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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호(2010년 겨울호)/신작시/정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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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94회 작성일 11-05-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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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푸른
까막눈 유모 외 1편


폐지를 끌고 가는 김할머니 몸놀림이 접혔다 펴졌다 각도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문자의 전설이다 아이를 들쳐 업듯 리어카를 바짝 끌어당기면 날짜 지난 신문 속의 글자, 품고 있던 의미 집어던지고 누렇게 빛바랜 얼굴을 부비며 업혀간다 문자를 거두는 김할머니의 오래된 집은 시간을 본뜬 갈라진 갑골의 부뚜막부터 덕지덕지 도배된 네트워크 기계어까지 버려진 언어의 태반이다 찢기고 구겨져 저승꽃이 번진 종이는 이제 횃불을 들이대도 꿈틀대지 않는다 조각조각 덧붙여진 폐경의 의미에 잠긴 채 숨이 떨어진 글자들이 리어카에서 부려진다 오해와 오독을 부르던 문자의 봉분, 의미를 지닌 것은 구부러졌다 펴지는 상형의 몸뿐이다 죽은 글자에 젖을 물리며 김할머니 버릇처럼 흥얼거린다 글자가 되지 못하는 말들이 늙은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직 살아있는 말言이 죽은 글자를 끌어안고 자장가를 부른다 끝없이 태어나는 죽은 아기의 입에 불린 쌀을 한 주먹씩 물린다






구름 상영관

 
샤워기는 대사가 너무 많아요
무성영화의 외전처럼 웅크리고 있는 나를 향해
애드립을 쏟아내죠
머리칼을 지나 불룩하게 부푼 몸을 지나는 거품은
천천히 내려오는 나의 자막이에요
내가 가진 모든 구멍을 속속들이 이해하고도
묵음으로 표현되는 게 이 영화의 방식이죠
오디빛 창백한 구름이
욕실 창 앞에 가만히 머물고 있어요
어쩜 매끄럽지 못한 저 배흘림 속에는 
나처럼 아기가 들어있나 봐요
우는 아기를 달래듯 모습을 바꿔가며 우리를 관람하고 있어요
모든 숨구멍에서 말을 쏟아내는 샤워기와 
모든 숨구멍이 막혀 있는 나
우린 둘 다 열연 중이에요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흔들릴 때
구름의 몸이 벌어지며 양수가 흘러내려요
이젠 우리가 구름을 관람하고 있어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동시 상영되고 있는 안팎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이 주인공이에요
양수도 없이 내 안에서 자라는 말들
만삭인 구름은 어떤 말들을 키우고 있었을까요

거품 속에 녹아 흐른 내 말들이 
구름을 헛구역질 하게 했던 게 분명해요 
서로의 관객인 우리는 같은 모국어로 힘을 줘요
 
구름의 아기들, 구름의 대사들이 쏟아져 내려요
 
샤워기처럼 쏟아내는 
저 여린 말들은
세상을 향해 내뱉는 나의 흐느낌, 나의 방백이에요

정푸른∙2008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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