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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봄호) 특집 시론/김구용 시의 초현실주의와 사회성/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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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78회 작성일 11-05-2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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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봄호) 특집 시론/김구용 시의 초현실주의와 사회성/장이지




1. 머리말

김구용은 ≪신천지≫에 「산중야」(1949)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2001년 12월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시집·Ⅰ>(1969), <시>(1976), 장시 <구곡九曲>(1978), 연작시 <송백팔頌百八>(1982) 등 네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시>, <구곡>, <송백팔>, <구거九居>를 위시하여 그의 일기를 묶은 <구용일기>, 산문집 <인연>을 포함한 전집이 간행되었다.

김구용 시에 대한 연구는 김구용 시의 난해성․난삽성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난해성이나 난삽성을 ‘초현실주의적인 것’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러나 구문을 난삽하게 쓴다는 것과 초현실주의 시의 애매모호함을 혼동한다거나, 주제가 난해하다고 해서 모두 초현실주의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김구용의 초현실주의를 동양의 불교와 서양의 초현실주의를 결합한 것이라거나 동양의 선, 한학 등과 서양의 초현실주의가 접목된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의들은 일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춘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의식의 흐름이나 절연 기법, 자의식 과잉 등만으로 초현실주의의 전체 국면을 단순화하여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김구용의 시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시도하고 있는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각각의 시집별로 그 특성과 의미를 해명하는 작업이 다양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현 단계에서는 김구용 시의 한 국면에 대한 해석이 다른 작품의 해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김구용의 시를 초현실주의 시로 범주화하는 근거는 일차적으로 이상李箱 시와의 영향 관계에서 찾아지는 경향이 있다. 시의 형태면에서 「피곤」, 「묵상」, 「다방」, 「시각視覺의 결정結晶」, 「나비」, 「초적草笛」 등 김구용의 짧은 산문시들은 이상의 초현실주의 시를 그 전범으로 삼은 것으로 여겨진다. 김구용이 이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상론으로 「‘레몽’에 도달한 길」을 쓰기도 했다는 점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시가 ‘놀이’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반면 김구용의 시는 더 진지한 것이었다. 실제로 김구용은 「눈은 자아의 창이다」(1957)라는 에세이에서 초현실주의를 ‘현란한 손재주’라고 하는 기교주의적 맥락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서구의 모방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전통’을 잊지 않으면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눈은 자아의 창이다」에서 밝힌 김구용의 입장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태도야말로 ‘극난한 시 정신’을 통해 서구 초현실주의를 모방하지 않고 앙드레 브르통의 ‘심리적 자동성’을 구현해냈다고 하는 평가도 있었다. 「눈은 자아의 창이다」가 씌어진 무렵 김구용이 「소인」이나 「꿈의 이상」과 같은 기존 시의 장르적 특질을 해체한 몽환적인 작품들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러한 평가가 말 그대로 온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구용의 초현실주의를 논하는 연구자들은 대개 초현실주의를 개인적 차원에서만 논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전후의 피폐한 현실에서 기인하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초현실주의는 일종의 심리적 퇴행으로 보면서, 그것을 순치·극복하는 과정으로 김구용 시를 보는 경향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김구용은 앞에서도 잠깐 보았지만, 항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현실 직시의 과정에서 그만의 초현실주의를 만들어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개인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사회 정치적 국면과 길항하는 개인적 고뇌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김구용의 초기시를 중심으로 그의 ‘현실 참여적’ 성격을 살핀 연구도 있지만, 그의 시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이 글을 통해 밝혀보고 싶다.(일단 <김구용문학전집>을 1차 텍스트로 삼아 논의를 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2. 몽환적 형식과 현실 회복의 모색:1950년대 김구용 시의 초현실성

김구용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전통적이고 회고적인 시들을 썼다. 시조나 산문체의 시를 묘사적인 방법으로 평범하게 썼는데, 1940년대 후반의 「산중야」, 「원천」, 「오후의 기류」까지만 해도 정지용의 <백록담>(1941)의 시들과 비슷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나면서부터는 김구용 시의 내용과 형식이 매우 이질적으로 바뀌었다. 전쟁 중에 씌어진 「유리창」, 「이씨 일가」 등은 아마도 전쟁에 대한 비감을 현장감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거론할 만할 것이다. 전중에 쓴 김구용의 시들에는 전쟁의 참혹함이 ‘폐허’나 ‘백골’, ‘송장’, ‘망령’ 등의 시어나 피난민의 애수나 기아의 양상을 다루는 것으로 자주 형상화되었다. 「마지막 곡예」, 「밤」, 「인간기계」, 「양지」 등에서 그는 하드보일드한 문체를 실험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인간 말살의 현장을 목격한 자의 메말라가는 감성을 대변하는, 시대에 상응한 형식이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계열의 실험은 「생명의 능각稜角」, 「뇌염」 등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실존주의적 향취를 지닌 작품으로 전개해갔다. 한편 「인간기계」, 「반수신」, 「반수신의 고백」과 같은 인간성 상실의 일그러진 자아상을 그린 계열의 작품들은 1950년대 내내 김구용 시의 핵심 주제가 되었던 자기 상실의 문제로 전개해갔다. 「지침 없는 시계」, 「정경」, 「충실」, 「산재」 등과 같은 시에는 자기 상실과 관련된 언급이 거듭 제시되었다. 전후의 김구용은 실존주의적 향취와 자기 상실의 주제에서 더 나아가 양자를 종합하여 해결할 가능성이 없는 전후의 착종한 고민을 일종의 감옥으로 인식하는 ‘수인囚人의식’의 주제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1953년에 씌어진 「오늘」 이래 「소인」(1957.2∼3), 「꿈의 이상」(1958.12∼1959.2) 등 그의 주요 장시들에서도 반복되었다.

김구용의 산문 지향성은 여러 논자들에 의해 거듭 논의가 되었는데, 「충실」, 「산재」에 이어 가난하고 황폐한 전후 도시 젊은이들의 두색된 욕망을 그린 1954년작 「과정」을 쓸 무렵이 되면 일정한 줄거리를 갖춘 소설에 가까운 김구용 특유의 산문시 형식이 일단 형태를 잡게 된다. 서로 속고 속이는 전후의 세태와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의 소통에 대한 갈구를 병치시킨 「위치」(1955)와 간음과 범죄로 가득한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의 음울한 심리를 묘파한 「육체의 명상」(1955. 2),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소녀를 능욕하려다가 오히려 소녀가 사생아를 낳게 되자 그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어주겠노라고 거짓으로 위로하는 청년이 나오는 「무상의 모태」(1956. 7) 등은 윤리나 사회규범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혼잡한 사회상을 반영한 수작들이었다.

김구용 시의 초현실성은 그와 같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훼손된 현실 세계의 복원을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이러한 세계 복원에 대한 희망은 1953년에 집필된 「충실―석굴암에서」 무렵부터 잃어버렸던 본성을 자각하는 형태로 잠복해 있었다. 그러다가 「소인」, 「꿈의 이상」과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장시에 이르러 그의 초현실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소인」은 동창의 미국 시찰 환송회에 갔다가 정부에게 돌아가는 길에 만난 ‘녹빛 외투 여자’의 의문사와 관련하여 체포된 ‘나’가 구속되어 취조당하는 과정을 그린 장시이다. 취조의 과정과 ‘나’의 간밤의 행적이 번갈아 가면서 배치된 구조가 잘 짜인 추리소설적인 작품이다. 「소인」의 초현실성은 현실과 꿈을 분간할 수 없다는 그 부조리한 설정에서 기인한다. ‘나’는 ‘거미’를 죽이는 꿈을 꾸었고, ‘녹빛 외투 여자’는 죽이지 않았지만 살인 혐의로 붙잡혀 온다. ‘나’는 평소의 강박증과 현대인의 불안을 예로 들면서 “그런 평소의 강박관념이 감방에 이러고 있는 내 자신으로 실현되었다.”고 취조관에게 호소하기도 한다. 「소인」의 초현실성은 페티시즘적 양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녹빛 외투 여자’를 ‘녹빛 외투’나 ‘악어가죽백’, ‘핏빛 지폐’, ‘국제우편봉투’ 등의 사물로서 기억한다. 이러한 사물에 대한 관심은 ‘환송회’ 젊은이들의 속물적 육체에 대한 선망과 증오의 양가감정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국제우편봉투’는 이 시의 제목과도 관련이 있는 사물로서, ‘환송회’ 젊은이들에 대한 살의가 ‘녹빛 외투 여자’ 살인의 증거품으로 되돌아온다는 발신과 수신의 설정을 감추고 있다. 이러한 ‘녹빛 외투 여자’의 사물들은 앙드레 브르통의 소설 <나자>에 나오는 ‘청동 장갑’과 같은 초현실주의의 한 장치로 이해된다.

「소인」은 이상한 꿈 장면으로 끝나는데, 이 꿈은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고 와해된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치유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녹빛 외투 여자는 부활하였다. 그녀는 웃음의 가면을 쓴 범인과 손을 서로 맞잡고 춤을 추었다. 나는 “그들은 둘이 아니라”고 속삭이었다. 운전수는 半獸神처럼 고장난 전차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다. 바다가 한편으로 보이는 그늘에 여자의 고무신들이 하숙집 소년에 의해서 어떤 것은 꽃잎으로, 신라 曲玉으로, 나비로, 반달로, 거미로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수목 뒤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흩어진 것들은 ‘착각’이 아니었다. 한 여인의 나체가 문득 불 속에서 실내로 들어왔다. “나는 당신만을 사랑해요.” ‘나의 인형’은 한 번도 말한 일이 없는 소리를 비로소 하였다. “내가 바로 너다” 하고 대답하자 눈물이 웬일인지 흘러내렸다. 녹빛 외투 여자와 운전수와 ‘나의 인형’과 살인범이 종렬로 직립하여, 보기에는 한 몸 같으나 각각 얼굴을 좌우로 내놓고 ‘同’ ‘異’를 일시에 구성하였다. 취조관의 지휘를 받고 경관과 의사와 중절모와 간호부와 택시 운전수와 다방 레지들이 겹겹으로 둘러앉아 나에 대한 ‘찬송’을 연주하고 있었다. ‘고오’, ‘스톱’의 삼색 신호등이 비치자 그들은 나를 축복하는 천사로 화하였다. 나는 ‘본질’이었다. 동시에 모든 ‘因子’였다. 나는 그들과의 ‘전체’였다. ‘세계’였다. 그들은 동시에 인간 심령 현상론처럼 꺼져버렸다. 날이 새자, 감방 바깥 복도의 석유등 불은 나의 출발을 고하듯 꺼져버렸다. 강간범은, 끌려 나가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나는 남고 하나는 떠나건만 우리는 ‘同形’이었다. 나는 비로소 모든 애정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강간범에게 미소를 주었다. 나는 녹빛 외투 여자가 현실로 죽기 전에 이미 녹빛 외투 여자를 마음으로 죽였는지 모른다.

―「소인」 부분


‘나’는 “나는 당신만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나의 인형’에 대해 “내가 바로 너다.”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꿈의 묘사 방법 중 하나인 ‘혼합형성mischbildung’이다. 즉 ‘나’의 소원이 ‘나의 인형’의 입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바로 너다.”라고 말하며 ‘내’가 눈물을 흘린 것은 사랑에 대한 뒤늦은 자각 때문이다. ‘녹빛 외투 여자’, ‘운전수’, ‘나의 인형’, ‘살인범’ 등이 각각 얼굴을 좌우로 내놓고 ‘동이同異’를 구성하는 군무를 추는 뮤지컬적인 장면은 ‘내’가 이들을 동형同形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차비를 천환짜리 지폐로 지불하는 ‘녹빛 외투 여자’의 허영은 미국 출장을 가는 동창의 환송회에서 가난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던 ‘나’의 허영과 겹친다. ‘녹빛 외투 여자’와 감정의 각을 세운 운전수의 부에 대한 거부감과 피해의식 역시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의 인형’은 ‘나’의 ‘녹빛 외투 여자’에 대한 성적 지배욕을, ‘살해범’은 ‘녹빛 외투 여자’에 대한 ‘나’의 살의를 표상한다는 점에서 이들 모두는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취조관’의 지휘 하에 이 시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와 ‘나’를 ‘둘러싸고’ 찬송을 하는 장면은 갈등의 해소, 화해를 암시한다.

「꿈의 이상」도 현실도피적인 꿈에서 벗어나 현실로 복귀하려는 지향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후의 피폐한 현실에서 굶주린 ‘그’는 오렌지 하나를 훔쳤다가 청과상 주인에게 망신을 당하는데, 지나가던 ‘흰 옷의 여인’이 ‘그’에게 오렌지 하나를 선사한다. 그 순간 ‘그’는 ‘악몽 같은 성욕’을 느낀다. 대학 시간강사가 된 ‘그’는 어느 미혼여성좌담회의 사회를 맡은 것을 인연으로 좌담회에 나왔던 여의사, 여교사, 여대생과 알고 지내게 된다. ‘그’는 강의료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어서 번역에 매달리는 등 과도한 일에 시달리지만, 하숙비를 제때에 내지도 못한다. ‘그’는 오렌지를 자신에게 건네준 ‘흰 옷의 여인’을 관음보살과 같은 이상적인 존재로 추억하면서 막연하게 일상으로부터의 구원을 찾아 헤맨다. ‘그’는 과로로 쓰러지지만 병원비 때문에 공상과학물의 번역과 같은 하기 싫은 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꿈의 이상」의 초현실성은 비합리적이고 모호한 꿈에서 기인한다. 1929년 무렵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오토마티즘에 대한 탐구가 거의 마무리되고 꿈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 막 시작될 때부터 꿈은 일관성 없는 드라마, 정적이 감도는 모호함, 믿기 어려운 것으로서의 사물에 대한 발견 등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탐색하는 장치 구실을 해 왔다. 김구용 시의 꿈 역시 초현실주의의 꿈 그림oneiric painting이 지닌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꿈의 이상」에 나오는 꿈은 비합리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구체적인 서술과 이미지들로 짜여 있다.

「꿈의 이상」에는 세 개의 꿈 장면이 있다. 첫 번째의 꿈에서 ‘그’는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다가 지난 날 자신에게 오렌지 하나의 자선을 베풀어준 ‘흰 옷의 여인’을 만난다. 그 꿈에서 여인은 점점 멀어지다가 어느 성으로 들어가 버리고 착암기 소리 같은 굉음이 ‘그’를 에워싼다. ‘그’는 여인을 부르려고 했지만 자신이 여인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두 번째 꿈에서 ‘그’는 타박상을 입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연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 둘러메진 채 어딘가로 운반되어가는 자신을 창문 너머로 본다. 그 와중에 흰 옷을 입은 여인의 옷이 자신의 피로 더럽혀지고 있었다. 세 번째 꿈에서는 자신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 거울이 등장한다. 거울에서 ‘그’는 ‘흰 옷의 여인’을 보았는데, 그녀는 점점 관세음보살로 변해간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오랜 방황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난 원래부터 이유가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연회색 양복의 남자와 함께 사라진다.

첫 번째 꿈은 ‘그’와 ‘흰 옷의 여인’이 결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불행해졌다는 운명강박적인 망상이 반영된 것이었다. 두 번째 꿈에는 유체 이탈이나 분신의 등장 등에서 나타나는 죽음 충동과 여성의 흰 옷을 붉게 물들인다는 데서 드러나는 성 충동이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다. 세 번째 꿈은 ‘그’가 ‘흰 옷의 여인’을 현실의 역경으로부터 자신을 다시 구원해 줄 종교적 대상으로 이상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 번째 꿈은 또한 ‘흰 옷의 여인’이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남자 친구와 함께 사라지는 존재라는 사실 역시 보여준다. 이 마지막 꿈을 통해 ‘그’는 차츰 꿈의 이상을 좇는 대신 현실의 세 여성, 여의사, 여교사, 여대생 중 하나를 선택하여 혼인함으로써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다짐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다.

1950년대 김구용의 시는 여러 모로 1960년대 이후의 <구곡>, <송백팔>, <구거> 3부작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소인」이나 「꿈의 이상」 등이 부분적으로 불교적 발상이나 표상을 포함하고는 있었지만, 1950년대 김구용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반기독교적’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그는 자주 ‘신’을 부정하고 ‘나’만이 있다는 형태의 회의를 나타내곤 했다.

1950년대 김구용 시의 초현실성은 조향 등의 그것이 기법 차원인 것에 대해 더 본원적으로 생각의 자유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 정신 차원의 초현실성이었다. 그 과정에서 꿈을 초현실주의적 메커니즘으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김구용의 초현실성은 몽환적인 양상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전후 현실을 외면하거나 단순히 문명사적으로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초’윤리적인 국면을 이해하고 용납하면서 현실을 치유하고자 모색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소인」이나 「꿈의 이상」에는 단일한 사건에, ‘주인공’이라 할 만한 단일한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1960년대의 <구곡>과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1950년대의 김구용과 그 이후의 그를 대별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 <구곡>의 다성적多聲的 양상은 1950년대 중반의 「중심의 접맥」이나 1960년대 초의 작품이지만 「곡」 연작에 포함되지 않은 「불협화음의 꽃·Ⅱ」에 이어져 있는 것인지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시민적 현실인식과 구도적 실천의 일치: <구곡九曲>의 시사적 성과

<구곡九曲>은 김구용이 1960년에 집필을 시작한 「곡」 연작을 1978년에 한데 묶은 그 자신의 대표적인 연작 장시집이다. 「곡」 연작은 ‘비재非在의 언어화’(김현)라든지 ‘자아 찾기의 도정’(김진수)으로 해석된 이래 별다른 이견 없이 ‘불이不二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난해시로 규정되어 왔다. <구곡>이 다루고 있는 세계의 폭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해석의 편협함은 상당히 뜻밖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해석들이 지닌 난점은 「곡」 연작을 지나치게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읽어내려고 했다는 데 있다. 「곡」이 단순히 개인의 구도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다시 말해 ‘불이’에 대한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 혹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그렇게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사족에 가까운 번잡한 이야기들을 배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구곡>에서 ‘불이’에 대한 깨달음은 의외로 「1곡」의 20행이 지나기 전에 이미 나온다. “빛처럼 차별은 없어/언어를 지우면서 살아난다.”라는 구절은 제18, 제19행에 해당한다. ‘불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말씀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 「곡」은 그 가르침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그 부처님의 ‘말씀’을 소거하면서 자기가 보지 못한, 깨닫지 못한 것을 ‘모색’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연작이다. “인과란 원래부터 없는 것,/텔레타이프는 치하한다./<난 말 잘 듣는 사람을 좋아해>/석가는 근 이천오백 년 전에서 설법한다./<너희들은 나의 말을 믿지 말라>”(「5곡」) 그런데 그 ‘모색’은 개인적인 수양이나 구도의 차원이라기보다 ‘사회적인’ 차원이라고 보아야만 한다.

<구곡>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임노동자와 의사, 육군대령, 주한미군, 곡마단 사람들, 고기古器 절도범과 그 아내, 운전사, 양공주/여대생, 얼굴에 칼금이 있는 ‘임’이라는 사내, 사찰의 노장 스님, 부두 하역노동자, 은행 강도, 연극배우, 여러 명의 수인, 아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이 나온다. <송백팔>, <구거> 등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구곡>에는 그들과는 다른 차원이 있다. <송백팔>, <구거>에 비해 <구곡>의 인물들은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1곡」에서 박 양과 두 대학생과 절름발이 권총 강도가 얽힌 부조리한 에피소드는 총 58행을 차지하고 있고, 동두천의 양공주 ‘이화자’의 자살과 그 운구 행렬의 일화는 총 83행에 이른다. 「2곡」에서는 ‘이화자’의 운구 행렬에 대응하여 위정자의 가짜 운구를 내가는 시위 행렬의 장면이 10행 이상 이어진다. 「3곡」에는 시모노세키에서 민족 감정 때문에 일본인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우울한 체험이 총 23행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구곡>은 <송백팔>, <구거>보다는 「소인」, 「꿈의 이상」, 「불협화음의 꽃·Ⅱ」와 같은 그의 1950년대 후반 장시들과 더 친연성이 있다.

이와 같은 내러티브들은 당대에 유행했던 실존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전후 도시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 일화들이 종합되면서 만들어지는 비전이다.


촛불밭을 떠나는 관

하늘이 일어선다.

시위행렬은 노선을 따라온다.

“병풍屛風인가요.”

“쉬, 널[棺]이야.”

허무를 가르는 두 개의 널이

트럭 위에 나란히 서서 지나간다.

명사名士 ‘아무개 구’를 쳐다보는 눈들,

“저건 살아 있는 이름들 아닌가요.”

“쉬, 소리가 너무 커…….”

―「2곡」 부분


처녀는 곧 산발散髮하더니

얼굴에 검정을 칠한다.

골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신음한다.

어른들이 “염병이라”는데도

왜병대장은 무서워 않았다.

(중략)

할머니는 친손녀인 여대생 머리 너머로

방문을 나서서

왜병대장과 생이별한

딸의 과거를 바라보다가

다시 무덤이 된다.

늦잠에서 깨어난 양부인洋夫人

여대생은 악보를 끼고 학교로 가다가

죽음을 가장한

행렬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2곡」 부분


「2곡」의 시위 행렬은 「1곡」의 동두천 양공주의 운구 행렬과 반향하고 있으며, 「2곡」의 여대생/양공주의 출생에 얽힌 일화는 「3곡」의 시모노세키 부두 노동자 가족의 민족 차별 체험과 반향하고 있다. 시위 행렬의 장면은 그 자체로는 큰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1곡」의 운구 행렬과의 병치로서 읽으면 더 정치적인 맥락이 생긴다. 여대생/양공주의 가족사는 그대로 일제 식민지 체험, 전쟁․전후 체험 등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보여주며, 「3곡」의 부두 노동자 일화와의 병치로서 읽으면 한국 민족주의의 한 성격이 선명해진다. 여대생/양공주 일화는 인용한 부분의 마지막 두 행에서 다시 시위 행렬의 에피소드와 이어지거니와, 이 연결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한국 근현대사의 후진성을 인과 관계 속에서 파악하게 되므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이야기가 된다.

<구곡>에서 김구용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처럼 사회 정치적 맥락 속에서 조망하지 않으면 온전히 독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김구용은 이러한 사회 정치적 국면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데까지 고민했다. 그래서 그는 파편화된 내러티브를 종합하기 위한 장치로서 ‘내’가 ‘타자’가 되는 상상력을 도입했다. 이 장치를 경유하여 그는 여러 인물들의 일화를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로, 사회 역사적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자연스럽게 치환할 수 있었다.


• 어떻거면 나는 시간처럼/남이 될 수 있을까,/부재不在의 시여.(「4곡」)

•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하는 창으로 창으로/창으로 비둘기는 날아오르며/점점 없어지더니/날갯짓만 남는다.(「5곡」)

• 그는, 자유로운 비굴이/새겨진 의자에 앉아/일본 헌병에게 충전/당하는 꿈을 꾸었다./이마에 불을 켜고 해저를/날며 학춤을 추다가/가루가 되어 뿌려졌다./동시에, 그는 끄나풀이 되어/전화기로 놓여 있었다./총구가 드리는 기도.(「5곡」)

• 32면상은 후회할 줄 모른다./의치와 안경과 만년필은/너의 하루를 만든다./흐르는 물은 완화초당莞花草堂/눈을 감으면 천이백년千二百年/눈을 뜨면 고국산천/흐르는 구름은 옛 선생,/끝은 시작한다.(「8곡」)

• 물고기가 떼지어 꽃핀 숲을/피차가 하나인 머리카락을/모래로 증명하였다./피임은 여관에서 문명한다./고금은 같은데/남녀는 역시 다르다./해가 지는 폐선을/소리만 남기고 사라진 기타를/노름판에 내던진 태양상표를,/우리는 본다./사람마다 나의 세세생생世世生生일세./세상에 남은 없네./나 아닌 목숨은 어디에도 있네./그래서, 현실은 사실이 아니며/사실의 뒤가 현실이었다.(「9곡」)


‘내’가 ‘남’이 된다고 하는 상상력은 ‘천백억화신’의 불교적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불이’의 사상과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구분되는 것이다. 가령 “(술집―인용자)처녀는 인종을 차별하지 않았다.”(「3곡」)라든지 “빨래줄에서 성의聖衣와 수의囚衣를 알아내는가./그런 차별에서 벗어나소서.”(「8곡」)와 같은 구절은 모든 차별을 부정하는 불이의 사상을 대변한다. ‘내’가 ‘남’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인식론적인 문제라기보다 경험이나 실천의 차원에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구곡>의 여러 인물들은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단순하게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주변적 장치가 아니라, 시적 자아 ‘나’의 시점을 나누어 가지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김현이 「3곡」의 시모노세키 부두 노동자의 아들을 시적 자아 ‘나’ 혹은 시인 자신으로, 일본 소녀 요네코를 ‘나’의 첫사랑으로 해석했던 것은 이 시점의 공유가 만들어낸 착각이었다. 서사이론적인 용어로 환언하면 김구용은 시점캐릭터를 ‘나’에 고정하지 않고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시점캐릭터의 역할을 분배하려고 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구곡>의 여러 인물들 중 어떤 인물은―가령 부두 노동자의 아들은, 시점캐릭터 혹은 시적 자아 ‘나’로 오인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안배가 시적 자아의 위치 자체를 무용화하지는 않는다. 김구용은 여전히 ‘타인’이 되려고 발원하는 존재로서 ‘나’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구곡>에서 ‘나’가 아닌 다른 인물이 타자가 되고 싶다는 발원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나’가 타자가 된다는 것은 다분히 초현실적인 설정이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구곡>에서 김구용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꿈’과 현실을 뒤섞는 몽환적 구조를 채택했다.


누가, 하기 싫다는 사람들에게

성인聖人이 되기를 강요하는가.

찾으라 칼금의 공간空間을.

우리는 입과 눈을 잃었다.

그는 찢어진 사이로

눈동자에 들어간다.

그곳은 한 그루 나무와 샘물

몰입하라, 영영映影으로.

―「3곡」 부분


눈에 생긴 ‘칼금의 공간’은 루이스 부뉘엘의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의 한 장면에 대한 인유이다. 「안달루시아의 개」에는 여성의 눈을 남자가 면도칼로 절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현실의 눈이 보지 못하는 세계, 눈동자 안으로 난 길에 이어진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향을 나타낸다. 그것은 또한 ‘(여)성’을 매개로 한 상상력의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기도 한데, 김구용 역시 이를 통해 시각의 초월성, 혹은 초월적인 시각을 꿈의 영역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구곡>에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이 시작되려는 순간이나 졸음이나 입몽 단계의 묘사가 먼저 제시된 이후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내러티브로 이행하는 구조가 자주 발견된다.


•눈[目]으로 이조자기를 쓰다듬으면/어머님의 검버섯 핀 손이었네./추억은 선반에/여러 가지 달[月]덩이로 놓인다.(「1곡」)

•거울에서 기억은 쏟아져나와/검은 창에 손은 떼로 몰려와/빗물로 흘러내리더니/무과실책임이 나를 끌어내어/햇빛을 안기더니/비[雨]는 눈[眼]이고/돌은 재[灰]였다./상실은 점령하였다.(「4곡」)

•불[火]에서 태어난 먹[墨]은/공간에 금을 그어/사고事故의 안팎으로 잎을 단다./잎은 통금시간에 자라나/날개를 편다.(「7곡」)

•가지에 달린 사과는/대답이 아니며/생각하게끔/우리를 출발시킨다.(「8곡」)

•차가 무거리無距離를 달리고 있었다./배경에 사이렌은 화급히 퍼진다./이상한 바다고기 한 마리가/천천히 창을 들이받아/시야視野는 소리 없이 부서져 날은다./하얀 바다고기 배속에서/경찰들이 쏟아져나와, 그의/아들인 시체를 국방색으로 덮는다.(「2곡」)

•하루가 물 밖으로 나와/문자文字는 거울로 들어가/태양은 무관심을 구축構築하고/거리距離서 매화를 기르더니/벽에 성호星湖를 두었다.(「5곡」)


여기에서 ‘거울’은 ‘눈꺼풀 없는 눈’으로서 서구 초현실주의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상력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생각이나 꿈이 ‘날개’의 비유로 제시되는 것 역시 상상력의 자유분방함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적 초월성에 기대어 김구용은 ‘나’의 일상에서 타자들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행할 수 있었다.

<구곡>의 초현실주의적 초월성은 김구용의 사회 정치적 사유를 다 가릴 만큼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또한 종교적 잠언들을 뒤섞어 놓은 개인적인 구도의 과정을 그린 것으로 오인될 만한 소지도 있었다. 그러나 기실 그 초현실주의적 초월성을 비정치적이고 사적인 것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는 데 <구곡>의 복잡성이 있다.


광장에는

많은 동상이 섰던 흔적만 남아

무슨 때문인지,

각명刻銘은 상해서 하나도 못알아 본다.

상인이 없는 풍성한 시장市場

신문은 불사약不死藥을 먹었던 자들의

자살명단으로 만원이다.

시설이 완전하대서

사원寺院이나 정부청사로 들어갔다가는

거미와 박쥐들에 놀라 나온다.

―「2곡」 부분


이중결혼二重結婚이 의자에서 일어날 때

희죽희죽 웃는 155마일,

일만이천봉의 골짜기마다

별들은 우거졌는데

저승보다는 대동문이 약간 멀다.

―「3곡」 부분


범람氾濫하는 선인장仙人掌

죽음을 당한 신앙,

사람이 없는 길거리에서,

온갖 언어로 구축構築

백화점 안에서, 시계는 역행한다.

나는 나를 찾아다녔다.

모르는 것을 주십시요.

아마 그것은 아름답고, 그래야만

나는 깨달을 것입니다.

눈먼 어머님을 속입시다.

정신병원에서 웃는 金을

월남 여자와 놀다가

영창에 들어앉은 정 하사를

데모에서 외아들을

잃은 최 서장을

서독 광산에서 떠메어나온 이 학사를

아군과 적군이 공통하는 모국어를

―「4곡」 부분


<구곡>의 초현실주의적 초월성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망상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하는 퇴폐적 의식의 소산이 아니다. <구곡>의 일화들은 무의미의 세계를 지향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오히려 사회 정치적 비판의식들이 내포되어 있다. 「2곡」에 제시된 ‘광장’과 ‘시장’의 판타지에는 최인훈의 <광장>에 그려진 남한 사회의 모순에 필적할 만한 시선의 깊이가 확보되어 있다. ‘동상’으로 표상되는 이데올로기가 유명무실해지고, 자본주의의 논리는 ‘상인이 없는’ 기형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어떤 종교적 규범이나 정부 같은 초월적 사회 장치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2곡」의 인용한 부분에 드러나 있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은 「3곡」에서 ‘155마일’이라는 수치로 표상된 ‘분단’의 주제와 맞물린다. 「4곡」에서 ‘나’를 찾아가는 도정은 사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민주화 시위와 남북 대치, 베트남 전쟁과 디아스포라와 같은 공적인 존재들을 호명하면서 진행된다. 개인적인 망상이나 구도의 과정처럼 보였던 것들이 ‘내’가 타자가 되는 상상적인 장치와 여러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내러티브를 경유하면서 사회 정치적 주제로 전회轉回한다는 데 <구곡>의 한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9곡」의 “아내여, 자기 손이 닿지 않는/등의 일부분/서로를 필요로 하는 도움/그 작은 터전이, 우리인 것이다.”와 같은 깨달음 역시 단순히 개인적인 각성으로 끝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구곡>은 4․19와 5․16을 연달아 경험한 1960년대의 시민적 경험을 당대의 어떤 작품보다도 심도 있게, 종합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서구 초현실주의와 불교적 상상력을 종합하고 사회 정치적 상상력과 종교적 구도를 일치시킴으로써 이룩한 <구곡>의 성과는 1970년대에 접어들어 <송백팔>, <구거>로 넘어가면서 다소 퇴색되는 면이 있다. <구곡>에서 달성한 균형감각은 <송백팔>, <구거>에서는 내러티브가 약화되고, 불교적 상상력이 사회적 상상력을 압도하면서 흔들리게 된다.


4. 자아의 드라마와 ‘불이不二’ 사상의 전유: <송백팔頌百八>의 불교적 초현실주의

<송백팔頌百八>은 1971년부터 1982년 사이에 집필된 김구용의 연작시 「송」 108편을 한데 모은 연작시집이다. <송백팔>은 전작에 비해 이야기적인 요소가 많이 절제되어 있는 대신 비교적 짧은 형태의 시들을 중심으로 음악적인 요소가 강조되어 있어서 그의 시집 중에서도 단연 ‘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작이라고는 하지만 각각의 시편들이 어떤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독자적인 작품으로 읽어도 시집의 대의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송백팔>의 문체는 전반적으로 서구 다다이즘을 연상시킬 만한 양상을 띠고 있다. 김구용 시 특유의 비문 형태가 <송백팔>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사십억 인구의/하루가 사십억 일인/열매는 세상한다.”(「송·55」)라는 구절은 보통의 경우에서라면 ‘사십억 인구의 하루가 사십억 일인 세상이 열매를 맺는다.’와 같은 형태를 취했어야 할 것인데, ‘세상한다’와 같은 비통사적인 서술어를 만듦으로써 문장을 낯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통사론적인 오류를 활용한 낯설게 하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귀를 기울여보면/오는 곳들은 영산회상이다.”(「송·67」)라는 구절에서 장소를 나타내는 ‘곳’과 ‘영산회상’은 의미론적으로 호응하지 않는데, 이런 것은 의미론적 오류를 활용한 낯설게 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비문의 활용만이 다다이즘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김구용은 여러 곳에서 의미를 부정하는 말을 해놓고 있다. “알고서는 모르느니/모르는 믿음을 믿어라.”(「송·7」)라든지 “자네가 아는 것만 아는 한/그 외는 모를 것이다.”(「·8」)에서와 같이 ‘지’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의미를 거부하는/시가 항구를 월식한다./빛은 없는 것도 보여준다.”(「송·2」)에서도 시란 모름지기 의미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내세워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반의미중심주의적 태도는 서구의 의미중심주의를 문장 파괴와 우발적인 실험으로 해체하려고 했던 다다이즘 전통과는 달리 선적禪的인 패러독스를 통해 허상인 현실을 전도하여 ‘참의미’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동양적인 전통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령 그 선적인 패러독스는 <송백팔>의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변동의 침묵으로/여러 가지 피색皮色은 노래한다.(「송·3」)

•세계는 한 몸이었으니/침묵은 물결친다.[……]교통의 공간인/정적은 말씀을 한다.(「송·13」)

•적막한 격동은/하나를 없애며/적연寂然한 폭발은/무마저 없애고(「송·17」)

•장님은/마음대로 이루어놓는 벽을 본다.(「송·32」)

•말을 쉬어야만/귀가/대답을 들을 줄 안다.(「송·46」)

•간혹 반성은/자기 등을 본다.//사슴의 날개는/부재不在에서 오는 음성일세.(「송·53」)

•어둠의 소리는/빛나는 어둠이다.(「송·75」)

•구름소리를,/나무 테의 음악을,/없는 말씀을 듣는다.(「송·76」)

•침묵이 귀를 기울이면/흙의/부동不動은/가지각색을 키운다.(「송·100」)

•귀가 먹으니/내부의 소리가 들린다.(「송·108」)


이들 각각의 시편에서 김구용은 자주 ‘침묵’이야말로 진리의 세계에 가장 가까운 상태임을 암시한다. 그는 ‘말’과 ‘말씀’을 구분하곤 하는데, 진리의 언어인 ‘말씀’은 속악한 세계의 언어인 ‘말’이 소거된 상태에서만 역설적으로 시적 자아에게 도래한다. 인간 세상에서 만들어진 언어는 진리를 가리는 허상일 뿐이다. 따라서 그 허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장님’이나 ‘귀머거리’가 진리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감각의 영역을 초월해야 진리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말씀(진리)’을 ‘말씀’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도덕경>의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불가의 사상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 ‘말씀(진리)’은 항상 ‘없는 말씀’으로 표기되어야만 시인의 의도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된다.

그런데 김구용은 왜 그렇게 ‘진리’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진리’가 결핍된 상태인 일상이 ‘번뇌’를 촉발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송」이 108편에서 멈춘 것은 연작을 시작하면서부터 108편을 써야겠다는 기획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다분히 불가에서 말하는 ‘108번뇌’와 관련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송백팔>에는 상당히 추상적인 형태로 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생활인의 일상적인 고민이 나타나 있다. 이민 간 제자의 생활고에 대한 걱정(「송·20」), 반국적 상황에 대한 회의(「송·25」), 봉급생활자의 생활비 걱정(「송·37」), 출세지상주의적인 세태에 대한 회의(「송·38」), 지병으로 인한 고통(「송·52」) 등을 비롯하여, 내외가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서로 의지하여 가정을 가꾸어가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일상적인 양상이야말로 <송백팔>이 현실과 유리된 종교시로 귀착하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김구용 시가 그러한 생활의 단면을 소박하게 그리는 데서가 아니라 추상화하고 관념화하는 데서 그 개성을 만들어가고 있음도 부정할 수는 없다.


채소밭이 이루어지는

부족不足은 심심하지 않았다.

모든 별을 부양하는

소득所得은 쓸쓸하지 않았다.

―「송·84」 부분

기쁨은

웃어준다.

걱정은 걱정을 한다.

[……]

목적은 구하는 한 없었다.

너는 어서 가

적막한 그녀와 만나야 한다.

―「송·106」 부분(※강조는 필자의 것임.)


밑줄 그은 부분에서 잘 드러나듯이 김구용은 관념어를 즐겨 주어로 삼는다. 「송84」는 사실 봉급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채소밭을 가꾸는 노동을 해야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쓸쓸하지만은 않다는 의미인데, 관념어가 주어가 되면서 의미가 애매해졌다. 「송·106」의 “걱정은 걱정을 한다.”와 같은 재귀적인 표현도 김구용 시에 자주 나오지만, 주어 자리에 있는 ‘걱정’은 사실 ‘걱정을 하는 사람’을 원관념으로 하는 환유로서 일견 당혹스러운 재귀 표현이 되어버렸다. 인용한 시뿐만 아니라 <송백팔>에는 ‘평범한 묘사’가 없다. 평범한 묘사가 없기 때문에 독자가 시적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고 시상詩想을 이미지화하여 떠올리기도 지난하다.

김구용의 시가 관념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관념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단편적인 일화를 논평하듯이 시에서 언급한다든지 독백이나 대화 등을 통해 설명을 대신하기 때문에, 현실을 추상화하기 때문에 관념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송·25」에서 우리나라의 반국적 상황이 ‘미혼모’의 단편적인 일화로 언급되는 데 그치는 것이 특히 아쉽다. 악기에서 권총 소리가 난 뒤 늙은 여가수가 쓰러지는 「송·21」의 에피소드, 택시기사가 밤낮으로 드나드는 가게가 나오는 「송·61」의 에피소드, 세계과부협회에서 ‘인공성기’를 개발했다고 하는 「송·92」의 전언 등 김구용은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지 않고 그 말단만을 논평조로 진술함으로써 현실을 부조리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내 실수로 생긴

그녀 턱의 상처가

우리의 절[寺]이었다.

[……]

한 점이

삼동三冬의 열매로서

걸어 들어왔을 때

나의 세계는 탄생하였다.

―「송·78」 부분


「송·78」에서 ‘한 점’이란 “그녀 턱의 상처”를 원관념으로 하는 메타포이다. 그리고 다시 “그녀 턱의 상처”는 “삼동三冬의 열매”라는 보조관념으로 거듭 제시된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내의 턱을 다치게 하여 생긴 ‘상처’가 시적 자아로 하여금 아내에게 빚을 갚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한다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이런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가 아내가 방에 들어오자 시적 자아가 상념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나의 세계는 탄생하였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내 턱의 상처가 ‘점’으로 추상화된 셈이다. 「송·78」은 근본비교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의미를 파악하기 수월한 시이지만, <송백팔> 소재의 많은 시들이 이런 형태로 현실을 추상화함으로써 성립하고 있다. 그것은 <구곡>이 이루어놓은 시공을 넘나드는 종합적인 비전에서 보면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 <송백팔>이 연작이기는 하지만 각 편이 연속성을 지니지 않으며 비교적 짤막한 형태의 노래라는 형식의 제약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송백팔>에서 김구용이 쓰고 싶었던 것이 <구곡>의 내러티브적인 것보다는 1950년대 초 「희망」이나 「초적草笛」과 같은 그 자신의 단시에서 추구된 초현실주의적인 것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가끔 너는/검은 머리가/찬란하게 변한다.(「송·1」)

•가랑잎의 말씀으로/쇠[鐵]는/해를 낳는다.(「송·2」)

•하늘의 회의장에/물고기들은 모이고,/말들은/바다 밑의 밭을 가꾼다.(「송·8」)

•먼동이 죽음에서 트고/접시가 눈을 뜨면/바다로 둔갑한 명란젓은 고래 떼가 되어 달아난다.(「송·11」)

•구름 사이로 노니는/물고기들은/친구들 사이다.(「송·14」)

•믿음의 숲에서/미혼모는 분홍빛 부리로/눈물을 마신다.(「송·41」)

•사슴의 날개는/부재不在에서 오는 음성일세.(「송·53」)

•손이 가죽으로 된/책장을 넘겼더니/머나먼 눈이 온다./날아온 흰 말이/그녀의 귀로에 내려선다.(「송·72」)

•너는 숲에 손을 넣어/하늘을 떠 마시면/하늘은 어린/해를 가꾼다.(「송·75」)


김구용은 신체의 일부를 비현실적으로 변형한다든지 날개 달린 사슴이나 하늘을 나는 흰 말 등 동물계를 혼란시킨다든지 하늘과 바다를 전위하여 이상한 풍경을 만들어낸다든지 한다. 그는 현실에 없는 것을 보는 것이 ‘시’라고 보기 때문에 현실과는 절연된 듯한 풍경들을 자주 만들어낸다. 이러한 시경은 꿈과 무의식의 영역에 권위를 부여했던 서구 초현실주의의 표현법과 가까워 보인다.

<송백팔>의 초현실주의는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부정, ‘나’와 ‘너’의 경계를 무화하는 불이不二의 불교적 철학을 전유하면서 그 깊이를 더해간다.


•내가/내게서 벗어나면/모든 이의/것이/되리라.(「송·18」)

•웃어보면 만나는 사람들은 나였다.(「송·67」)

•아무 할 말도 없을 때/귀에 들리는 대화는/네가 바로 나다.(「송·75」)

•나를 비워서/존재는 미지를 듣는다.(「송·80」)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불가의 가르침도 있지만, 김구용은 ‘나’와 ‘너’의 구분, ‘나’를 의식하는 데 모든 번뇌의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내성적 태도, 자아에 대한 철학적 관심은 정신분석학을 나름대로 소화하며 발전한 서구의 초현실주의와 어느 지점에서 교차점을 만들고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서구의 초현실주의와는 별개의 ‘불교적 초현실주의’라고 불릴 법한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냈다는 시사적 의의도 있다. 다만 1970년대의 전반적인 시단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그와 같은 방법론이 어떤 의의를 지닐 것인가에 대한 반성도 그 의의와 함께 논의가 되어야 그와 같은 평가의 정당성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송백팔>의 ‘자아의 드라마’는 1970년대 시단의 과제였던 민중적․민족적 담론과 연결고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를 종교적 차원, 혹은 개인 윤리의 차원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이는 면이 있다.

5. ‘나’의 초월과 분단극복의 과제: <구거九居>의 종교적 정진과 사회적 과제

「거」 연작은 「송」 연작에 이어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에 걸쳐 씌어진 김구용의 시로 정규 시집으로는 묶이지 않았고 2000년의 전집 간행 때 시집 <구거九居>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김홍근은 ‘곡’, ‘송’, ‘거’ 등의 연작이 천상병의 명명을 따른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의 ‘노래’를 가리킨다고 했지만, 각각의 연작에 ‘노래’라는 의미 이외의 의미가 없었다고는 믿기 어렵다. 「거」 연작의 ‘거’란 <금강경>의 구유정거九有情居와 마찬가지로 중생이 ‘머무는 곳’을 의미한다. 중생의 몸이 여러 가지이고 생각도 서로 다른 욕계의 인천人天으로부터, 유상有想도 무상無想도 버린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이르기까지의 아홉 단계를 ‘구유정거’로 부르지만, <구거>의 각 편이 이 아홉 단계에 대응되는 것은 아니고, 김구용이 이 ‘구유정거’를 염두에 두면서 「거」 연작의 각 편을 집필했다는 말이다.

‘거’가 ‘머무는 곳’이라는 함의가 있다는 것은 <구거>의 도처에 ‘집’과 ‘가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데서 당장 드러난다. 다음은 「일거一居」에 있는 구절들이다.


•네가 찾은 곳은 집이다./자연보다 좋은 데가 있는지요./해가 충만하듯이 단 하나/푸른 사과가 매달린 뜨락이다.

•서실書室은 그의 말씀이요/집은 그의 몸이요./뜨락은 그의 행동이니/이제야 돌아온 듯하여라.


인간이 찾아 헤매는 것은 ‘집’이다. 그것은 인간이 ‘찾아내야’ 하는 곳이며, “돌아온 듯”하다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한 번 ‘떠났던’ 시원, 본질이다. <구거>의 세계관은 이렇듯 ‘집’을 일종의 도장道場으로 설정하는 데서 형성된다. “아이를 위해서는 복을 아낀다./그녀를 위해서는 덕을 아낀다./사소한 음식에도 감사하며/서로가 아끼는 나날이었다.”(「2거」)에서처럼 <구거>에는 도처에 가정사와 관련된 잠언이 등장한다. 외국에 살던 혼혈아가 모국으로 돌아온다든지 남녀가 결혼을 한다든지 가난을 부부가 서로 도와가며 견딘다든지 하는 일화들이 계속 나온다. 서민적 근면과 성실이 어떤 양태로 제시된다기보다 논평조로 제시된다는 데 <구거>의 한 특징이 있다.

그런데 김구용은 이와 같은 가정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서의 ‘거’가 ‘가정’에서 ‘통일된 조국’의 형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바로 여기에 <구곡>이나 <송백팔>과는 확연히 다른 <구거>의 문제의식이 있었다. 전작에서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단속적으로 나왔지만, <구거>에서만큼 자주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한 작품은 없었다. 특히 「거」 연작의 후반부인 「7거」, 「8거」, 「9거」에 분단과 이산, 통일에 관한 문제가 추상화를 거치지 않은 진술의 형태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라를 잃었던/백성은 반국민으로 떠나갔지만/소망은 그날을 볼/사람과 만나고 싶다.(「7거」)

•없던 시가 이루어진다./없던 현실이 나타난다./남․북은 하루아침에/평화통일을 성취했다.(「7거」)

•고생한 부모 형제와/조국의 평화는 어디로 가고/핵무기와 에이즈는/어디서 왔는가.(「7거」)

•고구려 금동여래입상은 말한다./“선남녀는, 염려하지 말아라.”/신라 금동여래입상은 말한다./“선남녀는 걱정하지 말아라.”(「7거」)

•나라가 분단된/백성은 가족을/사랑하여 부모님을/뵈오러 간다.(「8거」)

•형은 생전에/동생을 만날 수 있을까./연변 동포가 부르는/아리랑을 TV로 우리는 시청한다.(「8거」)

•황하를 TV로 보았으나/금강산은 나타나지 않았다./핏줄은 보고 싶은/이산가족을 만날 것이다.(「8거」)

•아이들은 부모의 수난을/다시 겪지 말아야 한다./겨레가 믿음을 회복하면/고민은 평화롭게 해결될 것이다.(「8거」)

•나라를 잃었던/백성은 아직도/반국민으로서/살고 있다.(「9거」)

•살아생이별은/말도 못하는데/노인은 살아생전에/금강산을 다시 보게 될까.(「9거」)

•인도에 인도를 되돌려주었던/일은 마땅했다./어느 나라도 셰익스피어를 달라고/간청하지는 않았다.(「9거」)

• 하지만 고향을 떠나서 45년,/올해 추석날에도 불효자가/부모님의 생사조차 모른다고/실향민은 한숨을 내쉬었다.(「9거」)


“나라를 잃었던/백성”은 일제 식민치하의 민족을, “반국민”은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을 가리킨다. 김구용의 분단인식은 이로 보면 일본 제국주의와 분단 상황을 연속적인 것으로 볼 정도의 수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분단인식은 인용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산가족의 문제에 치우쳤고 이데올로기 문제 등은 괄호로 쳐둔 채 “겨레가 믿음을 회복하면” 자연히 분단의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보는 순박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통일된 조국상이 ‘거’, ‘머무는 곳’으로서, ‘집’의 확장으로서 제시되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김구용은 이 ‘집’에서 ‘통일 조국’으로 확장되는 ‘거’의 상상력을, 독아론을 극복하고 ‘나’를 넘어서 박애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또 하나의 확산적 ‘거’의 상상력을 통해 보완하려고 했다.


•허공에서 땅덩어리가 생겨났듯이/모르는 데서 생명이 태어났듯이/알아야 할 자기 자신이기에/그들은 세상을 서로 비친다.(「1거」)

•이제사 바람은/마음대로 불어/마음대로 물은 흘러서/모두 다 나[我]로구나.(「1거」)

•아니, 아이를 버린/내가 달아나다가/시민들과 함께 돌아와서/내가 나를 찾아 헤매었다.(「1거」)

•네가 태어났듯이/미래에 태어난 아이들아./누구나 나이기에/네가 바로 나인 것이다.(「3거」)

•원래 네가 없었기에/너는 너와 만난 것이다.(「3거」)

•너는 보이지 않는/것을 보며/너는 들리지 않는/것을 듣는다.//부처님이 보신/샛별은/너에게 말한다./“내가 바로 너구나.”(「6거」)

•어머님은 남의 집으로 시집을 오셨었다./아내도 남의 집으로 시집을 왔었다./딸은 남의 집으로 시집을 갔었다./며느리는 남의 집으로 시집을 왔었다.(「8거」)


여기에서 ‘나’는 찾아 헤매야 하는 대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일치가 되었을 때는 세상만물과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나’란 원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나’가 되는 ‘무상천無想天’과 같은 구유정거의 발상처럼 보이는 구절들도 있다. 이러한 구유정거의 발상이 단계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나’의 초월이라는 화두가 ‘구유정거’의 수양이나 구도求道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인용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 ‘나’를 생각하는 ‘나’의 없음, “내가 바로 너구나.” 하는 각성은 필연적으로 박애적인 발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집’에서 ‘통일 조국’으로의 확장이라는 상상력에 대응된다. ‘나’에 대한 애착이 세계에로 확산되는 구조인 것이다.


•혼자서는/되는 일이 없었다./사랑을 사랑하면서/싹이 트는 동질同質들이다.(「5거」)

•누가 잘됐다면/흐뭇했다./누가 안됐다면/언짢았다.//서로가 다/다른 평등이었다./서로의 분별은/서로를 안다.(「6거」)

•흙을 사랑하라./나무를 사랑하라./사랑은 감사한다./사랑으로 감사는 온다.(「6거」)

•나의 손과/그녀의 손이/서로 잡았을 때/우리는 고마움을 알았다.//그대여, 고생이 많지?/미안한 마음은 할 말이 없다./냇물에는 달빛이 어린다./눈물에는 애정이 어린다.(「7거」)

•세계를 가장/사랑하는 모국은/동족을 가장/사랑하는 나라였다.(「7거」)

•사랑하기 위해/사랑은 자연을/사랑할/수밖에 없다.(「9거」)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그리운 강산은 잊지 못한다.(「9거」)


<구거>에서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을 거쳐 자연이나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외연이 넓어진다. 「7거」의 ‘동족에 대한 사랑’이나 「9거」의 ‘그리운 강산에 대한 사랑’은 앞에서 언급한 ‘통일 조국’의 ‘거’와 연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거니와, ‘나’의 초월과 박애의 사상을 또 하나의 ‘거’의 상상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구용은 욕계에 머무는 각양각색 인간군상의 세태를 이 두 개의 ‘거’의 상상력 주변에 흩어놓고, 그 세태의 차이가 무화되는 ‘본질’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정신주의적 지향을 보여준다. 비상비비상처를 향한 도정은 역설적으로 욕계의 여러 세태를 통해 부각된다. 가령 농촌에 만연한 도박, 대학가에 번지는 유흥문화, 환경오염, 인신매매, 이혼율 증가 등 사회문제, 문화의 상업화, 기술지상주의 등의 세태는 욕계 인천人天을 형상화한 것이다. 김구용은 그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불법佛法에 정진하여 더 높은 정신의 세계에 ‘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능의 추구와/정신의 기다림에서/시간에서 벗어난 문조文鳥는/시간만한 문조.(「1거」)

•마음의 자유/안개 가득한 자궁/보시布施의 태양/비경秘境에 관한 학문,(「2거」)

•좁은 내[我]가/사물의 모양으로 충만한다./일용품들과 말을 하다가 보면/서투른 만큼 몇 번씩 손질을 한다.//그러다가도 행동의 한계에서/수목들이 지나가는 사이로/흐르는 물소리는/무한을 벗어나네.(「2거」)

•자유자재로운 능력은/한 생각만으로도 통일하였다.(「3거」)

•생각만으로도/어디든지 간다./이처럼 석가釋迦의 손을/빈 손으로 잡는다.(「4거」)

• 몸은 말을 잘 듣지 않기에/안타까운 일이 간혹 있지만/그 귀가 무설설無說說을 듣는다./그 입은 자비를 말한다.(「9거」)

• 신앙으로 근심은/걱정을 잊고 있다./정신적 작용은/마음의 양식을 섭취한다.(「9거」)

• 대저 얼굴은 생각을 표정으로 나타낸다./그러나 정신은 형태가 없다./그러므로 없는 형태가/현실화하는 차원을 이룩하고 있다.(「9거」)


정신의 자유자재, 정신의 권능을 강조한 이와 같은 구절들은 서구의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의 광대한 가능성에 권위를 부여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강박이나 편집증에 시달려야만 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욕계를 넘어서 본질에 접근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비록 인용한 구절들이 비상비비상처의 생각함도 없고 생각하지 않음도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세태와 섞일 수 없는 정신주의적 지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김구용은 색의 세계에 현혹되지 않고 “온 곳을 모르듯이/간 곳조차 모르다가/순식간에 알았다면/보여다오, 무엇인지를.”(「2거」)이나 “다르기에 같다면/본질은 무엇인가.”(「4거」)에서처럼 부단히 본원적인 것을 추구했다. 그 본질에 도달한 것이 종교적 경지라면 문학은 역시 그 경지로 가는 도정만을 언어적 방편에 기대어 그릴 수 있을 따름이다. 문학이 그 언어조차도 필요 없는 경지에 이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문학의 영역에 머물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구거>에서 종교적 법열의 순간이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로 표현된 것도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경유하지 않고는 종교의 영역을 표현할 언어적 방편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여겨진다.


•햇빛은 의류라서/하나가 전부였다./허나 연꽃이 피는 옥은/어느 물에서 노는 것일까.(「2거」)

•가릉빈가 새는/백마白馬를 안내한다./혜초 스님이 보았다는/산천이다.//나는 말에서 내려와/꽃나무들 사이로 오는/나와 만나자 우리는/정중히 인사를 나누었다.(「2거」)

•말씀을 무에 심었더니/한 쌍 문조文鳥는 어두움을 지킨다./불[火]은 방마다 각각 하나씩이요/별들은 각기 섬으로서 떠돌아(「3거」)

•하늘에 핀 연꽃과/바다에 솟은 꿈나무는/누구나 보며/어디서나 본다.(「5거」)

•시간과 빛에서/만난 그림자가/조용히 움직이는/관세음의 팔을 보았다.(「5거」)


<구거>의 초현실성은 <송백팔>에 비해서도 한층 불교적이다. 예를 들어 <구거>의 초현실성은 예외 없이 ‘가릉빈가’, ‘백마’ 등 불사佛事와 관련 있는 영수들이 등장하거나 연화경적 상징인 ‘연꽃’이 허공에 나타나는 것을 통해 구현된다. 이 불교적 초현실주의의 풍경은 욕계의 세태와 대비되면서 더욱 부각된다. <구거>는 궁극적으로 ‘통일 조국’과 비상비비상처의 정신주의적 진경의 세계, 불법의 세계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거니와, 이 초현실주의적 풍경은 아직 이르지 못했기에 본 적이 없는 풍경, 욕계에는 아예 ‘없는’ 풍경, 전설로만 존재하는 풍경, 일상의 흐름에 생긴 꿈의 균열로부터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풍경으로만 상상적으로 그려진다.

<구거>의 초현실성은 통일이라는 사회적 과제와 <금강경>의 구유정거에 나타난 ‘나’의 초월, ‘유상有想’도 없고 ‘무상無想’도 없는 경지에 대한 지향이라는 두 주제를 하나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단순히 종교적인 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의의가 있다. 한편으로 분단의 원인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이 안 된 채 당위적으로 통일 문제를 다룬 점은 한계로 지적할 수 있지만, <구곡>이나 <송백팔> 등 전작들에 비해 4행이라는 반정형의 제약 속에서 패턴화된 구문을 활용하여 이미 여러 차례 비판 받아온 자신의 난해성을 해소하려고 시도한 점은 호불호를 떠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연과 연 사이의 비약으로 인한 난해성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고, 유사한 소재나 문구를 재사용하는 데서 기인한 식상함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구거>가 김구용의 만년에 씌어진 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문제들은 그리 큰 결점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구거>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종교적 과업들을 후속 세대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자녀들이나 제자들에게 남겨주었다. “그가 못하는 일을/남들이 다한다./선생이 못하는 일을/제자들이 다한다.” 혹은 “아이들이 잘 생겼으니/나라가 잘될 것이다.”(이상 「8거」)와 같은 기대는 오늘날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순박한 기대였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순박함에 대한 비판은 온전하게 김구용만의 몫이라기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후대에게도 돌아가는 것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6. 맺음말

김구용의 시는 방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다성적인 구성과 불교적 오의로 인해 난해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전체적인 조망과 이해가 쉽지만은 않다.

1950년대 그의 장시들은 돌이켜보면 전중과 전후에 발표된 내러티브가 약한 자의식 과잉의 소설들에 비하면 훨씬 더 ‘소설적’인 형태였다. 그는 김동리, 조연현 등 보수적인 선배 문인들과 깊은 관계가 있었지만, 시에 있어서는 상당히 진취적인 실험가였던 것이다. 「소인」, 「꿈의 이상」과 같은 형식을 그가 계속 추구했다면 그는 아마도 소설가로 전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중심의 접맥」이나 「불협화음의 꽃·Ⅱ」와 같은 다성적인 구성을 더 발전시킴으로써 여전히 시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구용의 초현실주의는 1950년대에는 실존주의 등 서구 사조의 영향을 완전히 벗지는 못한 상태였지만, 전후의 현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회복을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점에서 조향 등 여타의 초현실주의 시인들과는 차별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구곡>은 주로 ‘선적인 초현실주의’라는 맥락에서 검토되고 있지만, 그것은 <송백팔>에 더 어울릴 프레임이다. 애초에 「곡」 연작이 4·19를 계기로 하여 집필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1곡」부터 「4곡」까지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구곡>은 한국 근현대사의 후진성과 당대 현실 정치의 후진성을 겹쳐 읽으면서 그 극복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매우 급진적인 사회 정치적 상상력의 소산이었으며, 구도적 실천을 통해 그 질곡을 넘어서고자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실천적인 초현실주의의 기획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송백팔>은 전작에 비해 좀 더 불교적인 사상에 기운 감이 있지만, 단순히 종교적인 깨달음을 노래한 송가와는 차원이 다른 시집이다. <송백팔>은 각종 현실적인 고민이나 번뇌의 양상이 추상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제시되어 있었고, 그 해결책을 ‘나’와 ‘너’의 경계를 무화하는 불교의 ‘불이 사상’에서 찾는 기획을 내포하고 있었다. <송백팔>은 당대의 민중·민족적 과제와는 동떨어진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서구의 초현실주의를 불교적 사유로 녹아낸 새로운 초현실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한 작품으로 거론할 만하다.

<구거>는 <금강경>의 구유정거적 발상에 근거하여 <송백팔>보다는 일층 불교적인 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기실 ‘통일’에 대한 화두를 집요하게 꺼내든 작품이라는 맥락에서 일정하게 당대 사회와의 연결을 유지한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구용은 이 연작에서 ‘가정’으로부터 ‘통일 조국’으로의 확산적 사유, ‘나’의 초월이라는 확산적 사유를 겹쳐놓는 방식으로 당대의 세태와 종교적 주제를 통합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김구용은 <송백팔>에서 실험한 불교적 초현실주의를 다시 사회성을 띤 대승적 성격의 불교적 초현실주의로 승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여겨진다. 단, 그 ‘통일’에 대한 사유가 당위론이나 낭만적 민족주의에 기댄 것이라는 일정한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점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전쟁의 충격으로 자기를 잃고 성과 과중한 업무에 수금되어 있던 김구용 시의 세계는 초현실주의의 몽환적 형식을 통해 현실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로 발전하다가, 그 구원의 경로를 불교적인 사유에서 찾고자 하는 데로 전회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구곡>, <송백팔>, <구거>로 이어지는 3부작을 경유하면서 서구적 사조의 영향이 퇴색하고 점점 불교적 사유의 영향이 강화되면서, 김구용은 그 특유의 문체와 초현실주의적 의장을 완성해갔다. 그러나 그 초현실주의의 양상은 개인의 꿈만을 그린 것이라거나 비현실적인 망상들을 늘어놓는 식의 퇴폐적인 양상이 아니라 개인 안에 사회를 끌어들여 종합하는 다성적 방식으로 ‘비판적’ 초현실주의의 양상을 띠었다. 사실 1930년대 이상李箱의 계보라고 한다면, 이상의 스타일이나 기법의 차원이 아니라 당대 일제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던 그 시각의 급진성이라는 맥락에서 김구용의 초현실주의가 이상의 계보와 이어져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구용 시에 대한 연구는 <김구용문학전집>이 간행된 이래 이제야 비로소 본격화되고 있다는 감이 있지만, 한편으로 ‘정전’의 문제가 이 전집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은 유감이다. 이 전집이 시인 본인의 가필을 통해 최종적 정전으로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가령 발표 당시의 시가 더 당대 현실에 대응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는 없는가의 문제, 완성도 면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가의 문제 등은 이제라도 다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비록 연작시 3부작의 일부로 포섭되었다고 하더라도, 각종 문예지에 일정한 제목을 달고 발표한 그의 시 작품들이 <김구용문학전집>에는 빠져 있는 점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가령 민음사판 <미당시전집>에는 행갈이가 되어 있는 「해일」과 산문형식으로 이어 쓴 「해일」이 별개의 작품으로 실려 있는데, 그것은 행갈이 하나에도 시인의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제목이 있는 시가 연작의 일부로 들어가 있다고 해서 제목이 붙여진 채 발표된 시를 전집에서 누락시킨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지면에서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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