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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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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사막의 저격수 외 1편
열 개의 손가락이 절벽을 두드린다
툭 툭
입 모양이 일그러진다 벌어진 입술
혀는 정직하게 자신의 의자를
고집한다
뜨거운 모래 사막
하얀 절벽
허기진 대머리 독수리가 절벽 끝에서
응시하는 얼룩말의 시체
늙은 선인장의 눈썹이
모래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 독수리가
확 낚아채는 사냥감
콕, 콕, 쪼아대는 부리
고백실로 양떼를 밀어 넣는 양치기처럼
말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혀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딱딱한 고체들
고백할수록 미로에 빠지는 혀
사막의 살갗을 건드리는 열 개의 손가락
혀는 저격수처럼 입천장에 붙어 있다
단단한 구름
무기수 감방의 창살 틈새를 뚫고
솟아오르는 풀
저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출구를 찾는 눈빛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하얀 창문
애인이 아니면 싫어, 그는 투정을 부린다
문을 부수고 벽을 부수고 애인을 껴안고
냉정한 사람은 뜨거운 오븐 안으로
걸어간다
silence, silence, silence
풀이 휘어져 그의 어깨에 기대는 소리
보수주의도 좌파도 아닌 풀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가
silence, silence, silence
김혜영∙1997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 부산대 강사. ≪시와 사상≫ 편집위원. 웹진 ≪젊은시인들≫ 발행인. 애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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