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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박완호/춘설春雪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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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14회 작성일 20-01-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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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박완호/춘설春雪 외 1편


박완호


춘설春雪



목련 나무 잘려나간 가지 끝 새로  
뻗치는 핏줄 속을 흐르기 시작하는
연둣빛 피톨들 잔설로 나부끼는
슬픔의 환한 입자들 사랑을 놓치고
어둠 번지는 플랫폼을 홀로 서성이는
누군가의 구둣발 소리 서늘히 비껴간  
한마디는 어느 날 문득
꽃등을 밝히고 아린 봄밤을 당기리
이―별로 가는 길 위에
첫발을 얹는 사람의 가쁜 숨소리
잠잠한 수면을 휘젓는 바람결 따라  
울먹울먹 고개 드는 그림자
꽃의 가능성 속으로
불그레하게 번지는    
볼웃음 소리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 나던



젊은 사내들이 탑골공원 담벼락을 급하게 기어오른다. 제복들이 달려들어 방망이를 휘둘러댄다. 피투성이가 되어 떨어져 내리는 사내들, 아까부터 바닥에서 고무락거리던 사람들 위로 재앙처럼 덮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바르르 떨며 그녀는 나처럼 눈을 감아버렸다. 낯선 사람을 끌어안고서라도 우리는 어디로든 달아나고만 싶었다. 전역 일자 선명한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나는 어린 새처럼 샛노랗게 떠는 여자를 데리고 어떻게든 학적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처음 보는 남자와의 불안하고도 짧은 연애를 끝내고 돌아서는 그녀의 어깨너머로 채 가시지 않은 최루가스가 종로 바닥을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 의심 서린 눈으로 우리를 째려보던 제복은 지금 어디쯤 가 있을까? 촉촉한 손을 애타게 마주 잡고 날치기영화의 여주인공이 되어야만 했던 그녀는 어디를 지나는 중일까? 슬프지 않은데도 마냥 눈물 나게 하던, 그날의 아찔했던 연애에서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온 걸까?


탑골공원 앞을 지날 때면 그날 벽에 달라붙었던 사내들의 어두운 뒤통수와 조마조마하던 거짓 연애의 기억이 잠깐 스쳐 가기도 하는 것이다.





*박완호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너무 많은 당신』,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등. 김춘수시문학상 수상. 〈서쪽〉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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