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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봄호) 집중조명 /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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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92회 작성일 11-05-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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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영

오어사吾魚寺 외 9편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풀어준 네 마리 물고기 중에 겨우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둘은 살아난 물고기가 서로 자기 물고기라 우겼다 해서 오어사라 했다는데, 설마스럽다. 조금 다른 이야기도 있다. 웬 똥 이야기가 구구절절이다. 두 스님이 물고기를 실컷 잡아먹고는 부끄러워 물속에서 똥을 누었다는데, 물고기 한 마리가 똥 속에서 파닥거리며 살아났겠다. 그러니 그 물고기 서로 자기 똥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보나마나 살생하고 오리발 내미는 꼴이나 다름이 없으렸다. 

겨레의 똥이 통째로 흘러나가는 치수사업이 시끄럽다. 한동안 소화불량인 까닭이 똥줄기 막혀서라는 것이 옳은 주장인 듯도 하다. 시원스럽게 똥을 누려면 뚫어야 한다니 그럴 만도 하지만 똥줄기 뚫어서 황금덩어리 만들겠다는 욕심인가 싶어 저으기 의심스럽다. 똥줄기 파헤쳐서 잘 흘러가게 만들면 똥이 황금으로 변할 수도 있나보다. 우선은 똥도 황금이나 비슷해 보일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지만, 산도 똥이요 물도 똥인 세상이다.






호랑이코트


어릴 적 어머니의 호랑이코트를 입고 어흥어흥 폼을 잡은 적이 있다. 여자아이처럼 예뻐 보이려 살랑살랑 걷지 않아도 되었다. 위엄과 용맹으로 으시대면서 걸으면 되었다. 호랑이는 위력이 있었다. 호랑이코트를 입은 나는 금세 호랑이가 되었고, 호랑이코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즉각 토끼로 둔갑하였다. 나는 하루종일 호랑이코트를 벗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에도 볼 일을 볼 때에도 입은 채였다. 잠을 자야할 시간에도 입은 채였는데, 

어쩌다 늦은 밤 등잔불에 그슬리고 말았다. 한 순간 방심으로 호랑이가 위엄을 잃었다. 도무지 고쳐 입을 수 있는 꼴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가 곧 호랑이코트를 다시 사올 줄로 믿었지만, 어머니는 다시 호랑이코트를 사오지 않았다. 호랑이 나라인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남북을 오르내리다가 비무장지대 지뢰를 밟고 모조리 죽어버린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입고 놀았던 호랑이코트가 우리나라의 마지막 호랑이였다고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닭님


깜깜한 밤이 온통 산발한 머리카락이다. 방문을 열고 배를 쥐어짜다가 후레쉬를 들고 마당으로 나선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머리털이 쭈삣거린다. 핏물 줄줄 흐르는 손톱이 뒷덜미를 덮친다. 휙, 돌아서며 후레쉬를 빙빙 돌리면 사라지고 없다. 냅다 변소로 뛰어간다. 쪼그리고 앉아 줄줄이 불러대던 감람나무 노래. 며칠 후 며칠 후 강 같은 평화 있으리. 사탕 얻어먹으며 주워들은 찬송가가 고마운 지킴이가 된다. 볼 일 끝나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한달음에 뛰어 들어와 벌떡벌떡 냉수 한 잔 들이킨다. 어두운 밤은 정말 무섭다. 어머니 일러주신 대로 닭장 앞으로 가 머리를 조아리며 손을 모은다. 닭님, 닭님, 제발 밤똥 좀 가져가 주세요. 하느님만큼 쎈 닭님이다.






도깨비 방망이


밤길을 가다가 도깨비와 한 판 씨름이다. 서로 허리춤을 틀어잡고, 배지기, 안다리 걸기, 자반뒤집기로 밤새 실갱이를 한다. 다행히 그를 이기면 도깨비방망이 하나 얻는다. 옛날에는 도깨비를 이긴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부럽고도 신이 나는 전설이다. 밥 나와라, 뚝딱. 집 나와라, 뚝딱. 로또 당첨번호 나와라, 뚝딱.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신명 나고 꿈 같은 도깨비 나라로 달려간다. 그러나 도깨비를 만나 힘겨운 씨름판을 벌여도, 도깨비방망이 훔쳐 사정없이 휘둘러보아도 배는 여전히 고프다. 씹어 삼킬 수가 없어. 먹거리가 아니야. 저것들에게 홀려 어둠 속에서 헐레벌떡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애걸복걸 하다가 훤히 날이 새는 밤이야. 






그 여자의 집


아침에도 일몰이고 점심에도 일몰이고 저녁에도 일몰이네.

씨 없는 열매를 먹고 꽃 없이 열매가 익는 나무를 심네.

다독다독 어둠을 달래며 마음이 먼저 방방이 불을 켜네.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세포 분열을 하는 불빛이 홀로 외롭네.






지하철 풍경


출입문 앞 젊은 남녀의 입술이 닿을락 말락이다. 공기방울 같은 몸을 부스럭거리며 소리 없이 길고 긴 대화를 한다. 벌침 같은 손가락이 헤실거리는 꽃잎을 꼭 누르면 짜르르, 고압전류처럼 불이 번쩍거린다. 열차 안의 모든 풍경들이 꾸욱 꾹 가속페달을 밟는다. 청보리가 쑥쑥 자라며 풀냄새가 모든 코를 자극한다. 스믈스믈 안개가 자욱하다. 화들짝, 시절도 모르고 꽃망울이 터진다. 취한 바람이 덜커덩덜커덩 소리를 낸다. 어깨에서 허리로 기어가는 손끝에서 모든 입술들이 타고 있다. 열망이 열 개, 백 개, 천 개, 만 개의 꽃을 일시에 피우고 있다.






집착


그가 내 눈 속에 들어와 살고 있다
눈 속에서 나를 향해 훨훨 날아온다
앞태가 곱다가 뒤태는 처연하기도 하다
눈길이 멀고 멀어도 끝끝내 따라 잡는다
그가 오면 내 눈은 그를 잡으려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앞이 캄캄해진다
나보다 먼저 나를 찾아내고 나보다 먼저 웃는다
눈 속에서 반짝이는 그의 별자리에는 
원추리도 피고 꽹과리 소리도 울린다
눈 속에 달이 떠올라 먼 바다가 밀려오면
그가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몸을 비튼다
깊을수록 거세지는 파도처럼 통증이 눈을 덮쳐도
그의 그물망을 뚫지 못하는 내 눈
속에서 나는 그를 꺼내지 못한다






벼랑 위에 핀 꽃


그녀가 절벽 위에서 뛰어다닌다. 팔짝팔짝 날다람쥐 같은 그녀를 절벽이 허둥지둥 쫓아다닌다. 돌이며 넝쿨이며 뿌리, 줄을 타고, 공중그네를 뛰고, 거꾸로 매달린다. 서커스처럼 황홀하다. 그녀, 손풍금 튕기면서 유연하게 재주를 넘는다.

오금이 저려 다가갈 수는 없지만, 어찌어찌 하여 벼랑 끝에 서다보면 슬쩍, 한 발 헛디디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허공이다. 시퍼런 칼을 들고 훨훨 날아 거미줄 같은 운명의 줄을 툭툭 끊어버린다. 무정한 하늘빛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거미줄에 걸려있다. 우우우, 몰려다니는 진혼곡 소리 들으며 길 잃은 사슴이 울고 있다.

줄넘기를 할까요.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들어오세요. 집은 어디이고 나이는 몇이세요. 이름이 뭐에요. 통성명을 하고 들어가는 유방암 병동에는 하루에도 몇 개씩 절벽이 솟는다. 저승문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다가 절로 벼랑으로 뚝 떨어진다. 그녀가 절벽을 씽씽 돌린다. 떨어지는 꽃잎이 통통 튀어 






신데렐라


반짝이는 유리구두 앞에서 신데렐라는 잠깐씩 사라진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왕자의 품에 안겨 황금궁전으로 들어간다.

마법이 풀리는 밤 12시, 어둠이 몸을 틀어 단꿈을 깨우고, 황금마차가 사라진 꿈속에서, 몇 세기에 걸쳐 꾸역꾸역, 판화처럼 여자들의 꿈이 찍혀 나오고 있다. 유리구두 하나가 제 짝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녀들이 바닥 없는 꿈속으로 발길을 돌린다.  

저요, 저요, 발가락을 자르고 발뒤꿈치를 깎는다.
신비스러운 모나리자의 미소로 마법사를 유혹한다.
손끝이 저리도록 눅눅한 어둠을 어루만진다. 

그리움의 통점은 하늘 끝, 땅 끝이다. 어디를 겨냥해도 백발백중이다.
잃어버린 꿈을 찾아 마법의 지팡이는 마법사의 손을 떠났다.

깊은 꿈, 그녀들이 황금마차를 타고 어둠의 늪을 빠져나간다.







유령의 식사


내 밥상 밑에 누가 있다. 아작아작 씹는 소리에 어깨춤이 덩실거린다. 삼삼칠박수를 때린다. 깨작거리면 밥숟가락 내던질까봐 안절부절이다. 내가 낳아주기를 기다리는 태아 같지만 실은 그가 나를 사육하고 있다. 식은 밥에 묵은지라도 행복하기를 빌고 있다. 간절한 염원에 숟가락은 낭창낭창 꽃대궁이다. 차려진 밥상은 날마다 봄날이다. 

달콤한 식사가 끝나면 나는 기도를 바친다. 천주여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천주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포동포동한 기도를 받아먹은 그가 관 밖으로 훨훨 날아간다. 죄와 벌이 가득한 내 관 속에도 화들짝 꽃잎이 피어난다. 끼니 때마다 기계처럼 기도한다, 죽은 내가 날름 받아먹는다.




시작메모
아름다운 모국어의 풀밭에서 뒹구는 기쁨

시인은 시를 잘 쓰는 사람이기보다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사모하는 마음에 그리움이 자라고 외로움이 밀려와서 날이면 날마다 잠 못 들고 서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이다. 늘 어쩔 줄 모르는 나도 여기서는 마음 놓고 뒹군다. 시를 만날 때의 가슴 떨리는 설레임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설레임이 온몸을 뒤흔들면 무작정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로켓을 탄다. 산을 만나면 산이 되고,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되고, 별을 만나면 별이 된다. 번번이 창밖의 멋진 풍경에 홀려, 내려야할 역을 놓쳐버린 시 하나 배낭에 쑤셔 넣고 오기 일쑤다. 시도 때도 없이 도지는 역마살에 이래저래 배낭만 커진다. 길을 갈 때는 대꼬바리 하나도 짐이라는데. 홍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말의 향연에 빠져 주제를 놓치지는 말아야겠다. 아름다운 모국어의 풀밭에서 뒹구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유혜영∙200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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