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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10년 가을호) 신작시/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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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마른장마 외 1편
마른장마가 비옷 같은 미끄러움으로
내 이마를 타고 내릴 때,
4차선 도로 가장 끝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추억의 사랑을 낚시질한다.
가슴속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내리지 않는 비와 비 사이로
속 빈 버스 한 대,
내 앞을 막아선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신호등을 꿈꾸는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데,
질퍽한 그리움이 녹아 흐르는
인도와 차도의 중간 쯤,
오로지 장맛비처럼 비틀거리는 그림자 몇 조각,
오늘도 나를 부정하며
4차선 도로 가장자리에 서 있다.
바람의 집, 그 부정과 긍정 사이
한여름 바람이 흐물흐물 익어 아래로 또 아래로만 흘러내릴 때, 바람을 위한 집 한 채, 언덕에 혼자 남아 쓸쓸해 하는 이유.
그건 끈끈이 줄에 붙들려 현기증으로 흔들리는 시계바늘처럼, 부정하고자 하는 지극한 긍정이 한여름 바람개비로 그대 현관 각진 신발장 건너편 양지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색 바랜 돌이끼와, 이끼를 뒤집어 쓴 그간의 여러 여름들과, 여름 사이에서 취한 듯 입 맞추는 조그만 술집들과, 그들이 흥청거리는 말장난과, 가면들과, 그 가면 뒤로 숨겨진 끈적끈적한 바람소리 혹은 물결소리에 한겨울 고드름 같은 별別 그리기도 스르륵 스르륵 미끄러져 내리는 ‘바람의 집’ 한 채, 당신 앞에서 녹물처럼 퇴색되는 이유를 나는 안다.
한여름 툽툽한 바람이 아래로 또 아래로만 흘러내릴 때, 바람을 위한 집 한 채, 언덕에 혼자 남아 쓸쓸해 하는 이유.
강중훈∙1993년 박재삼ㆍ권일송 추천 등단. 시집 <오조리, 오조리, 땀꽃마을 오조리야>, <가장 눈부시고도 아름다운 자유의지의 실천>, <작디작은 섬에서의 몽상>, <날아다니는 연어를 위한 단상>. 서귀포문인협회장. 제주특별자치도문인협회장 역임. ≪다층≫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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