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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호(2010년 겨울호)/신작시/이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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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12회 작성일 11-05-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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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찬
스마일  외 1편


명백하고 순수한 멍게들 룰루랄라, 구멍이란 구멍 죄다 헤집고 음악이 새어나오는 쥬크박스 멍멍, 내 방 창가를 어슬렁거리는 문장들 스마일 스마일 환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이 밤, 멍게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두 눈 질끈 감고 찡그리듯 윙크하면 짙푸른 보라색 접시 위에 올려진 살점,

살점들의 너와 나!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될 저 불특정 다수의 날 것들, 물컹거리는 오늘 밤은 무슨 색으로 멍들고 있나요? 뒈져라

뒈져라고, 울먹이는 쥬크박스 칼이 불쑥 제 집인 양  뱃속을 파고들면 배부른 멍게들은 접시를 생각할까요, 뜨겁게 달궈진 울음을 토해낼까요? 지글지글 피가 튀겨 올라도 걱정말아요 차분히 거친 숨 몰아쉬며 스마일 스마일 자, 다음 표정은 누굴 위한 파티일까요? 목이 잘린 채, 스마일 스마일  


RE, Bible


* 요한계시록
매주 수요일 저녁 예배는 모기퇴치에 관한 강해가 있는 날이다. 마귀와 사탄, 귀신이나 악마들은 역시 모기의 일족이었다. 그들에게 계보나 족보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자식을 볼모로 자신의 학구열을 올리는 조금은 극성스러운 엄마들과 닮았다.

* 메세지
열대야로 후끈 달아오른 양철 지붕 아래, 한 사내가 열십자로 누워 곤한 잠에 빠져 있다. 제수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그는 늘 팬티바람이다.

* 방주
옆집 아줌마의 정체가 탄로 났다. 그녀는 동네에서 가장 악명 높은 첨탑의 권사였고,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에게 기생하는 충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설계와 내세에 관한 권유는 현생을 담보로 하는 사기였고, 총 66권으로 된 약관은 해독불가의 암호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까운 피를 몽땅 다 빨렸다. 종말에는 우르르 그녀 집에 몰려가 수혈을 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녀가 퍼뜨리는 건 전염병이 아니라 복음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믿음이 생길 동 말 동하기도 한다.

* 안개
서기관이 벽에 피를 토한 채 죽어 있다. 지나가던 바리새인도 온몸 뻣뻣이 굳은 채로 밤새 안녕했다. 앵앵거리는 신도들의 방언기도는 하나님께 보통 성가신 게 아닐 것이다. 인생이란 참 한치 앞도 모를 일이다.

* 천국
혓바닥은 여기서 한참을 멀다, 그곳이 가렵다.

* 보혈    
가려운 곳을, 피가 나도록 긁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아, 또, 피!  

* 삼위일체  
내 신앙에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 그들은 보증이나 담보 없이도 거액의 믿음을 대출해주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찾아와 하루치의 보혈을 강탈해갔다. 신용은 불량이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베드로의 삼대독자, 베드로의 뼈아픈 후회. 원금이 이자를 낳고 이자가 또 이자를 낳는, 성경 속 족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후한 복리인 셈이니 그들에게 저당 잡힐 세간의 목록이 마침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인류 최초의 부채인 아담과 이브를 세 번씩이나 부인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신은 피도 눈물도 없이 가혹한 대부업자이지만 일수와 사채는 복수이면서도 단수인, 독생자와 더불어 영원히 한 몸이었다.  

이광찬∙2009년 ≪서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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