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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2010년 겨울호) 이연도/동양예술 정신과 ‘경계境界’론/고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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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212회 작성일 11-05-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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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比․批|동양 미학과 고전 읽기

동양예술 정신과 ‘경계境界’론

이연도(강원대 철학과 교수)




1.

‘미학美學’은 ‘aesthetics’의 번역어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초기 나카에 조민(中江兆民, 1847∼1901)이 번역한 것으로, 그 원래 의미는 그리스어의 ‘감각aesthesis’에 ‘감성학aesthetica’이라는 라틴어 명칭을 부여했던 것이 시초이다. 근대 서양에서 미학이라는 학문이 성립하게 된 배경에는 고대 그리스 이래 인간의 정신을 지식, 정감, 의지로 파악한 서양철학의 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양에서 미학은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으로 미beauty와 예술fine arts이라는 고유한 대상영역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동양은 서양과는 다른 사유 형태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동양미학 혹은 동양예술철학이 가지는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동양에선 인간의 정신을 지, 정, 의로 구분하지 않고, 이를 통합적으로 사유한다. 칸트의 철학체계로 말하자면 <실천이성비판>에 ‘순수이성’이나 ‘판단력’을 쑤셔 넣어 한꺼번에 얘기하는 셈이다. 동양에서 미학은 '아름다움' 자체나 예술arts, 혹은 ‘감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양미학이 체계적인 학으로 성립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작업은 동양철학의 문맥 속에서 자신을 전개할 기본개념을 찾는 일이다.

현대중국의 미학자 왕국유王國維는 그의 저서 <인간사화人間詞話>에서 ‘문장은 경계를 으뜸으로 친다詞以境界爲最上’고 말한다. ‘경계’가 있으면 저절로 높은 격조가 생기고 뛰어난 문장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계’라는 개념은 문학작품이 도달하는 수준을 의미하며, 동시에 문학작품이 추구하는 표준이다. 우리 말 ‘경지境地’와 비슷한 의미인 이 ‘경계境界’개념은 중국미학을 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로 쓰인다. 현대 신유가의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인 풍우란은 ‘경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우주와 인생에 대한 사람들의 깨달음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우주와 인생이 사람들에 대해 갖는 의의도 또한 다르다. … 이처럼 우주와 인생이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의의를 지니므로, 사람들은 각각 모종의 경계境界를 구성하게 된다. ……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가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佛家의 형이상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된 세계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경계가 있다고 한다면, 꼭 불가의 형이상학에 근거를 두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 우리가 말하는 존재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나의 공통된 세계가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이 공통된 세계에 대한 깨달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 사람들은 이에 대해 각각 다른 의의를 지닌다. 이 공통된 세계에서 각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신원인新原人」)

여기 경계 이론에서 논의하는 것은 사실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사실에 부여하는 의의가 서로 다르므로, 각기 다른 경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 풍우란 ‘경계론’의 요체이다. 문제가 사실의 인식에 있지 않은 만큼, 여기에서 ‘옳고 그름’은 별반 중요하지 않다. ‘경계’론의 핵심은 객관 세계에 부여하는 각 사람의 의미가 중요한 만큼 ‘높고 낮음’ 혹은 ‘깊고 얕음’이다.

2.

도연명陶淵明의 연작시 「음주飮酒」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있다.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며

멀리 남산 바라본다

산 그림자 저녁이라 고운데

새들은 서로 짝지어 돌아간다

왕국유가 ‘경계’개념을 얘기하면서 드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시이다. 시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은일거사의 고즈넉한 풍경이다. 다만 시를 읽고 나면 남는 건 그 ‘마음’뿐이다. ‘풍경’과 ‘정감’이 하나로 통일되어 나타나는 개념, 이것이 바로 ‘경계’인 것이다. 시인은 있으되, ‘나’는 없는 경계, 그 무아지경無我之境의 경지가 곧 동양미학의 최고 경지이다. 그리고 이런 차원에서 동양문화를 ‘예술의 문화”라고 말하는 것이다.

동양의 문화전통은 윤리의식과 예술정신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 다만 동아시아를 지탱해 온 핵심 사상이 유학이었기 때문에 윤리 의식에 대한 논의는 풍부하게 진행된 반면, 예술정신에 대한 얘기는 별반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선진유학先秦儒學의 전통에서 보자면 도덕의 최고 경지는 일종의 예술 경지로 나타난다. 도덕 수양과 예술 정신의 함양은 모두 인격을 수양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 수양 정도는 지식인의 문화소양이 어느 정도인가를 드러내는 척도였다. 대만 철학자 서복관徐復觀이 말한 대로 “공자가 말한 인과 음악이 합일된 형태는 곧 도덕과 예술이 통일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시대, 교육의 핵심 내용은 ‘시를 배우는 것詩敎’와 ‘음악 교육樂敎’이었다.

시는 우리 마음의 의지를 분발하게 하고, 사물에 대한 관찰력을 높일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사회성을 길러주며, 정감을 표출하는 방법도 가르쳐 준다. 시를 배워 알게 된 도리는 가깝게는 부모를 나아가 임금을 섬기는 데 쓸 수 있다.(<論語ㆍ陽貨>) 공자가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고 말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형상적이며 상징적인 언어의 훈련은 인간의 정신을 현상 사물의 수평적 한계를 넘어서서 만든다. 이 때 인간의 정신은 개념적 세계의 저편에 있는 존재와 만날 수 있다. 음악 역시 인격 수양의 중요한 도구이다. 음악은 예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그 핵심은 조화로움에 있다. 음악이 드러내는 것은 선함과 아름다움의 합일 상태이다. 공자가 제나라에서 소악韶樂을 듣고 삼개월동안 고기 맛을 알지 못하였다.(<論語ㆍ八佾>) 그러므로 ‘시에서 흥을 얻고, 예를 근거로 서며, 음악에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한 것이다.(<論語ㆍ泰伯>) 공자는 인간의 정서를 중시하였으며, 이를 신학神學의 거대한 우상이나 상징으로 이끌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의 심리 즉 윤리가 지배하는 사회였으며, 거기에서 정서를 토로하고 만족을 느끼는 것이었다. <악론樂論>(荀子)과 <시학詩學>(아리스토텔레스)은 그 점에서 동서양 심미의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악론>은 예술의 일상적인 정서를 순화시키고 형성하는 기능을 중시한다. 여기에서 꾀하는 것은 정과 이의 결합이며, 이로서 정을 절제하는 평형감각이다. 이에 비해 <시학>은 예술의 인식·모방 기능과 종교적 정서에 가까운 정화기능을 중시한다.

3.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미학자 중의 한 명인 이택후李澤厚는 그의 저서 <미의 역정美的歷程>에서 유가와 도가의 학설이 2천년 중국사상의 기본 맥락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록 유가가 현실세계의 지배 담론으로 작용했지만, 도가 사상은 비판 담론으로 일정한 길항拮抗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볼 때 유가와 도가는 서로 주장하는 견해가 달랐으며, 서로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다. 도가道家 사상, 특히 <장자莊子>가 지향하는 인생경지에서 드러나는 예술정신은 동양의 예술사상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동양인의 세계관과 문화심리구조에 있어 도가 사상은 예술적 이상과 심미적 취향을 형성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자의 세계관 속에 있는 회의론적인 요소와 적극적인 인생 태도는, 순자荀子나 <역전易傳>에서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무신론으로 발전했으며, 다른 한편 장자의 범신론泛神論으로 변화 발전하였다. 장자는 ‘천지는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나 스스로 말하고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여, 자연과 예술을 독립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인위의 속박에 대해 거세게 저항하며 자유분방한 감정의 발산과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표현을 추구하였다. 유가가 후세의 문학·예술의 주제와 내용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면, 도가는 주로 창작의 법칙, 즉 심미審美 의식을 형성하는 토대 이론이 되었다. 서복관은 유가와 도가의 예술정신을 다음과 같이 비교하였다. ‘유가와 도가는 비록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모두 인생을 위한 예술이다. 다만 공자는 시작부터 의식적으로 음악을 인생 수양의 도구로 보고, 인격 완성의 경지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는 음악 그 자체에서 음악이 요구하는 것을 제기하고, 거기에서 음악의 최고경지를 체득하였다. 선진유가의 예술정신에 대한 파악이 비교적 분명하고 용이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장자는 근대 미학자 못지 않게 처음부터 미를 목적으로 하고, 예술을 대상으로 사고하였다. 그는 유가와 달리 어떤 특정한 예술 대상으로 구체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일상의 삶의 태도를 버림으로써 이상적 삶을 추구하였다.’

장자가 말하는 도를 단지 관념상으로 파악할 경우 사변적 형이상학의 성격을 띠지만, 그는 이를 인생의 체험으로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도의 본질은 가장 진실한 예술정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위진현학魏晉玄學은 유가와 도가를 융합하여 우주의 근본과 인생 경계를 관통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왕필王弼은 ‘무를 본체로 하며聖人体無’, 혜강惠岡은 명교名敎를 뛰어넘어 자연에 몸을 내맡긴다. 곽상郭象은 묘당廟堂에 서 있어도 그 마음은 산림山林에 있었다. 현학이 제창한 것은 ‘그 뜻을 얻으면 형상을 잊는 것得意忘象’이니, 언어란 단지 거기에 기탁하여 뜻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寄言以出意. 이러한 사유방식은 동양 예술론의 핵심 ‘그 정신을 전함傳神’의 철학적 배경이 되는 것이다. 간략한 언어 속에 담긴 심오한 철리哲理와 생동하는 예술성은 동양문화의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국과 중국의 선시禪詩들은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엄격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이학자理學者들에게도 이는 확인할 수 있다.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소옹, 주희, 육구연, 왕수인 등의 저작은 도처에서 ‘시문을 빌어 도를 말하며文所以載道’, ‘문예를 통해 도를 밝히고文所以明道’ 있다. 철학적 도리와 예술을 융합시키고 동양예술정신을 발전시키는데 있어 송명이학은 선진유학이나 위진 현학, 당송 불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5.

예술의 완미는 조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조화’와 ‘중용’의 정신은 동양 예술의 근본목표이다. 예술가의 그림 구도나 시구의 대련, 악장의 고저완급은 모두 고심 끝에 나온 것으로 완전한 조화를 지향하는 것들이다. 예술작품이 도달한 조화 정도는 곧 예술가의 수준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예술적 시야는 우리에게 삶을 넓게 보게 하고 마음에 평정을 준다. 이러한 예술정신을 기르는 데 있어 예술적 실천 활동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예술정신의 발휘는 각종 예술적 실천 활동을 주도하며, 이론의 체계화나 인식 자각을 통해 사회와 인생의 각 영역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창작이든 감상이든 예술 활동은 모두 한 사람의 내적 감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며, 인생 경지에 대한 그의 이해와 추구를 반영한다. 글쓰기나 고전 읽기, 회화나 음악 감상 등 예술 활동에 임하는 격조의 높고 낮음은 사람의 품격과 경지를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수양을 통해 예술 감상의 취미를 배양하는 것은 고상한 인격과 이상적 인생경지의 추구와 확립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창작 활동은 어느 정도 하늘이 부여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감상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노력 여하에 따라 일정 수준까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상 능력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정도까지 끌어 올리는 것은 예술정신을 함양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좋은 방법이다. 예술의 영역에서 완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인생 경지에 있어 가장 좋은 상태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이치이다. 이 것이 바로 동양 예술정신의 체현이다.

예술정신의 창조는 비단 창작 활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상 행위 역시 예술정신의 창조 행위이다. 시란 ‘그 뜻을 다하지 못하며詩無達詁’, 그 ‘미처 마치지 못한 뜻은 언어를 넘어 있는 것含不盡之意, 見于言外’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옛 그림들이 그린 것은 의미였지, 형상이 아니었다古畵畵意不畵形. 동양의 전통문화에서 언어와 형상은 단지 의미를 표현하는 공구에 불과한 것이다. 도연명이 ‘말하고자 하나 이미 그 언어를 잊은 상태欲辨已忘言’라 하지 않았던가. 이런 의미에서 작가의 본래 의미와 감상자가 느끼는 의미는 꼭 일치하지 않으며, 또한 같을 필요도 없다. 감상자는 완전히 자신의 느낌에 따라 시나 그림의 의경意境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창작자의 의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곧 감상자의 창조이다. 이러한 창조 속에 선명한 개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예술정신은 어느 한 순간 깨달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양철학의 핵심 화두가 수양에 있듯 이는 평생 동안 기르고 배워야 할 과제이다. 예술정신을 기르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은 좋은 작품, 고전을 많이 읽는 것이다. 여기서 ‘고전’이란 논어나 장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책들에도 인간 사색의 깊이와 실천의 고뇌를 고민하는 책들이 문학, 역사, 철학 등 각 장르에서 다양하게 존재한다. 호메로스의 시는 서양에서 최초의 교과서였으며, 습자나 작문 연습의 교본이었다. 맹자는 동아시아에서 2천년이 넘도록 ‘문기文氣’를 기르는 고전이었다. 한 사회의 정신적 발전과 독서능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또한 예술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칼 포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난 몇십 년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서적 시장의 확대를 받쳐주었던 ‘문화적 기적’에 힘입은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현재 상황은 상당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달 10일 국정감사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제출한 서울시내 8개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한양대)의 도서관 대출실적 자료를 보면, 이들 대학에서 가장 즐겨 읽는 책은 영국의 판타지소설인 <해리포터>로 나타났다. 3개 대학에서 대출 순위 1위였다.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나 오쿠다 히데오의 일본 소설류가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전이나 사상서 등 교양서는 이들 대학들의 대출 순위에서 자취를 찾기 힘들었다. 환타지 소설이 상상력의 발휘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독서가 인간의 정감 능력을 기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0개국 중 인쇄매체 접촉시간 조사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신문을 보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서너 명의 학생만이 손을 든다. 이는 TV나 인터넷과 같은 비주얼 정보에 익숙해져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은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대화한다. 신문이나 책과 같은 문자를 접하지 않는 사람은 점차 사고하는 습관이 없어져 간다. 비주얼 정보는 순식간에 감각으로 들어온다. 이에 비해 문자언어는 이미지와는 달리 금세 모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효율적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지만, 문자에서 이미지까지 가는 그 시간 차 속에서 인간의 뇌는 상상력과 사고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최초의 언어 운용능력이 생긴다. 예술적 감성을 기르는 데 책 읽기가 좋은 이유이다. 이런 역할은 책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책을 읽지 않으면 인간의 사고나 상상력은 성장하지 않는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청소년기에 처음 읽었을 때와 나이 든 후에 읽었을 때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자신의 사고와 상상력의 크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 철학자 전종서錢鍾書는 ‘풍격’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품성이 고명한 자의 시는 당시唐詩에 가깝고, 침잠하는 자의 시는 송시宋詩에 가깝다”고 하였다. 또 ‘한 문집 안에서 혹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어렸을 때는 재기발랄하여 당시를 짓다가 만년에 생각이 깊어지면서 송시에 젖어들게 된다’(<談藝錄>)고 말한다. 예술과 인생 경지에 대해 얘기한 것이지만, 오늘 우리 사회나 대학의 독서 실태를 생각하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 앞선다.



이연도∙중국철학박사. 강원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 중앙대 ‘동양예술사상’과 ‘동양현대철학’ 등 강의. 저서 <강유위가 들려주는 대동 이야기>, <인문치료와 철학> 등. 역서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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