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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박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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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혜
반달 외 1편
확 트인 겨울 논 한 켠에
조그마한 상수리나무 동산이 있다
그 동산에 등을 기댄 고즈넉한 집 한 채,
어둠이 내리자 창에 불이 켜진다
연극 무대 같다.
함박눈
밤새 눈이 쌓여
우리집 마당도 눈밭이고
마당 건너
쌍둥이네 고추밭도 눈밭이다
겨우내 뽑지 않고 버려둔
고춧대 사이로
고라니 한 마리 슬쩍 보인다
오랫동안 고개 묻고 있더니
시선을 느꼈는지
겅중 일어나
산 쪽으로 재빨리 사라진다
쨍쨍한 햇살에
쌓인 눈 반짝이는데
눈은 녹지 않는다
눈으로 경계가 없어진 논들,
오후 산책으로
쌓인 눈에 발자국 찍으며
논둑길을 걸어 나가는데
내 인기척에
먹이 놓친 고라니 한 마리
또 겅중 겅중
재빨리 달아난다
내가 배가 고프다
눈 속에 발자국 두고
찻길을 건너려는데
찻길에 덩치 큰 고라니 한 마리
누워 계신다
그는 이제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박서혜∙1982 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시집 <울창한 숲이 묻는다>, <입술>, <하늘의 집>, <하늘 어귀>. 화답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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