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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010년 가을호) 신작시/김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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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89회 작성일 11-03-1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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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운
워킹푸어 외 1편


빈곤선 언저리를 맴돌고 나가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고
포말이 꺼졌다 하면 일고
모든 것을 무너뜨리며 주저앉는다
어딘가의 언덕도 물살에 쓸려간 지 오래
물 위를 떠도는 조각이었다

뜰만했다 싶으면 도로 가라앉는 물 위에
기댈 수밖에 없는 허공은 퍼런 멍이 들었다
외환 위기가 빗고 간 회사빚을 보증 선 것 때문에
집이 경매로 넘어간 그 동네에서 걸어 나와
신용불량자 딱지를 들고 마트 점원으로 취직했다

임대아파트에서 월세방으로 옮기고
남는 보증금으로 애들 학원비를 대고 아등바등 애쓴 끝에
기초수급자가 되려고 주민센터를 찾아갔지만
돈 버는 딸 있다는 이유 하나로 거절을 당했다
상가 주변과 공원을 돌며 주었던 파지가 바람에 날려간 오후
마른 이슬에서 흐르는 휘파람소리

애써 여유를 만들고 나면
바로 돈 쓸 일이 생기는 숲에서
햇빛 졸고 벌레가 들면 언제든 떨어질 이파리

그 언덕 위에 하얀 겨울이 와서
물거품 같은 눈이 하얗게 덮일 거다
빈곤선을 넘는 경계 허물어가고
마음 한자리 잡고 앉아있으면
파도는 봄을 싣고 온다


 

 

 


바닷게


바다는 바람을 한 입 물고 있다
어디로부터인가
발자국을 지우며
기어 온 바닷게의 뒷걸음질을 훔쳐보았다
그것도 잠시
토해놓은 갯벌 해안가

검은 바위틈에서 슬슬
낮술에 취한 바닷게가
고둥껍질 속에서 들려오는 파도를 찾는다
어딘가에다 버려놓을
그림자를 등에 업고 가는
붉은 바람을 쫓아

오늘을 헤매는 바닷게 등 위로
바닷바람이 파랗다
해초가 잠을 들지 못해
흔들고 부비며 가슴을 앓는다
한 입 뜯긴 아픔이 너풀거린다
상처 감쌀 아침을 물고

바람은 바다를 물고
푸른 짐을 지고는

하늘이 끝나는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해 걸어갔다
꿈에 홀린 바닷게가 하얀 꽃을 피운다


김시운∙2000년 ≪시현실≫로 등단. 시집 <바람에게 물어나 보게>, <마랑골의 가랑잎>, <물빛 그림자는 혼자서 운다>, <꽃잎 발자국은 푸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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