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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홍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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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61회 작성일 11-06-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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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뱀 이야기 외 1편


말의 머리를 비틀어 슬그머니 말을 넘어서는 당신의 수사학은 지금 봄입니다
긴 막대기를 들어 말을 걸어보지만
둥글게 몸으로 풀어내는 방언은 모서리를 휘감는 시냇물 정도나 알아듣겠지요
한없이 느리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미시령 고개쯤이나 돼야 눈이 좀 뜨이겠지요

솔숲에서 지저귀던 참새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일제히 입을 닫는
저는 어느덧 저녁입니다

말 밖의 말을 새들도 알아듣습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저는 들통 난 불륜이지요
그러니 조용히 밤처럼 눈감고 지나갈 뿐입니다

몸 무거운 말들이 후둑후둑 떨어집니다
하늘에 오르지 못한 이무기처럼
거울 속의 입들이 무색해집니다
말 밖의 말이 무성해지고
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입과 귀가 아픕니다

귀를 잘라낸 뱀이 한 번 더 길게 구부러집니다
바닥에 떨어진 몇 개의 말을 줍다가 입이 반쯤 돌아가는 것은
혀를 버린 겨울 탓만은 아니겠지요

 

 

 


천국


밤의 중심을 잘라 보면 어제도 내일도 없고 눈앞의 자정은 수백 번 나이테 속을 도는데 아무도 꺼내주지 않네 비가 온 다음날도 눈이 그친 날도 밤의 틈새에 끼어 무쇠 팔 무쇠 다리 겨울을 통과하네 안전모 속에는 반납한 머리통 대신 딱딱한 공중만 남아 있고

위험한 오후가 폭발할지도 몰라 스위치를 내려야 하는데 아무리 뒤적여봐도 내밀 손이 없네 주머니에는 곯아 터진 열 개의 손가락이 흐물거리고 모자 속에는 발기한 교회 첨탑이 불뚝거리고 있네 경보기는 늙은 경비원에게 아침까지 젖을 물리며 단풍잎처럼 취해 있지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심장을 드러낸 냉동공장 유리창마다 식은땀이 흐르네 8시 교대조가 머리통을 내려놓고 나이테 속을 뱅글뱅글 돌아나가네 아무도 슬프지 않고 아무도 아프지 않아 특급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밤의 제국으로 실려 가고 푸석푸석 부서지는 머리를 조심스레 들고 나가네 눈 속에 눈이 없는 아침이었네


홍일표∙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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