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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호(2010년 가을호)/신작시/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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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성으로 가는 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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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열에 성을 내어 주었다
처처에 솟아오르는 궁전 요새화 되어가는 성
캡슐에 담지 못할 거대한 마천루
일정한 톤의 목소리와 육중한 막대가
크르렁거리는 짐승을 가로막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 굵은 막대의 숫자판을 긁어대자
번
쩍
수직으로 일어선다
희 한 하 다
호패를 들이대고 장애물을 넘어 성에 이르렀다
그 날 호패를 잃어버린 1人과 대뇌 시스템이 마비된
또 다른 1人 끝내 입성하지 못했다는
고양이들이 함께 했어도 아주 체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힐끗, 들여다 볼 수 없는 그 곳엔 누가 사는가
간간히, 들고양이 입술에 붉은 피가 선명하다
키 높이의 담장은 복원 될 것인가
강을 건너다
시간은 뱃속으로만 흐르는 것인지요
아무 소식도 보내지 않고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눈을 몇 번 깜박인 동안 흘러간 시간입니다
배가 고팠고 배가 불렀고 가끔 하품도 나는 시간이었어요
땅속으로 기둥을 깊게 박았고 나무 두 그루도 심었습니다
시간의 흐름 나무들이 뜨겁게 알려 주더군요
나무들이 겪어내는 계절을 통해 지나온 계절이 환하게 읽혀지는
이 부끄러움을 어디에 내려놓아야 할런지요
비로소, 당신께 많이 미안하다 말해야겠어요
머리털 한 오라기조차 숨기고 싶었던 붉고 푸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컴컴한 도시의 옹벽을 오르내리는 개미가 되었던 걸까요
왜 이렇게 어두운 것인가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당신이 누운 발치에 잠시 멈추어 있는 개미가 보여요
묻고 싶네요 저 개미의 세상은 어떤가고
아 아 아버지 문자 알림벨이 울려요
너무 추워요.
문자는 짧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고
제 편지는 턱없이 횡설수설이네요
아버지, 불명의 계절이 문을 두드려요 문을 열까요
변영희∙2010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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