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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010년 가을호) 신작시/전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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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
백년만의 폭설에 길을 잃다 외 1편
서울행 열차가
부산행 열차와 스치는 순간
반대편 열차의 차창에서 흘러나온
희미한 실루엣 속으로 뛰어든다
소실점을 향하는
스물 네 칸의 시간을 매단 기차가
전속력으로 망막을 향해 돌진한다
바늘구멍 속 빛의 소용돌이에서
삼백 육십 다섯 마리의 박쥐가
텅 빈 빛에 놀라 날아오른다
거꾸로 매달렸던 사물들이
빛 한 줄기에 빨려들자
질겅거리던 껌에 울컥 울음이 박혔다
그를 찾지 못하고
어깨 들썩이는 나를
덜컹대는 소음들이 몰려들어 다독였으나
울음은 급행열차를 탔다
숨을 거두는 별들이 뿌리는
눈물의 파편이 차창에 흩날렸다
중음계를 떠돌던 유령들이
눈물에 몸을 감추고
나를 연민하는 동안
당신에게 가는 길이
폭설에 덮였다
리모콘
눈빛만 바뀌어도
시공과 계절이 변화무쌍하다
손 흔들기만 해도 꽃이 피고
달빛 아래 수화를 하던
접동새는 꽃잎을 물고 날아오른다
휘파람만 불어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꽃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머리를 빗는 동안 떼죽꽃이 핀다
자판의 숫자를 더듬거리는 동안
치맛단 팔랑이는 소녀가 나오고
코트깃 올린 높새바람에
꽃비가 실려온다
화장품을 열자 계절풍이 일어나고
휘파람을 불자 이팝꽃 속으로
별똥별 몸을 던진다
눈동자 머무는 곳에
회오리가 일어난다
당신이 뜬 실눈에
지평선까지 밀려와 길을 잃었다
전건호∙충북 영동 출생. 2006 ≪시와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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