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0호 (2010년 겨울호) 김구용 시인 특집/ 전집에 누락된 작품들 /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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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낳는 외 15편
어둠을 낳는
빛을 정정訂正한다.
지귀志鬼는 성덕여왕聖德女王의 몸이었느니라.
무기는 녹아서 종소리
모색摸索은 자체自體한다.
우주의 무덤은
물을 만드는 돌[石]
숲은 기도祈禱한다.
걸작에서 벗어나는
바다의 살결
무아無我에의 합장合掌
나르는 연蓮꽃
반면反面
표정 잃은 송강宋江에
고운孤雲의 시름은 건강하고
낮달은 푸른 피를
마시는 이조자기李朝磁器
사람마다 눈 뜨는 내재內在가
분단分斷된 망원경望遠鏡에
물음은 답장이 없다.
산에서 내려 온
잡색雜色 갈보는 성자聖者인가
미래와 통화通話중이다.
돌의 통역通譯으로
은대殷代의 인간제물人間祭物은 살아나고
분노는 미워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알고서는 모르느니
모르는 것을 아는 일이다.
아으, 한 몸이신
천수천안千手千眼.
―≪시문학≫, 1972년 4월호.
장미는……
장미薔薇는 전등을 켜고
스스로 장사[商]를 한다.
흥미를 일으킬 만한 일은
보이지 않는 데 있었다.
선線은 거리距離를 지워버린다.
아기는 고무제製 코끼리를
베고 자며, 광야曠野를 달린다.
벌집이 난 총소리
논밭을 가[耕]는 뼈,
꽃은 옛이야기에 피었다.
잎이 떨어지면서
너는 익[熟]는다,
밤 한가운데서
오는 빛.
가까운 송장에서 먼동은 트고
먼 접시[皿]는 눈을 뜨고
바다로 둔갑하는 명란明卵젓은 볼 것이다.
너는, 너의 세계를
만들어서 산다.
시간을 만들어서 쓴다.
―≪시문학≫ 1972년 10월호
눈
땅에서 소리가 솟는다.
불은 피가 해일海溢한다.
쇠[鐵]는 언제
음악音樂으로서 결혼結婚하나.
우선, 아무 것도 않는 일을 제조製造한다.
그래서 몸살은 길[道]이다,
산호珊瑚 가지마다 별이 익는 남쪽 노래.
도박은 밤비가 온다.
거짓말을 한다,
수목樹木을 잘 기르는
아내를 위하여.
보라, 잠시나마
내일의 십자가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말씀은 점點을 두고
제각기 흩어진다.
눈[眼]에 눈은 접接한다.
―≪시문학≫ 1972년 10월
후회後悔
후회는 숲으로 들어가
그리하여, 숲이 된다.
이리하여, 후회는 원래 없는 것이다.
없는 데서
새들이 골고루 파도波濤친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버릴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돕는 것이다.
설매雪梅에 꽃피는 달은
불[火] 속에서
열매 맺는 문자文字.
세계는 한 몸이니라,
물결치는 침묵.
달은 종鐘소리
교통交通은 공간空間
정적靜寂은 고告한다.
―≪시문학≫ 1972년 10월호
푸른 그림자
푸른 그림자의 향香내
밤에 자라는 꿀[蜜],
얻는 괴로움은
주는 기쁨이다.
아무도 믿는다,
약弱하게 이긴다.
아직도 돌아봐야 할 위치다.
존경할 자리는 아니다.
버리는 짓은
기르는 일이다.
어리석은 일인가.
맹수의 시대의
아무도, 나의 일이다.
화성관측선火星觀測船은 스스로를 속인다.
찢겨진 눈의 그물[網].
여자는 무인도無人島에 누워있었다.
물소리
관세음보살,
구름에 고기[魚]가 노는
친구 사이.
―≪시문학≫ 1972년 10월호
대리체험代理體驗
베스트셀러 1위인
번역 책 청부살인단을
언제 읽으셨나요
“절에서 오는 길입니다.”
칸 영화제 금상인
남녀 혼숙업체를
아직도 못보셨나요
“성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순자한 외할머니와
극진히 사셨다는 외할아버지는
천하의 명의名醫셨다는데
딸만 다섯을 두었더란다
고금古今의 정월 대보름달인가
우리네 미풍양속을
언제면 그대가 보랴
그래 태양도 외국外國이 있다드냐
누구보다 뒤늦게
대리체험에 이르러
뜻대로 표현하여
무한은 지속한다.
―≪월간문학≫ 1984년 7월호
나무
나무는 중간한 창에 와서
노래를 심는다.
배[船]들이 하늘을 오고가듯
모두는 한 몸이다.
착한 악마여
나는,
나의 아들이니라.
―≪시문학≫ 1972년 10월호
한없는 이름으로
한없는 이름으로
한없는 이름으로 듣는
잎사귀
모르는 일을
확인하는 일이다.
한 입원入院의
다혈증多血症과 빈혈증 정도로
공통점共通點은 있나보다.
그러고는 또 무엇이더라.
곤궁과 낭비에서
되살아난 음악
진눈개비 내리는 저물녘에
독신생활을 면한 미술美術
이튿날
총과 간음에서 풀려난 문학文學.
이익이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데,
그렇다면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잃은 이만이 아느니.
손[手]은 다 다르나
하나인 손
잎사귀는 손짓하여
귀띔을 한다.
―≪시문학≫ 1980년 5월호
정지원鄭智遠
불행한 곳을 탐방하면
외로움도 사라진다.
사건을 취재取材하다가 보면
사랑이란 뜻도 되새긴다.
언젠가는 부모님을 떠나게 마련이다.
제자弟子는 제자들을 두었다.
허나 글[文]은 물질物質이어서
흡족할 줄을 몰랐다.
잘 모른다니 말하마.
백제 사나이 정지원鄭智遠의
아내 조사경趙思敬은
고구려 태생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잃은 아내를 잊지 못하여
소원대로 조성造成해서
부처님의 없는 말씀을 듣는다네.
서로가 변變동하면서
아끼는 분신分身들,
시묵時默은 텅 비어
성능性能은 성운星雲하였다.
생명의 소득所得인
신뢰의 수익收益과
공익公益은 겸손한다.
“내일 이 시간에 만납시다.”
―≪월간문학≫ 1981년 6월호
직접 만나서
직접 만나서
말 좀 합시다.
서로가 좋도록 기다리면서
통사정합시다.
“그럴 시간이 없지만
어디 시간을 내어 보겠어요.”
그녀와 함께 영화映畵를 본다.
함께 시간으로 들어선다.
소박한 힘과
참는 흐뭇은
허공에 가득한 봄비[雨].
둘이서 젖는다.
물량物量은 필요지만
가족家族은 목숨이어서
여주연女主演의 불평을
남주연은 수긍首肯한다.
밤 새워 생각한 적도
하루를 굶은 적도 없으니
아픔이 아닌 고통이요
기쁨도 아닌 만족이었다.
아이를 데려온 강江이여
아이를 길러준 흙이여.
바람은 심심하지 않게 말한다.
쑥대풀은 재미있이 듣다가는 묻는다.
―≪월간문학≫ 1981년 6월호
대보름
본의本意 아니게 마소서.
“너무 염려 마십시오.”
비에 젖는 나무들로
의심은 사라진다.
외국어와 결혼한다기에
주례사를 메모 중이다.
글쎄, 아는 한
만난 음식은 소금이었지.
과학은 종교나 아닌지,
세미나에 참석하였다가
아내가 경영하는 가게로 간다.
“그날이 무슨 요일이라드라.”
알 수가 없으므로 믿는다.
그와 아내는 남남이기에
둘은 분명한 하나였다.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지붕마다 대보름달이구나
별마다 부호符號일세.
허다한 혼란을 겪지 않았던들
어찌 찬송하였으리오.
순간의 삼세三世는
삼생三生의 계속,
오지도 떠나지도 않아서
내일은 가득하였다.
―≪현대시학≫ 1981년 6월호
말씀은
말씀은
바로 비켜서서
분노하거나
모독하지 않는다.
재미없는 화제話題와
전혀 다른 이야기와
이해하기 어려운
믿음을 주로 말한다.
그래 어느 곳 새 잎일까.
머나먼 돌[石]이여,
없는 눈[眼]에
생필품生必品들을 보여 주마.
사막은 녹화綠化하였다.
희생이란 무슨 가능인가.
거리距離가 없는 시간을 달린다.
안락安樂아파트는 관리비가 좀 비쌌다.
복지福祉를 위한 등차等差와
휴식을 위한 계층階層은
시간의 발산發散이요
천동天動소리였다.
그녀가 보호를 바라느니
그가 실패를 바랐겠는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아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현대시학≫ 1981년 6월호
깨끗한 거울은
깨끗한 거울은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없어지기도 생기기도 하여서
순수純粹한 마음이었다.
저무는 주택가住宅街로 들어오는데
미래未來의 허다한 세상이 보인다.
가난한 부국富國과
부국富國의 가난도 있었다.
쓰레기처럼 많은 시간이
거품처럼 짧은 시간이
산천山川처럼 다른 시간이
한데 모여서 산다.
신판新版 천일야화를 읽는다.
서로가 할까 말까 하다가는
결말이 나지 않은 채로
끝났다는 기나긴 이야기이다.
원자재原資材를 사용하기 위해서
두 손[手]을 비워둔다.
자신自信이 없어서 믿기에
믿어서 자신이 생긴다.
말씀을 들어 보게나.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 이상으로
그것만은 아니었다.
―≪월간문학≫ 1982년 5월호
나 혼자만
나 혼자만 이불을 덮었구나.
춥지, 이불을 덮어 주마.
더 끼칠 손해도 없으니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며느리는 시장에서 해장국을 팔며
아들은 절[寺]에서 고시高試 공부를 한다.
착해야만 살 수가 있다니
고마운 세상이다.
하나는 집성集成이요,
전부全部는 생명이어서
생명은 하나여서
하나하나가 이루어진다.
손님들이 다들
들어와서는
하나도 남지 아니 하자
창 바깥에서 봄비가 내린다.
새가 날으듯이
언제면 길이 트이려나.
침착의 공포도
전쟁의 공포도 없는 강江이었다.
몇 시나 됐는지 알 수가 있을까.
시계상時計商의 시계를 수리修理 중이다.
피아노 조율사는 듣는다.
바다만한 연꽃 하늘을.
―≪월간문학≫ 1982년 5월호
호화선豪華船
어느 호화선豪華船에 초대되어 탄 후로
박사博士는 섬[島]이었다. 선내船內 스키와
선내船內 승마乘馬를 권하나 박사는
손님들이 왜 기뻐하는지를 몰랐다.
“나이트클럽에서는 여자들 때문에
승무원들이 주먹질을 하는데도
손님들은 웃으면서 맞기만 하니
알다가도 모르겠네.”
“손님들은 자기가 뽑기 전에
상대가 먼저 쏠지 모른다는
습속習俗을 알아요. 다음은
대형사고 영화映畵에 대비對備해서지요.”
박사는 선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오도가도 못하게 됐습니다.
승용차 기름값이 모자라니
12만원 꾸어 줍시오.”
“나를 집으로만 데려다 준다면
무슨 수로도 은혜를 갚겠네.
어서 와서 좀 도와주게나.”
항해는 일각一刻이 삼추三秋였다.
꿈에서 깨어난다.
여름날은 길기도 하여라.
겨울밤은 길기도 하여라.
잠에서 깨어난다.
―≪월간문학≫ 1982년 12월호
백마白馬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듯이
베이루트의 난민촌 학살에서
또 성인聖人이 나려고 저러는가.
혼자 남은 노모老母의 울음을 듣는다.
부모 없는 자녀가 어디에 있나
자녀 없는 부모가 어디에 있나.
자신自身이 자신에도 못하는 짓을
생명이 생명에게 하는구나.
믿어서 알아야지
등불도 주어야지.
없는 데까지 비치리
어디서인가 만나겠지.
그림자 따라서
서로가 사이를 열어
가는 곳마다 땅[地]은
허공虛空이라서 정각定刻이었다.
가릉빈가조鳥는
백마白馬를 안내한다.
혜초 스님이 보았다는
산천山川이다.
나는 말에서 내려
꽃나무들 사이로 오는
나[我]와 만나자 우리는
정중히 인사를 나누었다.
―≪월간문학≫ 198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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