. 그치?”

“그래, 너는 분명히 좋은 바람을 만나 좋은 땅으로 날아가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 거야!”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모두들 무거운 마음으로 서로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막내씨앗인 꾸미는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언니씨앗들은 초여름의 햇빛을 충분히 받아 일찍 알맹이가 꽉 찼고, 그리고 솜털도 뽀송뽀송히 충분히 펼쳐 바람만 웬만큼 불어 준다면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좋은 땅에 내려 쉽게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꾸미는 아직 채 영글지도 그렇다고 솜털도 충분히 펼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같은 배에 타고 있었지만 이제 헤어져야 해! 모두 모두 다른 세상에 나아가서 뿌리를 잘 내리고 예쁜 꽃을 피우자!”

그 때, 한줄기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낙하산처럼 솜털을 활짝 펴든 씨앗 몇이 그 바람을 둥실둥실 타고 멀리 날아올랐습니다.

“얘들아! 먼저 간다. 나중에 다른 바람을 만나 좋은 곳으로 가렴.”

“안녕!”

“안녕……!”

모두 슬픔을 감춘 채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불어오는 다른 바람을 타고 모두들 둥실 하늘로 날아올라 부푼 꿈만큼 각자 미래의 세상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아주 기름진 땅에 가서 앉았으면 좋겠네.”

“그래, 그럴 수 있을 거야!”

바람(願)처럼 정말 좋은 바람(風)을 만난 씨앗은 기름진 땅에 닿을 수 있는 행운에 무척 기뻐했지요.

“이렇게 기름진 곳에 내려앉다니 이건 행운이야! 그렇지만 나의 노력도 있었지.” 하며, 먼저 날아간 씨앗은 좋은 땅에 안착한 것을 뛸 듯이 기뻐했지요. 봄날의 햇볕을 듬뿍 받으려했던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도 잊지 않으며….

그런데, 막내씨앗인 꾸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꾸미도 바람을 만나 하늘로 날아올랐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요? 꾸미는 다른 씨앗들이 떠난 후, 그리운 마음을 담아 좋은 바람이 불어와 자신도 실어 다른 씨앗들이 내린 곳에 가기를 학수고대했지요.

하지만 꾸미를 실어 내려놓은 곳은 원망스럽게 콘크리트로 포장된 어느 학교의 등굣길이었답니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옆으로 금이 간 콘크리트의 틈새에 내릴 수 있어 간신히 흙에 발을 담글 수 있었지요.

꾸미는 낙담을 하였답니다.

“이런 곳에 내리다니! 나는 이제 꿈도 희망도 하나도 없는 거야!” 하며, 깊은 슬픔에 잠겼지요.

하지만 멀지 않아 추위가 몰려오고, 눈이 자신의 키보다도 몇 배 높이 쌓여진다는 걸 알고 있기에 몸을 움크려 콘크리트 갈라진 틈새의 흙으로 몸을 밀어 넣었지요.

그 후, 눈이 내렸어요. 하얀 눈을 이불삼아 며칠간 잠이 들었는지? 잠을 깨우는 새소리와 따뜻한 봄기운에 기지개를 켰어요.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 봄이 온 거예요. 하지만 돌아보니 여전히 비좁은 갈라진 틈새일 뿐…….

한편, 바람을 잘 만나 기름진 땅에 앉은 씨앗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하나 마나 봄을 맞아 쉽게 뿌리를 뻗고 거름을 듬뿍 먹고 무럭무럭 자랐지요. 그리고 아주 쉽게 꽃도 피울 수가 있었지요. 무척 자랑스러워 주위를 돌아보았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주변에는 자신처럼 기름진 거름을 먹고 늘씬늘씬하게 크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이름도 모를 예쁜 꽃들이 주위를 온통 감싸고 있었어요.

더 초라하고 슬프게 만든 것은 아무도 키 작고 그리 예쁘지도 않은 자신에게는 눈길 한번 주는 이가 없다는 거였어요. 지나가는 벌, 나비마저도 내 얼굴에는 입맞춤 한번 없었어요. 기름진 땅에 내려 기뻐했던 마음은 어느새 긴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지요.

하지만 꾸미는 달랐어요. 용기를 내기로 했지요. 그리고 열심히 비록 메마른 갈라진 틈새의 땅이라 하여도 온갖 힘을 다해 뿌리를 내렸지요. 그리고 스스로 노란 꽃을 피워 올렸답니다.

콘크리트 갈라진 틈새에 핀 노란 한 송이 꽃!

등교하던 한 아이가 소리를 쳤어요.

“이런 곳에도 꽃이 피었네.”

자나가던 모든 아이들이 꾸미 주위로 몰려들었어요.

“정말, 이런 틈새에서도 꽃을 피웠다니 정말 대단한 꽃이야. 그치?”

꾸미는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이런 곳에 나를 내려준 바람을 원망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주변에는 다른 꽃들이 없었지만 벌, 나비가 수시로 찾아와 함께 놀아 주었고 아이들도 수시로 찾아와 격려해 주었습니다.


꾸미는 새삼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닌 결정에 슬퍼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극복하기 쉬운 것은 남도 쉬게 극복하게 되는 것이며, 오히려 역경을 극복했을 때 더 많은 박수를 받는다는 것을…….

전문계에 진학하신 여러분!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전문계를 진학하였다면 지금이라도 용기를 버리지 맙시다. 내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역경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쉽게 극복한답니다. 쉽게 극복된 역경은 그 뒤에 박수갈채는 따르지 않는 법이지요.

지금, 자신이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이 있었다면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상황이 위 동화의 ‘꾸미’처럼 여러분에게도 더욱 다른 이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드러낼 행운을 잡은 겁니다.





콘크리트 틈새에 핀 꽃

       ―교정의 콘크리트길 갈라진 틈새에 핀 민들레를 보다



나는 보았어!

그렇게도 굳어 보이는 콘크리트에도

세월의 틈새로 바람이 불면

금이 간다는 걸

굳건하던 우리의 젊은 날에도

바람은 불겠지!

얘들아! 우린 보았지

그 틈새에 핀 꽃을,

말 없이 말 없이 우린 보았지만

거대한 나무마저 차가운 가을 하늘을

무거워 무거워 잎새를 비우는데

아무런 생명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없는

콘크리트 차운 틈새에

열아홉 우리의 여린 가슴보다

더 부끄럽게 실뿌리를 내리고

잎새 떨구는 날에 피워 올리는 가냘픈 생명의 의지,

노란 민들레.

우린 진정 부끄러웠어!

피워야할 것을 모르는 채 달려온 우리

이제야 부끄럽게 네 꽃잎을 보며

새삼 고개 숙여지는 노란 꽃잎의 교훈

알았어! 알았어!

지금 내 삶이

어두운 콘크리트 틈새를 걷고 있다하여도

내가 피워야할 꽃잎이 무어라는 걸

나는 안 거야! 민들레 노란 네 꽃잎

 

       박익흥∙1990년 ≪인천문단≫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꼴값하기 사랑 알레르기. 문성정보미디어고등학교 교감.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