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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진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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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령
축구를 보다가 외 1편
생은 호나우두
나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현란한 드리불 신기의 발재간에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까이고 또 차였다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나를 몰아넣고
걸핏하면 불행 쪽으로 패스했다
가끔은 선 밖으로 멀리 날아가
돌아올 길을 잃기도 했다
로스타임이라고도 하고
엑스트라타임이라고도 하는 인저리 타임
어떤 쪽으로 부르든 전성기의 시간은 아냐
이미 기울어진 전세에 죽자고 뛰어봤자
뒤집힐 판세는 아니지만
주심이 손을 들 때까지
좀 더 헐떡이며 굴러다녀야 한다
더 허용된 만큼 더 고단할 뿐이지
얼핏 보면 꽤 챙겨주는 것 같지만
여기저기 부스러기 시간들을 모아두었다가
딱 그만큼만 얹어주는 인색함이랄까
하긴 호락호락한 생이 어디 있나
실밥이 터져 쭈그러진 채 창고에 처박히기까지
길 위의 고단함이라니
누군가 내게 인저리 타임을 주겠다고 하면
단호히 거절이야 난 지금도
내가 사는 시간이 그거 같거든
큰 새
알타이에서는 야생 독수리를 길들여
짐승을 사냥한다
처음 독수리를 잡아왔을 때 눈을 가린다
눈을 가리운 독수리는 싸우지도 날지도 못한다
물도 먹이지 않고 잠도 재우지 않는다
진을 빼기 위해서다
무기력도 학습* 된다
큰 새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높이 떠서 멀리 날지
아버지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조롱에서 길러진 작은 새
모이와 물 한 모금에 길들여진 겁쟁이
우는 새, 울어서 사는 새
새가슴 새대가리 새 발에 피
독수리에게 먹이를 줄 때 침을 뱉는다
주인이 누구인지 각인 시키지 위해서다
침 속에 고유의 체취가 독수리의 기억에 입력된다
큰 새라고 자유를 누리는 건 아니다
하늘은 넓지만 그곳을 맘껏 날 수 있는 새는
구속되지 않은 새다
자유는 학습되지 않는다
*마틴 셀리그만..
진해령∙2002년 ≪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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