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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호(2010년 겨울호)/신작시/김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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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42회 작성일 11-05-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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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옥
전설 외 1편


강화에 배치된 해병들 사이에 청룡마크사를 모르는 해병은 없다네
터미널을 나와 꽃집 골목으로 들어가면 낡은 해병모자가 걸린 집이네
마크사 주인이 해병 출신도 아니고 친절하게 커피를 타주어서도 아니고
매끈한 바느질 솜씨도 아니라네
오로지 가끔 가게에 나와 앉아있는 딸 때문이라네
휴가병들은 오고 가는 길에 반드시 그곳에 다녀와 그녀의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네
‘긴 생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이 마스크 그녀가 찾아 주었습니다’
‘한참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통신병들은 그녀의 새로운 소식들을 은어로 비장하게 전하기도 한다네
‘여친, 금일 09시 서울행 3000번. 여친, 금일 18시 터미널 도착. 여신, 금일 12시 블루미용실…….’
제대를 앞둔 어떤 사병은 제댓날까지 마음앓이를 하다 마지못해 제대했고
전출을 앞둔 어떤 사병은 끝까지 남아 있겠다고 버티다 기어이 끌려갔다고도 하네

어느 날 새로 배치된 초병이 이등병 계급장을 달러 그곳에 갔었다고 말했다네
그러자 사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제각각 예쁜 여자가, 정말 예쁜 여자가,
신민아보다 예쁜 여자가 ‘‘잘 있느냐?’고 질문을 퍼부었다네
초병이 어리둥절해서 그저 젊은 아가씨가 있더라고 했다가        
모자를 빼앗기고 주먹다짐까지 받는 곤욕을 치렀다네
그들이 그녀가 왜 예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던 일등병 내 아들도
터미널에 가면 우연인척 다녀오는 걸 나는 모르는 체 한다네

 

 

 

 


산밑마을*에 가면


부처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네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인 플라스틱 빈 통들을 녹여 찍어낸다네
공장에서 나오는 시큼한 냄새가 장수천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가고
늦은 저녁이면 비닐로 포장된 부처들이 어디론가 실려 간다네
주인은 간판도 없이 금부처 한 분 처마 위에 올려놓았다네

처마 위에 부처님은 대공원으로 가는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네
맞은편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조차 부처를 본 사람은 드물다네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던 사람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금부처를 보았다고 입을 모았네
유난히 아름다운 석양이 산밑마을을 파고드는 것에 한눈파는 운전자는
부처가 되쏜 빛에 눈이 찔려 차를 가로수에 들이박거나
시궁창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고 하네

폭설로 지붕 위에 쌓였던 눈이 무너져 내리던 날
처마 위에 부처님이 마당으로 곤두박질쳤다네
그를 일으키려던 사람들이
부처님 등허리에서 어른 주먹이 쑥 들어갈 만한 구멍을 보았다고 말했네
구멍 속을 들여다 본 이들은
속이 텅 빈 부처님 몸속에 알 수 없는 숫자가 붉은 색연필로 쓰여 있었고
엿가락처럼 녹은 플라스틱 조각이 누더기처럼 붙어 있더라는데

*산밑마을:인천 만수동.

김종옥∙인천 출생. 2005년 ≪애지≫로 등단. 시집 <잠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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