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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010년 가을호) 신작시/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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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46회 작성일 11-03-1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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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요추 클리닉 외 1편


호시절 남자의 기다란 팔은 여자의 허리춤을 감싸기도 했어요. 그때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비비꼬고 있었죠. 로코코 스타일로 호호호. 남자의 허리춤 아래 작은 짐승이 고개를 들기도 했습니다. 바로크 스타일로 흐흐흐. 단단한 스프링 같던 시절, 분류하기 쉬운 방향으로 허리는 몸을 퉁겨냈어요.

허리에 관한 모든 문제는 직립보행으로부터 제기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깁니다, 길어요. 결국은 자세의 문제, 자세는 형식을 담는 질그릇, 유모차, 아코디언, 호리병, 조동아리라고나 할까요. 남자의 말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곧게 걷질 못해요. 여자는 덩치 큰 세간을 옮기듯 남자의 허리를 받쳐 들고 다다 스타일로 얼룩진 기저귀를 빼냅니다. 어머, 어쩜 이렇게 긴지. 바나나 스타일, 기차 스타일, 긴꼬리원숭이 스타일, 그들은 모두 다 허리, 너무 바쁘니 이제 그만 올라갑시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휘어지고 중심을 못 잡고 균형감이 없어요. 어디로 튕길지 모르는 통증이 몸의 한가운데, 귀신처럼 소리 질러요. 이건 자세의 문제, 한 번만 더 구불거리면 허리를 접어버린다, 협박하는 척추전문의의 인중을 꿰매기로 합니다. 허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여자와 남자는 진정으로 꿰차게 된 거죠. 자세의 문제, 건들지 말아요. 스타일 망가지니까.

 

 

 

 


하수구의 아버지와 저수지의 고양이들


그때 아빠의 보증금 같은 자존감이 15초만 어디론가 사라졌다면 어땠을까 이건 뭐,

슬프지도 않고

형과 나는 어린이니까 나가서 놀아야 했다 비가 사람처럼 오는데 이렇게 되다니, 형은 특수경찰처럼 늠름한 판단을 재빨리 해냈다 일단 게임기부터 챙겨, 백일장에도 써먹을 수 없는

그날 밤 고양이가 몹시 울었다 아빠가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하고 우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밤엔 나가 놀 수도 없잖아, 날마다 테러였다 불특정한 여럿에게 미관상 좋지 않게

구토하는 하수구, 어제가 장마철만 아니었더라도 보름은 더 견딜 수 있었을까

분노 같은 악취가 역류하고

아빠는 고향의 저수지를 자주 이야기했다 형과 나는 시커멓고 깊은 저수지를 떠올렸다 그 밤에 아빠는 저수지에 빠진 고향친구처럼 사라졌다 우기의 반지하답게 습한 밤이었고, 고양이 울음을 따라 몽정 했으며

하수구에서 아빠가 올라온다 머리칼이 다 빠졌다 어쩐지 익숙한 냄새라


고 생각할 무렵 동네의 모든 고양이가 지구의 표면에 앉아 가슴께까지 자구에 담근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발정 났니? 이건 뭐,

무섭지도 않지만.  


서효인∙1981년 출생,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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