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42호 (여름호) 권두칼럼/ 장이지 시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19회 작성일 11-12-22 22:59

본문

혁신에 대한 소회

장이지



    ≪리토피아≫는 그동안 40호를 넘겨오면서 종합문예지를 표방해왔다. 그러던 것이 이번 42호부터는 시 전문 문예지로 그 성격을 달리하게 되었다. 종합문예지 10년의 소회를 어찌 일설로 다 말할 수 있겠는가마는, 진땀을 뺐다고 하는 표현이 이 경우 잘 들어맞는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리토피아≫에 좋은 소설을 주셨던 여러 동료 소설가들이 없었다면 실로 어땠을까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리토피아≫가 새로운 10년을 출발하는 제2의 원년에 이르러 또 다시 동료들의 호의에만 기댈 수는 없다고 우리는 판단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역량을 시에 한데 응집시키자는 데 합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리토피아≫는 그 출발에서부터 김구용의 시 정신에 빚진 바가 컸다. 지난 2월 26일에 있었던 김구용문학제는 그런 의미에서 ≪리토피아≫로서도 하나의 전환점이 아닐 수 없었다. 김구용시문학상이 만들어지고 제1회 수상자로 권정일 시인이 결정되어 그 시상식이 그날 있었다. 그것과 함께 제1회 리토피아문학상(김승기 시인 수상)의 시상도 함께 이루어졌다. 잔치 분위기는 만들어진 셈이지만, 시 전문 계간지로서 김구용의 시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은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이것은 전혀 겸사가 아니다. 지금의 분위기는 김구용이라는 위대한 시인의 시를 되새기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김구용이라는 이름을 벗어나고 넘어서야 한다. 시의 수준에서의 어떤 극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김구용의 시 정신을 21세기에 앙양하기 위해서는 김구용을 회고하는 분위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분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응당 ‘원수를 갚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 전문 계간지’ ≪리토피아≫의 당면 과제는 바로 이 언저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호 권두칼럼에서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취지의 문장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좋은 시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시인들 각자가 저마다 한 가지씩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여기에 좀 헛소리를 보태어보고 싶어졌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좋은 시를 가장 잘 고르는 것은 역시 대형 출판 자본이라고 본다. 좋은 시가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말이 하나의 진실인 것처럼 좋은 시가 어떤 것인지는 지나칠 정도로 잘 알 수 있다고 하는 말도 하나의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좋은 시는 참으로 쉽게 눈에 띈다. 시 자체만 놓고 시가 잘 되었네 못 되었네 하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거의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잘 되었네 하는 시가 좋은 시라는 것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시를 쓴 사람이 곧바로 좋은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거슬리는 표현을 써보았다.

    그렇다면 좋은 시인은 어떤 시인인가. 술을 잘 사는 시인이 좋은 시인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자기 일처럼 사랑하는 시인이 좋은 시인이냐 하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그는 ‘좋은 사람’이겠다). 제법 선적인 풍모를 시의 안팎으로 갖춘 시인이 좋은 시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그는 도인이다). 결국 좋은 시인은 자신 만의 시 세계로 가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자기 시 세계가 있는 사람은 시대적 요청―그것이 반드시 정치적인 것일 필요는 전혀 없다―에 부합하지 않는 시는 쓰지 않을 것이다. 자기 시 세계가 있는 사람은 사회나 역사에 대한 태도가 명확히 서 있어서, 어디에서건 할 말은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 시 세계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시 세계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자기 시에 대해 회의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아집 속에서 생명 없는 시만을 쓰다가 세상으로부터 잊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토피아≫는 대형 출판 자본도 아니고, 인천을 중심으로 한 잡지이기 때문에 중앙의 문단과도 변별되는 변방에 있는 문예지이다. 그러나 ≪리토피아≫는 대형 출판 자본과 완전히 격리된 어떤 이상한 세계에 속해 있는 매체가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문학을 배척하는 집단도 아니다. 어떤 문학동아리에 가면 그 회원이라는 사람들이 창비시선이나 문학과지성 시인선에서 시집을 낸 시인들은 이름조차 모르고 오직 그 문학동아리의 ‘선생님’만을 떠받치는데, 그런 동아리가 진정 한국문학에 눈곱만큼의 이바지라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리토피아≫는 지역 문학 매체이지만 지방에서 고립되는 것을 자청하지 않고, ‘다른 문학’을 질투하지 않고 존경하는, 자생적 담론으로 이상적 세계를 만들어가는 문학을 추구하는 매체이다. 그것은 종합문예지 시절부터의 우리의 꿈이지만, 시 전문 계간지로 출발하는 이 시점에서도 그 꿈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혁신 개편과 더불어 편집진에도 다소 변동이 있었다. 지난 호까지 편집에 헌신적으로 임해 주셨던 전임 편집위원 선생님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그분들이 안 계셨다면 ≪리토피아≫는 아마 지금과 같이 건강한 매체로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새로 편집진에 합류한 분들과 함께 더욱 좋은 문예지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전임 편집위원 선생님들에게 드리고 싶다.

    이번 호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들을 깊이 읽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 코너가 한국 현대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틀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 또한 대학생들의 시 감상 코너도 마련했다. 이 코너는 다른 문예지에는 없는 형식인데, 문학에 대한 후속세대의 관심을 촉구하는 의미의 기획이므로 좀 서툰 글일망정 애정 어린 격려를 부탁드린다. 이번 호의 모든 필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2011년 봄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