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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봄호) 김구용 시의 여성 이미지/ 민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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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52회 작성일 11-05-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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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 시의 여성 이미지

―구원과 생성의 여성상

민 명 자 |문학평론가




1. 서론

시대를 앞서 간다는 것은 고독을 수반한다. 보편적 인식의 틀은 종종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김구용金丘庸(본명 영탁永卓, 1922∼2001) 시인은 평생을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문학적 모색으로 일관하여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반면 외로운 길을 감내해야 했다. 당대의 상식과 인습을 깬다는 것은 고독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난해시인’이라는 별칭도 그러한 고뇌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등단을 한지도 반세기 이상이 흘렀고 사후 10년에 이르렀다. 그가 남긴 문학적 유산들은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문학을 사랑하는 연구자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김구용이 등단을 한 것은 1949년이다. 김동리가 추천을 하였으며 발표작은 「산중야」(≪신천지≫, 10)이다. 당시에는 김수경金水慶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등단 후 그는 활발한 창작활동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 현대문학사 제정 제1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69년에 첫 시집 <시집 ·1>(삼애사)을 상재하였다. 이를 필두로 <시>(조광 출판사, 1976), <구곡>(어문각, 1978), <송 백팔>(정법 문화사, 1982)을 차례로 선보인 후 2000년에 전집을 상재함으로써 우리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2001년 제 36회 월탄문학상 수상을 끝으로 당년 12월에 애석하게 영면을 하였다.

김구용 시에 대한 연구는 시형식과 기법, 시 정신에 대한 연구로 대별된다. 시 형식에서는 산문시에 대한 논의가 주종을 이루며 대체로 단형의 산문시가 호평을 받는 반면 장형의 산문시는 혹평을 받는다. 기법에서는 초현실주의와 모더니즘, 시 정신에서는 자의식의 양상 및 노장사상이나 불교적 세계관과 관련된 논의가 주종을 이룬다. 전반적인 흐름으로 보면 초기 연구는 대부분 월평이나 서평 등 단평 차원에 그쳤으며 1980년대부터 텍스트적 접근이 차츰 활발해져 시인의 영면 이후 본격적인 텍스트 연구가 느는 추세다. 대상 텍스트도 초기에는 산문시에 한정되었다가 점차 <구곡>, <송 백팔>, <구거>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것은 시집의 출간 시기와도 일정 부분 흐름을 같이 하며 학위논문이 기여한 바도 크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시집 <시>와 관련된 논의가 주종을 이루는 반면 <구거>에 대한 평은 극히 드물다.

본고에서는 김구용 시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의 시세계를 살필 것이다. 김구용의 시에 여성과 연관된 시어가 다수 등장함에도 이와 연관된 연구가 많지 않은 점에 주목한 것이다. 김구용은 ‘어머니, 소녀, 처녀, 여자, 아내, 매춘녀, 양공주, 산모, 그녀, 마리아’ 등 여성과 연관된 인칭대명사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이들 시어는 인칭대명사이긴 하지만 꼭 사람만을 지칭하지는 않으며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호명의 방식으로 존재를 형성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이 투영되며, 이에 상상력이 결합하여 이미지로 표출된다. 이렇듯 시인의 인식론적․존재론적 사유의 집합체인 이미지는 시의식의 변모와 구현양상을 밝히기에 유효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김구용의 시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를 살피되, 남성과 여성의 성차를 전제로 하는 페미니즘적 접근보다는 시인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이미지의 양상을 밝히는데 비중을 둘 것이다. 김구용의 시에서는 “이미지와 이미지, 의식과 의식의 충돌”이 난해의 한 요인이 되기도 하므로 이러한 고찰은 난해의 회로를 여는 하나의 문이 될 것이다.


2. 모성과 구원의 여성상

김구용의 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어머니’로서의 여성상이다. 김구용은 시와 일기 등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표출한다. 시인의 어머니는 한국전쟁 중에 피란지에서 별세하였으며, 금강경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실 정도로 불심이 돈독한 분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는 말은 ‘죽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과 같았다고 하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에서 어머니에 대한 심상이 표출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①산속 자세가 균형진 고요에서 꾀꼬리의 평화한 음색이 일어난다. 나도 법칙과 차별과 습성을 버리고 깨독 기름을 바르고 싶다. 산들바람에 힘 있고 유위有爲한 나무가지들이 제 모습을 흔들면 하얀 꽃들이 흩어진 수면水面도 옛 고향을 생각하는 피리 가락으로 팔랑거리면서, 서로 대답하는 녹음의 영형映形에서 나는 어머님을 분명히 본다. 나무들은 꽃 사이로 잎 사이로 하늘의 조각 밑으로 구름 밑으로 고기와 가제들이 노니는 물을 굽어보며 그리고 제 얼굴을 비추어 보며 만족하고 있다. 여러 가지 변화가 생동하는 순수한 산소山沼에서 나의 꽃은 나무를 우러러보며 지난날의 어머님과 대화하는 명상이 있다.

―「깨독나무」 부분(1953년)


②폐허의 해바라기를 보게나/내 마음에/부활하신 어머님은/관세음보살,/그 원광圓光을 받아/무성한 그림자는/어머님을 감돈다./꽃술의 금빛 반사는/내 전생前生/밤의 종소리

―「해바라기」 전문(1950년)


위의 시는 어머니에 대한 심상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①에서 화자는 깨독나무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시인은 깨독나무를 보면서 어머니와의 일화를 떠올렸을 듯하다. 시인의 어머니는 깨독나무에 열매가 잔뜩 달린 모습을 보고 자식을 여럿 두어 고생하는 부모에 빗대면서 ‘이 세상에 아무리 꽃이 많아도 자식만큼 좋은 꽃은 없다’고 하거나, 깨독나무 기름을 머리에 발라 이[蝨]를 없앴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인에게 깨독기름을 짜다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 깨독나무는 어머니의 영혼이고 말씀 그 자체이며, “깨독나무 기름”은 내적 치유를 위한 어머니의 손길이며 영약과 같다.

이 시에서 ‘깨독나무/어머니’, ‘수면 위의 꽃/화자’는 각각 상방과 하방에 위치한다. 깨독나무는 어머니가 자식을 굽어보듯 “제게서 떨어진 꽃들을 굽어”보며 상방에 위치하고, 수면 위의 깨독꽃들은 어머니를 쳐다보듯 하방에 위치한다. 화자는 이러한 정경에서 어머니의 영상을 떠올리며 영적 대화를 나눈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그늘을 만들고 새들을 깃들게 하여 은신처를 제공하고 생명을 키움으로써 모성적 존재로 상징되곤 한다. 화자는 깨독나무가 자연의 법칙 안에서 만상과 조응하면서 생명을 키우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인위적인 “법칙과 차별과 습성을 버리고” 무위자연과 만물제동의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 세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②의 시에서 화자는 척박한 땅에 뿌리내려 꽃을 피운 해바라기에서 어머니와 관세음보살의 원광을 감지한다. 원래 관세음보살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통성通性’임과 동시에 남녀를 초월한 ‘초성超性’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중생이 바라는 대로 남성이 될 수도 있고 여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관세음보살을 어머니와 동일시함으로써 모성적 특성을 부여한다. 반면 어머니는 관음처럼 화자를 깨달음과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종교적 존재가 된다. ‘세상의 소리를 본다’는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그 이름을 부르면 자비로써 구제해주며 “위로는 아미타불에게 발원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보살이다. “폐허”, “무성한 그림자”, “밤”은 화자가 처한 어둡고 황량한 시공간과 무의식의 그늘이다. 화자는 모성적 원광을 통해 내적 어둠을 소멸하고 애초에 부여받은 것과 같은 순수 빛의 세계로 환원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화자의 무명을 깨치는 종소리와도 같다. 그 구현과정에서 해바라기는 시각에서 청각으로, 영상에서 소리로 전이되면서 감각적 이미지의 양태를 보여준다. 해바라기가 향일적 존재임을 감안하면 ‘어머니/관세음보살/태양’이 원광으로서 동등한 가치를 부여받고, ‘해바라기/화자’가 향일적 존재로서 등가를 이룸으로써 각각 상방과 하방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위의 시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을 대상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하고 모성적 손길 안에서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면서 감각적 이미지의 양태를 보여준다. 다만 어머니의 심상이 ①에서는 혈연적이며 ②에서는 종교적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어머니와 관세음보살의 등가는 다른 시에서도 볼 수 있다. “관음은 나의 어머니, 내 내부에 계시니/그 자체는 사자死者들이 흙 위에 건립되는 시가를 굽어볼/다음날 수목의 눈동자에도 생명할 것이다./관음은 모든 마음이기에 어느 실내의 저녁/노을에서나 음향에서나 우상을 보지 못한다.”(「관음찬·Ⅱ」 부분)에서는 관음이 어머니로 인격화된다. 이 시에서 세계를 굽어보는 관음은 화자의 마음에 살면서 생명을 주는 모성적 존재다. 이는 또한 대지의 모성으로 확장되어 수목은 물론 죽은 도시에 속한 존재전체에 두루 생명을 줌으로써 그 어떤 우상도 용납될 수 없을 만큼 절대적 위치에 자리한다. 시각과 청각을 이용한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이 위의 시들에서 보인 것과 같다.

어머니는 그릇으로도 표현된다. “조선 자기磁器를 눈[眼]으로 쓰다듬으면/어머님의 검버섯 핀 손이었네”(「1곡」 부분), “어머님의 백자白磁는/우리들의 시간, 그 이전부터/피가 순환하였다.”(「7곡」 부분) 등에서 보듯, 어머니는 “자기” 혹은 “백자”와 등가를 이루면서 인고의 시간 및 영속성과 결합한다. “검버섯 핀 손”, “피가 순환”에서 영구한 시간에서의 생명성을 볼 수 있다. 흔히 그릇은 여성의 ‘몸-자궁’에 대비된다. 자연의 자궁인 대지가 흙과 물로써 새 생명을 키워내고, 흙과 물로 빚어진 “자기”가 오랜 세월 풍상을 겪으면서도 변치 않고 무無의 공간에 유有를 담는 그릇이 되듯, 어머니는 피의 순환과 비의 속에서 새 생명을 키워내는 ‘존재들의 그릇’인 것이다. 한편 모성을 최고 가치로 삼는 노자는 도道를 빈 그릇( <도덕경> 제4장)과 곡신현빈(谷神玄牝, <도덕경> 제6장)에 비유했다. 김구용이 노장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을 감안한다면 김구용에게 있어 ‘자기磁器로서의 어머니’는 혈연관계를 넘어 도道에 가까운 지고지선의 진리나 그에 비견될만한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김구용의 시에서 어머니는 고향으로 귀결된다. “고향은 이제 없는/내 어머님의 가슴”(「7곡」 부분), “우리의 고향은 어디인가/세계의 고향은 어디인가/인간의 고향은 어디인가/마음의 고향은 어디인가//그의 몸이/그의 고향이지만/마음은 고향을/찾아 헤맨다.//어머님이 평생 부르셨던/관세음보살은 그에게 말한다./“대비大悲는 눈을 뜨거라/대자大慈는 보아라.”(「7거」 10 부분) 등에서 보듯 어머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며 안식처이며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처럼 마음의 눈을 뜨게 하고 세계를 보게 하는 영적존재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부재는 실향의식으로 나타난다.

이상과 같이 김구용의 시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는 자연, 관세음보살, 자기磁器, 고향 등을 통해 표상된다. 시인을 위무하고 구원으로 이끄는 어머니는 혈연의 관계인 동시에 종교적 모성의 존재로 인식된다. 시인이 병고로 고통 받던 말년의 시기로 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고, 혈연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표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궁극적으로 “종교보다도 더한 어머님”(「1거」 부분)에서 보듯, 김구용에게 있어 어머니는 모든 수사를 뛰어넘는, 영원한 그리움의 존재다.


3. 생성과 에로스적여성상

김구용의 시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명료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그러나 어머니 외의 여성 이미지는 환상성과 함께 매우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특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1950년대의 장형 산문시에서 두드러진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처하는 시인의 의식과 연관된다. 김구용은 한국전쟁 중에 산문시를 많이 썼는데,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 산문시로밖엔 나를 소화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 이라고 했으며, “현대시는 자아를 찾는 시대의 수인囚人”이라고 했다. 즉, 장형 산문시의 창작과 그러한 시들에 내포된 여성 이미지는 난해한 현실에서 자의식을 중시한 시인이 현실참여를 하는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무상의 모태」에서는 이러한 양상이 일인사역一人四役의 소녀를 통해 드러난다. 이 시의 화자는 삼인칭 “그”이다. 먼저 “그”와 “소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시퀀스를 구분해본다.


S1: 소녀

소녀는 촛불을 밝히고 길거리에서 물빛 실버텍스를 판다. 그는 소녀를 향락하기 위해 주일마다 소녀를 뒤따라가 성당에서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하늘과 대질하는 절정을 목표하고, 한때 산으로 오르는 의욕과 다름없었다.

S2: 매음녀, 처녀, 살아 있는 인형으로서의 소녀

소녀는 틈만 나면 붉고 푸르게 펭키칠한 음식점이나 창 없는 판자 집에서 남자들과 교접하면서 그에게만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처녀가 누구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분노나 실망이나 질투는 마음의 광장 어디에도 그늘지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는 인형과의 접촉을 계속하였다. 무작정한 행동은 도시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가가 되었다.

S3: 산모, 처녀, 매춘녀로서의 소녀

소녀는 ‘내리는 눈이 지난 날로 돌아가라고 속삭인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뱀과 능금이 창조되기 이전의 소리를 들었다. 소녀는 ‘뱃속에서 핏덩이가 자란다’고 고백했다. 그는 여자가 성 마리아 같은 딸이 아니라 아들을 밴 것이라고 믿었다. 처녀도 그의 직감을 인정하였다. 그녀는 아비 없는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였다. 매춘녀의 표정은 아들의 뱃[舟]길을 짐작한 듯 홀연 험악해지면서, 성스러운 모성애에 빛나고 있었다.

S4: 달, 난형

그들은 달처럼 부풀어 오르는 배[腹]를 서로 잊고 잠시 기뻐하다가 어떤 예감과 침묵을 거듭하였다. 달은 하나의 난형卵型이었다. 달은 어떤 장벽도 권력도 방어도 물리치고, 학교 옆구리에서 다시 튕겨져 나왔다.

S5: 처녀, 잉부, 매음녀로서의 소녀

장미는 솟지 않았을망정 벌써 소녀의 표시는 분명하였다. 증기관의 사복체蛇腹體 사이로 석고石膏 보살을 비치는 전등이 그에게는 월광月光으로 변하였다. 이 처녀, 그 이외의 남자에게도 사랑을 받은 잉부孕婦, 뭇 사나이의 매음녀는 구름에 싸인 달을 더듬으며, 신에게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S6: 매음녀로서의 소녀

소녀가 그의 수입으로 쌀을 살 때 곡물점은 가을 안개 속의 논밭이 되고 매음녀는 새장 안의 새처럼 한 강조强調에 지나지 않았다. 체념하는 순종이 고착되고, 침묵은 승화하는 수도 있었다. 매음녀는 값싼 음식점에서도 창 없는 판자집에서도 십자가를 그으며, 신앙과 법열法悅의 두 날개로 위안을 하늘에서 구했건만 이제는 그의 대답을 믿지 않을 만큼 지상에 있어서 총명하였다.

S7: 처녀, 출산

처녀는 병원에서 아비도 없는 현실을 해산하였다. 그것은 신이 아니고 난산 또는 사산으로 더럽혀졌을 침상에서 태어난 목숨은 마구간의 아기처럼 천진하였다.

S8: 일인 사역의 소녀

그는 산모를 혼란의 소沼에 핀 연꽃으로서 바라보았다. 처녀인 동시에 매음부며 아기어머니인 동시 소녀인 일인사역의 여자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무엇에도 물들지 않는 명경明鏡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는 불가능한 기대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S9: 무구한 아기, 광명

내부의 소리는 “누구나 악마도 신도 아닌 자아를 투시할 것이다. 스스로 자비한 손이 될 때 자신의 수의囚衣를 벗을 수 있는 법이 있다면 세상은 좀더 달라졌을 것이다.”고 속삭였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흙의 호소였다. 그러나 순수는 죄의 씨앗에서 나타났다. 그는 소녀에게 다소의 지화紙貨를 쥐어주고, 무구無垢한 아기에게 입을 맞추고, 길거리로 무난히 빠져 나왔다. 성당의 시계는 탄흔彈痕의 음영을 가을 가로수 사이로 교직交織한 광명에 죽어 있었다. 모두는 자기 생각에 포로되지 않았을 때 불사조로 나타났던 것이다.


위의 시는 200자 원고지 23매 정도 분량에 달하는 산문시로서 ‘소녀=매음녀=처녀=산모’의 구도를 보인다. 시의 전개를 따르다보면 독자는 매우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상황과 부딪히게 된다. 화자가 소녀를 향락하기 위해 성당에서 기도를 올린다거나 일인사역을 담당하는 소녀의 위치 등이 그 예다.

그런데 S1에서 소녀가 파는 “실버텍스”는 피임기구로서 생식을 막는 것이므로 소녀의 잉태가 이성간의 육체적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하늘-절정-목표’ ‘산-의욕’ 등의 기표에서도 화자의 욕구가 타락한 성과는 거리가 먼, 정신의 상승작용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촛불”로 보아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S2에서는 ‘소녀=매음부=처녀=살아 있는 인형’의 구도를 보인다. 인형은 김구용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서 깨달음의 방편인 동시에 진리에 가까운 정신의 결정체이다. 그러므로 처녀의 잉태가 화자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S3에서는 “뱀과 능금”이 원죄적 인간과 욕망, 선악의 문제를 환기한다. “내리는 눈”은 ‘원죄 이전의 순백한 영혼-핏덩이’와 결부된다. ‘아비 없는 아들’은 기독교의 관점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되고, 노자의 관점으로 보면 ‘도道’이다. 노자는 도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 상象은 천지를 주재하는 상제上帝보다 먼저라고 했다.( <도덕경> 제4장)

S4에서 잉태물은 ‘달/난형’과 연관을 맺는다. “학교 옆구리”에서 튕겨져 나온 달은 잉태물이 지식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암시한다.

S5에서는 잉태물이 뱀과 연관된 욕망의 표상인 “사복체”에서 “월광”으로 변모한다. 욕망의 씨앗에서 형이상학적 승화물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아직 “장미는 솟지 않았”다는 것에서 미완의 결정물임을 알 수 있다.

S6에서는 그러한 승화의 결실이 신앙과 법열을 뛰어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S7에서 처녀로서의 소녀는 “마구간의 아기처럼 천진”한 아이를 출산한다. 그것은 신이 아니고 난산과 사산의 고통을 거듭하여 얻은 결실물이다.

S8에서 화자는 일인 사역의 소녀를 ‘혼란의 소에 핀 연꽃“으로 바라보면서 무엇에도 물들지 않는 ”명경“이기를 원한다.

S9에서 화자는 “무구한 아기”에게 입 맞추고 혼란한 거리에서 빠져나온다. 그것은 자아의 양상이며 현실에서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광명의 세계다. 그러므로 “탄흔의 음영”인 내적 어둠은 소멸된다.

이처럼 이 시는 전반적으로 에로스 구도를 보이지만 그것은 상징적 행위로서 정신적인 창조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구현양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첫째, 종교적 접근이다. 이 시에서 소녀는 ‘성당/뱀과 능금/성 마리아/보살/연꽃/법열’ 등의 시어와 연관된다. ‘성당’으로부터 ‘마리아’에 이르는 기표에서는 기독교적 상징을 연상할 수 있다. 또한 이 시의 제목인 ‘무상의 모태’ 역시 예수를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보살/연꽃/법열’등의 시어가 불교적 상징과 연관됨으로써 한쪽으로 편단하는 독해를 가로막는다. 성 마리아와 관음보살은 종교적으로 인격화된 모성의 존재로서 등가를 지닌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범신론적 차원에서의 접근을 요한다. 특정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 형이상학적 결정체의 탄생이다. 이를 노자의 관점으로 보면 도적道的인 존재다. 노자는 천진하고 순후한 아이와 같은 경지를 지인至人에 비유했다.( <도덕경> 제55장) 또한 S2에서 “붉고 푸르게 펭키칠한 음식점”은 ‘도道’에 비견되는 정신적 결정체와 연관된다. 붉은색은 제왕의 색이며 푸른색은 이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음식점”은 김구용의 시에서 “식모아이”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시어로서 노자와 상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귀식모貴食母’에서 단초를 찾을 수가 있겠는데, ‘모母’는 도를 가리키고 ‘식食’은 ‘득得’이니 이는 도를 얻는 것을 중히 여김이다. 화자는 출구 없는 현실에서 그러한 지고의 정신을 추구하나 그것이 여의치 않음을 표출하는 것을 ‘소녀가 자신에게만 교접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범신론적 정신의 결정체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지모신과의 연관성이다. S9의 “신앙이 아니라 흙의 호소”라는 구절이 신화적 상상력과 결부된다. 생물학적 의미에서 처녀는 성경험이 없는 여자를 가리키지만, 신화적인 측면에서 처녀는 지모신의 신비한 성聖을 말한다. 처녀성의 원형은 곧 어머니 대지이며 지모신이다. 지모신은 만물을 생산하는 자궁이고, 만물을 흡수하는 창녀이면서도 언제나 처녀성을 보존한다. 지모신 이쉬타르 성전의 여사제 또는 성창聖娼은 ‘거룩한 처녀’로 불리었고, 결혼하지 않고 태어난 아이들은 ‘파르테니오이’parthenioi 또는 처녀 탄생이라고 불리었다. 그렇게 보면 이 시의 ‘아비 없는 아들’은 곧 처녀탄생이며 성스러운 탄생을 상징한다. 부친부재는 영웅탄생의 일차적 조건이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웅은 아버지에 매이지 않은 어머니, 즉 처녀로부터 탄생한다. 그러므로 처녀탄생은 길들여지지 않은 영웅의 속성, 탈일상적이고, 초인간적인 본성을 보여주는 기호다. 그것은 일종의 전통적 관습과 터부의 파기인데, 이것을 깨고 성공할 때 영웅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의 결미에서 “자기 생각에 포로되지 않았을 때 불사조로 나타난다.”는 것은 기존의 관습과 터부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때 불멸의 정신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셋째, 이 시의 에로스적 구도는 융의 관점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융은 에로스를 단순한 성적 측면으로 해석하는 것을 지양한다. 정신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에게 있어 에로스는 ‘의미’에 결부되어 복잡한 상징의 성격을 띤다고 보고 네 단계의 사례를 든다.

①하와Chawwa ②헬레네Helene ③마리아Maria ④소피아Sophia의 단계다. 그리고 이것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①그레트헨(순수하게 충동적인 관계, 에바) ②헬레나(아니마상으로서) ③마리아(천상적인, 즉 기독교적․종교적 관계의 인격화로서) ④소피아(영원한 여성성, 사피엔치아의 표현으로서)로 시사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서 첫 단계인 하와(에바 또는 이브로서 대지를 상징)는 생물학적 단계로서 생산성을 지닌다. 둘째 단계인 헬레네는 아직 성적인 에로스의 지배를 받지만 미적․낭만적 수준의 인격화로서 개성적 가치를 지닌다. 셋째 단계인 마리아는 종교적 헌신으로 드높여진 영적 어머니의 단계다. 넷째 단계인 소피아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초월적 경지인 사피엔치아의 단계이다.

이 시 또한 순수지로서의 소녀와 충동적인 관계로부터 출발하여 생산성과 에로스적 단계 및 종교적 상징을 거쳐 무구한 최고경지를 꿈꾼다는 점에서 이러한 관점과 상통한다. 이 외에 ‘사생아/성 마리아/원죄/마귀/시계/장미’ 등의 모티프와 지식인의 무력감 및 수인의식, S1과 S2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일련의 심상들이 부분적으로 「파우스트」와 상통한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융의 관점에 비추어본다면 이 시의 에로스 구도는 김구용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여성성으로서의 아니마가 다중적여성상으로 구현된 것이며 이를 통해 아니마의 최고경지인 사피엔치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추구는 이 시가 창작된 1956년의 시공간과 연관이 있다. 이 시의 시공간은 ‘도시/어두움/잡색 유리화/TIME잡지/혼란의 소沼’ 등으로 표현된다. 혼혈적이고 혼란스러운 현실의 모습이다. 김구용은 이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시대적 현실에서 파편화된 자아의 모습을 다중적여성상으로 설정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극대화하고, 순수정신을 찾아 고뇌하며 생성에 이르는 과정을 에로스의 구도로 표출함으로써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꾀한다. 더불어 “혼란의 소에 핀 연꽃”처럼 진정한 구원과 승화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때 가치가 있다는 것을 비유적․상징적 이미지의 양태를 통해 보여준다.

에로스는 유한한 인간이 아직 갖지 못한 것을 항상 욕구하고 사랑하며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며,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끊임없이 열어주는 창조적 생명력이다. 그러므로 김구용은 이와 같이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에로스 구도의 산문시를 유사한 시기에 여러 편 창작한다. 「벗은 노예」(1954)에서는 “여자/매춘녀/보살”이 동신同身이 된다. ‘천주당/뱀’의 모티프가 「무상의 모태」와 유사하다. 여기서는 혼혈적 현실이 “LIFE잡지를 뜯어 바른 벽”으로 암시된다. 「소인」(1957)에서는 “여자/녹빛 외투 여자/나의 인형/녹빛 비단 암컷/여신상/세 처녀/여왕/양갈보/박제여자” 등이 여성 이미지를 대신하며 “법/취조관/범죄자/자살/판사” 등이 성찰의 이미지를, “강간범/도색” 등이 성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꿈의 이상」(1958)에서는 처녀잉태의 모티프와 함께 세 처녀가 등장하며 여성 이미지 또한 “처녀/여대생/왕족인 여교사/여의사/성녀/흰 옷차림의 여자/흰 옷차림의 마리아/성 마리아/매춘녀/마담/식당 하녀/노파/암컷/과부” 등이 환상적 에로스의 구도 안에서 다중적 양상을 보인다. 이 시에서는 “오렌지”라는 기표가 궁극적 결정체를 대신한다. “뱀”은 욕망을, “경찰”은 성찰의 기표를 대신한다. 전반적인 구도가 「무상의 모태」와 유사하다. 「불협화음의 꽃 Ⅱ」(1961)에서는 “암컷/그녀/마님/천사/과부/미혼모/여자/아내/딸/미망인” 등의 여성 이미지가 보이며 “학교”, “형법교수” 등이 지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표상하고, “장미/뱀/노인/사생아/매음/수금의식” 등의 모티프가 유사하다.

김구용이 동경한 영혼의 경지는 융의 관점으로 보면 소피아요 사피엔치아이며, 노장의 관점으로 보면 ‘도’이며, 불교의 관점으로 보면 진아다. 그것은 지난한 현실에서 태어난 숭고한 정신의 결정체다. 그러한 정신의 반영물이 문학인 것이다. 그 중심에는 매춘 기호가 있다. 아놀드 하우저는 창녀가 격정의 와중에서도 냉정하고, 언제나 자기가 도발시킨 쾌락의 초연한 관객이며, 남들이 황홀해서 도취에 빠질 때도 고독과 냉담을 느끼므로 예술가의 쌍둥이라고도 했으며, 발터 벤야민이 책과 창녀의 공유점을 침대로 끌어들인다는 점, 불행한 애정을 품는다는 점 등에서 찾은 것을 보면 김구용 시에서의 에로스적 여성상이 문학과 연계되는 것은 무리가 없을 듯하다. 또한 창녀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면서도 순수성을 유지하는 대지모신으로 상징되는 한편 불가에서는 창녀가 성불유도형의 관음으로 상징화 될 때 성은 극기의 대상이 된다. 창녀가 성녀가 되기 위해서는 성의 목적이 쾌락에 있지 않으며, 정신적 순수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김구용 시에 나타나는 다중적 여성상과 에로스의 구도는 상징적 의미로 읽을 때 심층적 기의를 획득한다.


4. 결론

격동의 역사적 현실을 살아야 했던 김구용은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고뇌를 시로써 표출한다. 여성 이미지는 그 표출방식의 하나다. 김구용이 줄기차게 갈망했던 것은 영혼의 구원과 생성이다. 어머니, 혹은 에로스적 여성상은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다.

어머니는 자연, 그릇, 관세음보살, 고향 등의 기표로 현현하면서 혈연적 모성으로서 혹은 종교적 존재로서 자리한다. 김구용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영원한 그리움의 존재요, 위무와 안식을 주는 존재다. 그리고 그 모성의 손길로 영혼을 인도하는 영적 존재, 지고지선의 존재다.

다중적 여성상을 통해 보여주는 에로스의 구도는 1950년대 중․후반을 사는 시인의 동경과 고뇌를 담고 있다. 김구용은 시대의 혼란과 모순, 파편화된 자아의 모습을 다중적인 여성화자의 설정으로 보여주면서, 이를 통해 완성적 영혼 혹은 그에 비견되는 정신적 생성물의 창조를 갈망했다. 이것은 또한 시인이 혼란한 현실에서 그 반영물인 문학으로써 현실참여를 하는 한 방식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생성의 주체로서 여성의 개입은 필연적인 것이며, 여기에는 아니마적 요소가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이미지는 공통적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어머니는 주로 정신적 깨달음과 구원에 개입하는 반면 에로스 구도의 여성들은 가시적인 생성물에 초점을 둔다. ‘무구한 아기’, ‘오렌지’ 등이 생성물의 예다. 이러한 과정에는 대부분 성찰과 치유의 기제가 개입된다.

이 외에 김구용의 시에는 ‘아내, 여자, 그녀’도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은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기보다는 현실, 지고정신, 문학 등을 상징하면서 변용된다. 그러므로 이들의 기의를 획일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반적인 그물망으로 보면 이들 이미지는 두 개의 큰 축을 형성한다. 하나는 현실적 기표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 및 그 결정체인 문학으로서 미의 대상이다. 예컨대 ‘아내’는 실제 현실의 아내라기보다는 매춘기호와 결합하면서 당대의 빈곤하고 오염된 현실을 표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반려자의 상징으로서 ‘반지’의 유무와 결합하여 시인이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문학 혹은 그러한 정신을 표상하기도 한다. 또한 “양공주, 갈보, 매춘부” 등은 전시 또는 전후의 궁핍하고 혼혈적인 현실을 구현하는 한편 ‘매춘부’는 에로스의 구도에서 생성에 기여하기도 한다. 한편 ‘여자’는 미의 대상에 자주 쓰인다. ‘그녀’는 미지의 이미지로서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데 <구곡> 이후 <송 백팔>에서부터 사용 빈도수가 높아진다.

김구용 시의 여성 이미지는 1950년대 초반 어머니의 별세와 함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부각되고 이후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시기와 전후의 시기에는 현실의 난맥상과 함께 산문시가 증가하면서 다중적 여성상이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 70년대에 공동체적 의식을 보이는 시기에는 ‘양공주’, ‘갈보’ 등의 시어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다. 또한 1980년대 송찬의 시기에는 ‘그녀’의 사용 빈도수가 높아지면서 ‘송’의 세계에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고 1990년대 말년의 시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회고와 그리움이 다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외에 ‘아내, 여자’는 일관되게 나타나면서 때에 따라 변용된다.

궁극적으로 김구용의 시는 현실에 바탕을 둔 완성적 정신의 구현물이다.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모색되는 다양한 기법들이 난해성으로 이어진다. 김구용은 시의 곳곳에 동서양의 고전과 연관된 기표들이나 이질적으로 결합한 상징적 시어들을 무의미한 것처럼 배치한다. 그러므로 표층적 기표로 읽으면 수수께끼로 남지만 상징구도로 읽을 때 감춰진 속살을 드러내면서 심오한 정신을 획득한다. 더불어 김구용의 시는 어느 한 쪽으로 읽히는 것을 거부하며 다양한 층위의 독해를 요구한다. 그만큼 독해의 지평이 열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더니즘을 지나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경계해체는 큰 특징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미 1950년대에 장르를 포함해 해체적 시 쓰기를 보여준 김구용의 실험정신은 선구적이다. 김구용의 문학이 지닌 현재적 의미다. 이는 문학을 위한 끊임없는 모색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김구용의 시가 재조명되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민명자∙서울 출생, 문학박사, 2002년 ≪계간수필≫로 등단(수필), 2007년 ≪문학마당≫으로 등단(평론),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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