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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10년 가을호) 신작시/김자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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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30회 작성일 11-03-1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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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흔
묵호 외 1편


바다가 그리워지거나, 흠씬 술에 젖고 싶어지거나,
엉엉 울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허둥지둥
이 술과 바람의 도시를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심상대, 「묵호」에서

그때 나는 몽유였다
방파제는 바람 한 점 없었고
바다는 고요했다
바람조차 모두 바다의 무덤 속으로 떠났을까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듯
삶의 멀미에 도망쳐 떠나온 곳
  
그러나 내면에선 우르릉 우레가 들끓었다
바다의 무덤으로 나를 데려가 줘 데려가 줘
나는 막아선 방책선 앞에 한사코 매달렸다
바다는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얘야 떠나거라 바다에는 아무 것도 없단다 인간의 멀미로 다시 돌아가거라
오후 네 시를 이고
바다는 가차 없이 몽유를 밀어냈다
나를 받아줘 나를 받아 무덤 속에 넣어줘
그러나 바다는 끝내 뒤척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바다 속 무덤까지 닿지 못한 몽유가
지친 우레를 스스로 증발시킬 채비로 돌아섰을 때

그때서야 바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열세 개의 집어등 불빛으로 나를 이끌어 갔다

 

 

 

 


아버지의 외출


비비새가 비츳비츳 울어댔다
아버지는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대체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그런다고 아버지 과거가 용서되는 건 아니에요
아버지가 흘깃 올려다보았다
얘야 함부로 조롱하지 말아라
네 어밀 데려와야 한다
어련하시겠어요
차라리 촛불을 켜들지 그러세요
꼭 그렇게 이죽거려야 속이 후련하겠니
봐라, 죽은 네 에미가 날 부르고 있다
아버지는 간헐적으로 숨을 헐떡였다
아버지 쓸데없는 고집이에요
우린 다 살아가게 돼 있어요
아니다 이건 다 너희들 때문이다
아암 그렇지 너희들 때문이고말고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은 점점 감겨들었다
어두워서 더는 들어갈 수가 없구나
잠시 눈 좀 붙여야 겠다
아버지는 우물 바닥에 누워 버렸다
잘 하셨어요 아버지 곧 편안해지실 거예요

비비새가 비츳비츳 다시 울어댔다
아버지는 우물 속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김자흔∙충남 공주 출생. 2004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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