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39호 (2010년 가을호) 신작시/손제섭
페이지 정보

본문
손제섭
오래된 마당 외 1편
까까머리들이 이회택이 가마모토*보다 백배나, 더 공을 잘 찬다고 침을 튀기는 그 마당으로 나는 갑니다. 조갈증으로 늘 오줌이 마려웠고 머리에 버짐이 피기 시작하던 그 곳으로요.
조무래기들이 똥껌을 짝짝 씹고 있었습니다. 대문니 사이로 침을 찍찍 내뱉으며 비석치기에 열중해 있는 그 마당에는 ‘나는 네가 좋아서 순한 양이 되었지’를 반복해 부르는 단발머리들의 고무줄 뛰기도 한창이었고요. 콧수염이 거뭇거뭇하던 형들이 날리는 휘파람에는 감꽃 냄새가 묻혀 있었고요. 담벼락 밑에 선 누이들의 치마 속은 맨드라미 태반처럼 달아올랐는지 모르겠고요. 낮은 지붕 속을 드나들며 소문을 물어 나르던 굴뚝새들이 내 어지럼병을 도지게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색도 없이 나를 쳐다보던, 한 가시내의 손을 잡고 잠이 들고 싶었는지도 모를, 그 오래된 마당 안에 나는 갇혀 있습니다. 아직도 내 궁금증은 갈팡질팡 거리고 있고요.
*가마모토 구니시게釜本那茂:일본이 낳은 축구 영웅.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축구 동메달을 딸 때의 주역.
모자
팔풍*장터 지나 집에 갈 때 손가락에 걸어 빙빙 돌리다 새 봇도랑에 빠져 버린 모자 민들레 홀씨와 함께 떠내려가던 모자
용전*다리 십리를 지나 남천강변 쑥 덤불 밑 잠시 쉬었다 남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맴돌다 명왕성까지 올랐을 모자
어떤 날은 벼락을 맞아 내 심장처럼 검게 탔을 모자 서러운 사람 서러운 사연 낱낱이 담아 대신 울어주었을 모자
구만九萬*재 넘어 소풍 가던 봄날 툭 터진 두릅나물 따 담아 푸른 아지랑이로 덮어둔 모자 다시 한 번 써 보고 싶은 그 모자
*고향마을의 지명.
손제섭∙2001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 <그 먼 길 어디쯤>, <오, 벼락같은>.
- 이전글39호 (2010년 가을호) 신작시/권성훈 11.03.18
- 다음글39호(2010년 가을호) 신작시/ 한창옥 11.03.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