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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호(2010년 겨울호)/신작시/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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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빈집 바이러스 외 1편
화초들이 하나 같이 가물거린다
어쩌자고 고것들은
된바람 맞고 몸져누운
안주인 흉내를 내고 있는지
누렇게 뼈를 세운 고것들이
그 몹쓸 바람의 배후라는 생각이 들자
마른 화초를 확, 움켜쥔다
아무런 저항 없이 온전히 뽑히는
고것들을 쓰레기봉지 속에 처박는다
그리고 투명자루 속에 가둔
좀비를 들여다보듯 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숨 없이 까칠한 빈 화분들
누가 손이라도 내밀면
금세 무너질 것 같은
내 안의 빈 집까지 빈 집이 여러 채다
소리무덤 빈 집에는
희뿌연 먼지가 알을 낳고
오랫동안 쌓인 정적이 와글와글하다
하루살이 떼와 춤을
좁은 산길이 새까맣게 북적거린다. 하루를 살기 위해 천 일 동안 수행하고 날개를 얻은 하루살이 떼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양평 대명콘도 살충등에 머리박고 자멸한 그네들 부족을 본 증인이라고 해도 나는 어쩔 수 없다. 그 날은 유난히 괴괴한 여름밤이었고 짙게 드리운 어둠을 배경으로 살충등이 달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어둠 속 헤매는 날것들에게 구원 같은 불빛이었으니까, 냉혈적으로 잘 조작된 살충등은 아주 은밀하게 날것들을 불러 들였고, 환한 불 속으로 뛰어드는 하루살이들의 눈 먼 죽음 앞에서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깊이 상심했으므로……
불씨를 얻기 위해 맹목의 허기만 남은 하루살이들은 꺼져가는 불이다. 잦아들다가 다시 솟구치는 불 속에 갇힌 나는 싸리나뭇가지를 꺾어들고 도리깨질한다. 나를 돌아보니 하루살이 떼와 춤을 추고 있다.
정영희∙200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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