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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010년 가을호) 신작시/신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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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나의 아트만에 대한 몇 마디 변론 외 1편
화두도 성가시다
그저 면벽한다
어떤 놈이 장승처럼 우두커니 여기 앉아있는가
이놈이 누구인가 이놈이 대체 어디서 온 놈인가
어떤 놈이 나로 하여금 이놈을 지켜보게 하는가
어떤 놈이 내게 이것저것 말하고 듣게 하고 어떤 놈이
내게 이래라 저래라 끌고 다녔는가
서로가 쏘옥 빨려들 듯
저쪽에서 나를 노려보는 놈과
이쪽에서 건너다보는 놈과
무슨 관계인가
쌍방 빈틈없이 영혼과 육신이 딱 핀트가 맞아 떨어졌는가
이놈 부르면 저놈이 네 대답하고
저놈 부르면 이놈이 네 대답하고
똑같이 생긴 이놈들은 대체 어떤 놈들인가
두 시선이 끊어질 듯 팽팽하다
일거수일투족 똑같이 움직이고 생각하고 말하고 웃고
동고동락하는 이놈들 그릇 크기와 깊이도 똑같다
어쩌다 둘이 한판 난장 벌이다가 고요 한 사발씩 권커니 잣거니 허허,
어수룩하게 마주보고 웃어젖히니
이놈들 내 아트만 한 쌍, 참말 아무런 죄가 없다
픽셀의 세계
컴퓨터 화면 속
사물들 확대하여 이리저리 잘게 쪼개다보면
최후에 남는 픽셀 하나,
채 어떤 형상이 펼쳐질지 예측 불가한 사각의
빈집 하나만 달랑 남는다
거기서 인류 최초의 기원이 비롯되었을 터,
이 픽셀이 산천을 빚고 꿈틀거리는 물고기 빚고 사람을 빚어
이 가상세계 한판 쩍 벌여놓은 것,
내 모습도 결국
그저 픽셀들의 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나마 내 픽셀들마저 모두 삭제해버리면 그때부터
실로 무한 여백의 광활한 대공이 내 눈앞 훤히 펼쳐진다
그러니 어찌 내가 있다 없다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살아도 나는 없으니, 나를 무엇이라 이르겠는가
눈 뜨면 이 가시적 세상 속 그저 울고 웃는 시시비비 분별,
선하다 악하다 더럽다 추악하다 가타부타 논설마저
일체 객쩍은
홀로그램 가상세계임을 나 깨닫는다
아무것도 실존하지 않는 묘법세계인 저편에서
이편으로 건너오는 나들목에
오직 최초의 원 픽셀이 나를 디자인하고 현현시켰을 것이다
한낮동안 거푸 픽셀 쌓고 허물다가
디자인아트 소품 하나 탄생시킨다 이 창조물도
저 천의무봉한 그곳에서 원 픽셀씩 뽑아온 것이다
신지혜∙서울 출생. 2002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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