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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2010년 겨울호) 집중조명/ 김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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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66회 작성일 11-05-1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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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은
기호에 관한 또 다른 오해 외 9편


그들은 한패거리죠 한 어깨씩 한다고 할까요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눈자위를 번뜩이며 무엇을 찾는지도, 골목어귀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기도 하고 바람의 끝자락을 붙잡기도 하지요 그들은 마구 뒤엉켜 있는 듯 보이지만 혼자서도 혼자 놀기에 진수를 보이죠 시도 때도 없이 펀치를 날리면서 잠깐씩 무표정했다가는 단순하게 마침표를 찍기도 해요 세 번째 문장 끝에서 오랫동안 눈물을 글썽이던 까닭을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디까지나 우리는 사적인 관계이니까요

패거리들이 내 손발을 묶어놓으려 했어요 온갖 것들로 널브러진 내 안과 밖은 너무 복잡했으니까요 처음이자 맨 나중 인사법을 늘 중얼거리고 있었답니다 한 때는 패거리들과 뒤엉켜 허공에서 허공을 연결하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몸이라고 생각했어요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나 오물거리는 입술을 어디에 숨겨야 하는 걸까요 번번이 그 패거리들을 지겨워했지만 사로잡히길 원한 적도 있어요 기우뚱 쏟아지는 말의 꼬리들을 어떻게 붙잡겠어요





광합성 도시


그래 오늘
이 골목을 습격하리라
말랑한 구름이 딱딱한 밥같이 굳어가는 

불 꺼진 상점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날아오르곤 하지 나는 갈갈거리다 갑자기 숙연해지기도 해 달아오른 열기 속으로 취한 목소리들이 흘러다니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꼬리를 문 그림자들이 뜯어먹기도 해 도시는 점점 뾰죡 해졌어 흐릿해진 풍경 속으로 고장 난 시계가 제 몸을 콜라쥬처럼 뜯어 던질 때마다 공중에서 폭파되는 머리통들, 헬륨풍선 같았지 검게 탄 햇빛 밖에서 미래의 홀로그램이 켜졌어 붉은 벨벳이 펼쳐지곤 했어 미래의 나를 생포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작동 중이었던 거야 간절한 눈빛 하나씩 목 매달아 놓고 말이지 나는 나로부터 탈출을 해야 했어 그런데 눈빛 선명한 저 비상벨을, 비상벨을 어디에 감춰야 할까 껌딱지 들러붙은 골목 끝에서 몇 번 씩 얼굴을 바꾸면서 털 빠진 개같이 검은 햇빛 속으로 미끌어져 볼까나





그 산이 거기 있다


산이 우는 걸 본 사림이 있다 그의 눈자위 늘 붉다 빗소리 차오르는 방 어둠을 한 겹씩 입는 손끝이 어눌하다 모르스 부호 같은 사막을 건너왔을까 바튼 숨소리가 모래 폭풍 속으로 흩어진다 옹크렸다 편 손바닥엔 한 뼘 우주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길이 가물거린다 깊게 패인 웅덩이 속에 거꾸로 누워있는 아버지의 산, 아이의 발목을 아슬아슬 잡고 있다  




너스레 공방전

더는 사는 것 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안에 있는 것도 아닌
이런 일들로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다
너스레를 
너스레를 떨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1월의 폭설은 쌓이고
세상의 모든 오른손들이 화톳장을 
뒤집듯이 어제와 어제 사이를 부인하지
입으론 진실을 말한다지만
네 눈은 허공을 딛고 있어
당신에 대한 질문의 시간
허기로 배를 채우는 공복의 시간들
우아하게 몰입했던가 
실타래처럼 얽혀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다
순식간에 우리에 갇힌 짐승들
종일 컹컹거리는,
창밖으로는 수만의 풍경들이 찢어지고
우리가 깜짝 파티를 즐기는 동안
분명한 얼굴들이 흐릿해지고 있어
원형의 링 위에서
승자도 패자도 피 흘리는

선빵을 날려볼까 
러시안 룰렛만 멋있는 건 아니잖아
입술과 입술 사이에
샤넬 NO.13 루으즈를 바르듯이 
한 번 더 우아하게 
방아쇠를 당겨 봐 




농담, 우리들의 식탁에 대하여


한 다발의 꽃을 안고 간다 햇빛과 어둠이 내 몸을 통과하는 동안 휘감는 바람 갈기를 밀어내면서 잠깐씩 무표정하거나 비관적 포스로 무릎을 꿇으며 꽃을 던진다 툭, 터지는 폭소들 양은냄비 속에 끓는 면발 같다 창밖으로 우리들의 오후가 킁킁거리고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당신의 립싱크가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갑자기 냉담해졌다 한 때는

구불구불한 당신의 정원에 머물렀다 침입의 현장을 이유 없이 감춘 채 사라져 버리려고 했다 너에게서 너에게로 스미는 접촉성 바이러스들, 내면에서 내면으로 이 모든 일들이 급속히 전파됐다 왜 한 패거리가 되어 키득 댔을까 그렇다면 우리들의 식탁은 우호적이었을까 얼굴과 얼굴 사이에서 뜨거운 혀를 내밀고 있는 사과 한 알, 오늘 우리들의 식탁은 아주 간단하거나 전혀 사소하지 않다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바람이 많아지고


잠들지 못하는 나의 노래를 들려주려 하네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바람이 많아지고 그대의 사막을 건너려 하네 이름 없는 꽃들이 속눈썹을 적셨겠지 컵을 흘러넘치는 저 물알갱이들은 어디로부터 몰려왔을까 몰려온 골짜기 협곡마다 깃털을 접으며, 한때는 우리가 아름답게 헝클어졌다고 생각했지 아무 곳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나를, 집중적인 소모의 방식으로 달려가는 나를, 검은새는 날아오르고 꿈에서처럼 오늘의 세계는 한 페이지 저물어가고 있었네 내 이마는 한 겹 얇아지고 슈가 프리 라떼를 홀짝거렸던가 책을 펼치고 마티니를 마셨던가 위그르 사막 어디쯤일까 뜨거운 행간 속으로 모래폭풍이 휘몰아쳤어 해답을 읽을 수 없는 도발적인 그대의 무심한 곡조같이 머리칼 흩날리고 나 지금 광활한 그대의 사막을 건너려 하네 




body blues*


거기, 안개 숲이 있다 아니, 없다 그 숲속에 바람이 솟구친다 나는 거기 없다 아니, 있다 이리저리 붙잡힌 발목들만 나뒹군다

거기, 안개 숲이 있다 안개 숲속에 머리카락이 솟구친다 하얀 비가 쏟아진다 회오리가 덮친다 하얀 안개비가 걸어온다 뱀 같은 길, 주름투성이 얼굴들이 고개를 빼죽거린다 하얀 뿌리를 더듬으며 날개를 퍼덕인다

숲을 가둔다 
안개를 가둔다
비를 가둔다

머리카락을 풀어놓았다
검은 자루가 미끌어졌다
축축한 몸뚱이가 흐물흐물 흘러내렸다

*저자 마리 아넷 브라운의 호르몬의 변화로 몸이 슬픔에 빠진 현상.





(  )는 여러 개의  입을 갖고 있다


드디어 그 가 (  )를 닫았다 
끊임없이 노크하던 당신의 바깥에 대해
우린 서로의 얼굴을 외면한 채
듣고 싶은 이야기만 기록했다

영원한 것은 한여름 포도 넝쿨 같아서
출렁이는 두 겹의 벽을 휘감아 오르는
농밀한 숨소리들

쇼케이스 안에 포장된 포장품의 현란한 몸짓과 
싸늘하게 식은 예의와 함께
우리들의 과거는 상상 만큼 신비하지 않다

당신을 다시 만난다면 운명같이
장엄한 세계가 열릴 수 있을까 사적인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이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결론이 아니듯
구름의 행방에 대해 논하지 못했다

기억을 닫고
생각을 닫고

전의를 숨긴 스파이 같이
출렁이는 두 겹의 벽은 침묵 중이다





혀의 이동 경로


오호츠크 해협을 건너왔다고 했다 글쎄, 마른 안개 잡목숲을 헤치며 왔다고도 했다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거울 속을 헤엄치듯 그가 오른손을 내밀 때 난 왼손을 감춘 채 목인사만 했을 뿐이다

한 때 그가 쳐놓은 바리게이트 안에서 햇빛 반대편으로 걸어가야 했다 아주 잠깐 그를 연모한 탓일까 목젖을 꾹꾹 눌러가며 꼬리뱀을 삼킨 적도 있다 너무 어지러웠다 내 혀의 내비게이션은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고 무서운 속도로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밟으며 질주 중이다 나의 단 하나 출구를 향해 질주를 했다 나의 외부와 당신의 내부가 서로 맞닿는 한 점 블랙홀이 우리의 최종 도착지인가요, 내가 입술을 달그락거리자 갑자기 비가 내렸다 입술에 입술을 물고 엎질러지는 빗줄기

어릴 적  
동시상영 화면 같이 가물가물하다
방금
스크린 밖으로 튕겨나간 
저 여자 주인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의 이동경로를 추적할 수 없다 
나는 방전된 나를 가지런히 접어서
누군가의 책꽂이에 꽂아두고 다시
걷기로 했다






에덴의 서쪽


햇빛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꼬끼리군의 엽서는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발신인 부재의 도시를 건너 
표정이 없는 날,
그곳에 묻고 떠났다

이문을 통과하면 
아름다움의 바닥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은 공포를 통과하는가 

아무렇지 않게
갈비뼈를 본차이나라고 말하는
뾰족한 손가락 끝으로
일그러진 손톱달이 끌려오곤 했다

언제든 찢어버릴 것 같은 그녀의
입속에서 무수한 풀들이 돋아나고 
나는 나에게 끝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생면부지의 내가 날마다 태어난다는
저 많은 애인들을
누가 내게서 빼앗아 갔을까

검은 새와 흰 새가 동시에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저 정원을




시작메모
내 마음의 활화산

한 계절을 온통 빗소리로 흘려보내고 다시 다른 계절이 찾아왔다. 녀석을 처음 대면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새로운 것은 새로운 것들에게 밀려서 빛을 발하기도 하고, 혼탁해지기도 하는 걸까. 창밖에는 소란한 초록물감이 서서히 지워지고 노을빛 얼룩으로 물들고 있다. 한때는 시가 나의 내면을 치유한다고 생각했었다. 내 무의식 속에서 꿈틀거리며 고통스러운 것들이 시가 가지고 있는 정신세계와 상통함으로써 서로 위로 받고, 나 또한 시를 통해서 내 영혼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얼마나 바보 같으며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시인은 시는 기억과 상상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력은 얼마나 제한적이며, 기억 또한 자신의 감성 수치에 따라 불명확한 일이 아닐까. 언제부턴가 시를 읽고 쓰면서 행복할 수 없었다. 시의 본질이 지극히 미학적일 필요는 없지만 지독하게 난해하거나 모호할 수는 없지 않을까. 또한 처절하거나 우울할 필요는 더욱 없지 않을까. 시인이 느끼는 감성을 시인 특유의 은유와 리듬감으로 독특하게 풀어내는 언어의 감성놀이라고 생각했었다. 시는 대중의 독자에게 읽히려고 쓴다는 말에 나는 개인적으로 동감할 수만은 없다. 시인 자신이 느끼는 정서를 솔직하게 쏟아냄으로서 내면을 정화하는 행위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놀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쓸 것인가, 또 왜 써야 하는지를 참 오래 고민했었다. 어느 날 우수한 문인을 양성하고 배출한다는 문구를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야구선수나 골프선수처럼 잘 훈련시키고 양성해서 우수한 문인을, 대한민국의 노벨 문학상감을 양성하다는 것인지 우수한 문인! 우수한 문인! 일정 기간 훈련을 잘 받으면 우수한 문인이 되어서 우수한 글을 쓰고 우수한 작품들을 세상에 우수하게 남길 수 있는 것일까. 몇몇 문학지를 쉬지 않게 오르고 내리는 낯익은 이름들과 이름들 사이에서 가끔씩 길을 묻는다. 시를 행복하게 읽을 수도 아니, 아닐 수도 있지만 시적 완성도나 개인적인 평가가 정말 좋은 시를 의미하는 것인지. 밖은 여전히 바람이 스산하다 가을을 맞보기도 전에 겨울 같은.
두껍게 내려앉은 11월의 구름은 안개가 가득 낀 숲길을 혼자 걷는 것 같다. 폐암 말기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외삼춘 병실엘 갔다. 반 호흡은 저승과 이승을 오가면서도 가끔씩 의식이 돌아오시면 힘겹게 엄마 엄마를 부르신다. 칠순의 병인이 부르는 엄마 소리.    
내 마음 속의 시는 어떤 모습일까. 나의 내면 깊은 곳에 간직한 보석 상자 같은 또 다른 엄마들, 사랑해요

김서은∙2006년 ≪시와세계≫로 등단.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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