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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010년 갸을호) 신작시/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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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람
소리의 무덤 외 1편
밤이 오자 음습한 구멍 속 얼굴 없는 짐승들
짙은 먹물을 토해내고 있다
불어터진 면발 같은 달이
삭은 빛을 줄줄 흘리며 구름의 품으로 기어든다
암실 인화지 속 풍경 같은 밤이 되살아나고
양철지붕 위 고양이가 죽은 쥐를 가지고 놀다
간간이 발작 같은 울음을 쏟아낸다
바람이 허공의 질서 속에 두 팔을 휘저어
죽은 자의 언어 같은 소리를 만들어 낼 때
몸을 떨게 하는 건 그 때 듣는 음악이다
구름과 저녁 사이 알타미라동굴 속 소리의 무덤
나는 돌칼로 짐승을 잡는
사내의 여자였다
짐승의 털가죽을 덮어쓰고
메마른 식도가 딸려나오도록
소리를 지르며
비린 생피 냄새를 핥으며
짐승처럼 울었지
이런 밤에 수화기 속 누군가의 말랑말랑한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그를 사랑하리
어둠 속 소리의 봉분을 지나가는
별빛 몇 가닥 휘어진다.
폭설의 저녁
눈송이 몇 데리고
갈참나무숲을 찾던 공중이
지상 위에 몸을 뉘여 놓았어
구름과 철탑 사이
한 무리 새 떼를 내려놓던 공중이
가끔은 저렇게
새 떼처럼 내려앉고 싶은가 봐
팽팽하게 조여진 줄을 풀고
쉬고 싶을 때가 있나 봐
나무의 눈썹 끝에
엉덩짝을 내려놓은
무슬림의 흰 천 같은
저 고요는
공중의 이마와 콧날
심장인가 봐
이 저녁 당신과 나도
뼛속까지 투명해져서
저 환한 여백 속으로 날아가
공중의 시간이 되어보는 거야
물고기와 지렁이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높게 날아올라 보는 거야
달빛이 밤을 건너듯
바위의 물결무늬 사이로
중심을 통과하는 거야
그렇게 한 저녁을
하얗게 불타오른 뒤
관절을 툭툭 꺾고
물비린내 풍기며
녹아내리자
마음이 모두
물로 만들어진 것처럼
줄줄 흘려버리고
바람으로 남아
공중의 수심 깊은 것들을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는 거야.
강가람∙전북장수 출생. 2007년 ≪문학과창작≫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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