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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010년 가을호) 신작시/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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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환절기 외 1편
계절이 바뀔 때면 어김이 없다.
존재론의 발작 같은 것이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멈추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내민 손이 나를 잡고 흔든다.
몸속의 모든 것을 목구멍으로 끌어 올린다.
나는 온몸으로 긍정하고 온몸으로 부정한다.
계절은 내 몸을 거쳐 배처럼 지나간다.
그 배 타고 일찍 당신의 계절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언傳言이
붉은 깃발로 찾아와 피로 펄럭이는 밤,
어머니 내 목구멍으로 백약百藥의 길을 넣어주시다가
훌쩍, 그 배를 타고 떠나시고,
또 그렇게 기침을 하는 사이 너는
나를 내려두고 항구에 정박했다.
말이 말라간다. 나는 기침을 한다.
온몸으로 건너는 계절과 계절 사이의 바다
흔들리며, 흔들리면서, 나는 나를 건너간다.
눈물은 나의 바이러스, 독기는 나의 백신,
우주가 한 계절을 놓아버리고 또 다른
계절을 팽팽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물앵두나무 아버지
아버지는 물앵두나무를
담장 옆에 바짝 붙여 심으셨다.
붉은 앵두 반은 우리들의 몫
반은 길 가다 손 내미는
이웃들의 몫.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찾아오면
맑은 물 한 그릇이라도 나누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지, 사람 사는 즐거움이지.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
올해도 어김없이 앵두 열매
반은 우리 마당으로 주렁주렁
반은 담장 너머로 주렁주렁
물앵두나무 아버지,
한 알 한 알 착한 열매 매다셨다.
박혜연∙200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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