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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호(봄호)/신작시/박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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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
세계의 구두 외 1편
구두는 발을 감싸고
우리는 구두의 내부를 까맣게 잊는다
약을 칠해야 살아나는 빛
검은색을 내미는 까끌까끌한 혀
구두 가득 태운 식빵 냄새 풍긴다
구두의 속은 어제의 잠처럼 축축하고
심해에 내리는 눈처럼 본 적이 없다
스프링처럼 주름을 접었다 펼치며
구두는 빨라진다
주름 사이에서 햇빛이 각을 잃고 넘어진다
탐험하듯 발가락에 힘을 키운다
로큰롤에 맞춰 뒤꿈치를 딸깍거린다
올라선 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구두를 벗어나 멀리 걸어본다
어둠은 여러 테두리를 둘렀다
영원한 혼자가 되게 아름다운 골목을 선물해다오
구두가 한없이 깊어져 발을 뺄 수 없을 때
우리의 침실 안으로 구두는 옮겨진다
구두는 잠든다
구두는 기억된다
서랍 속에 개켜진 양말을 안다
공터의 소요
나비는 죽었다
바람의 소용돌이
은행잎이 날아오른다 산탄처럼 허공에 박힌다
바람이 허공을 파헤친다
바람의 장대
바람의 우산
떨어지는 은행잎
햇살과 찬바람의 어질머리
은행잎이 때린다 들러붙는다
검은색 나비넥타이
나는 무덤에 발을 집어넣고
소요를 견디는 자
마네킹 같이 차가운 손을 하고
로터리의 꽃처럼 나는 피로하고 어지럽다
나비는 죽었다
건너편 신용금고 간판이 흔들린다
박정석∙2004년 ≪현대시≫로 등단. 경원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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