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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10년 가을호)신작시/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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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71회 작성일 11-03-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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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순장시대 외 1편


우리 몫의 슬픔마저 못 챙겨
귀가하는 발길이 무거운 저녁
어디로 샐까 사내들은 고민 중이다.

온갖 카드를 다 취급한다는
저 집은 출입문만 있을 뿐 창 하나 없다.
은밀한 장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저 집안으로 들어간 사내는
붉은 등불 아래서 모든 감각이 살아나
아래를 살짝살짝 보여주고
위태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시간과 만날 것이다.
웅크리고 있는 취한 개의 시간도 만날 것이다.

오랜만에
시든 마음이 빳빳이 고개 든 사내는
마음이 급해질 것이다.
자폭의 시간을 만끽할 것이다.

그 사내가 그 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엄청난 술값에 놀라서 깎자고 통사정 한 후 멱살이 잡히거나
계산 불능으로 신체 포기 각서를 쓰고난 후일 것이다.
뭔가 자꾸 희박해져 헐떡거리면서
술이 깨 자본주의 속에 순장된 노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비틀거리면서 집을 찾아간다며 안간힘 쓸 것이다.

 

 

 



배려


나는 적당히 눈을 감아주며 살아왔다.
한 턱 쏜다고 큰소리 친 친구가 식사 후 다족류처럼 신발 끈을 오래 묶을 때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성질 급한 채 하며 계산을 해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이 땅에 또 누가 있으랴
산자여 따르라 하여 죽으러 가는 것 같이 기세가 등등하여
꽃 시절마저 팽개치고 함께 죽으러 가는 각오로 험한 길 나섰지만
과연 죽은 자가 어디 있으며 따르라고 외친 자만이 호의호식해도
쑥떡 한 번 먹이지 않던 나의 비굴이었다.
아무리 악해도 눈물을 앞세우면
모든 걸 용서하며 누구나 그렇게 이 땅에서 살아왔다.
약한 체 해도 무조건 달려가 부축했고
슬픈 목소리로 가장하면 귀가 얄아 주목했다.
충분히 낮은 자세로 짓밟힌 자를 부둥켜안고 눈물이나 줄줄 흘렸다.

저 거대한 당대의 흐름인 한강
가난한 자의 신발이나 꿈이나 그리움이니 사랑이니 무참히 휩쓸어 가나
말뚝 같이 이 세상에 단단히 박힌 자는 거들떠보지 않고 흘러가는 당대의 흐름
저 도도한 물길의 장난에
저지대의 우리는 충분히 위협을 받았고 온갖 세간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언제 적반하장의 세월이 와 우리가 흐름이 되어
강가의 모든 말뚝을 뽑아 강물로 휩쓸어가기를 꿈꾼다.

그것이 이 땅에 새롭게 쓰여지는 역사이고
정말 새천년의 물꼬가 터지는 뜨거운 날이다.
이 가난한 자들의 굽은 등에서 그런 꿈 들꽃처럼 피는 오늘
누구나 갈채를 보내주기 바란다. 따뜻한 눈길이나 보내주기 바란다.
언제나 낮은 자만이 뒷물이 되어주고 북이 되어주던 날이
그렇게 마감되도록 배려해주기 바란다.
나의 막 되어먹은 꿈에 육두문자를 쓰더라도 잠깐만이라도


김왕노∙포항 출생,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6인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수상. 2007년 문광부 지정 문학지로 시집 <말달리자 아버지> 선정, 글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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