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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채수옥/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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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채수옥/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 외 1편
채수옥
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
찝찝한 기분을 떨치세요. 돌돌 말리는 양말의 오기. 우리는 지속될 수 있을까요. 꽃과 벌의 관계. 양파와 칼의 관계를
종양처럼 뿌리내리고 있는
저 달빛
약을 끊으세요
엉덩이를 까고 달빛을 얇게 펴 바르세요. 스며들 때까지 마사지 하듯 문지르면 낮은 지붕이 흘러내릴 거예요. 자를 수 없는 비명과 매복한 시간들이 깨어날 거예요. 스테로이드를 끊으면 억제되었던 몸속 폭풍들이 빠져 나옵니다. 밥을 물고 자두나무 밭으로 가던 어릴 적 습관을 버리세요. 자두나무 아래로 몰리는 낙엽의 적폐를 그냥 두실 겁니까.
낮고 조용하게 퍼지는 불륜 드라마처럼 옆으로 번지는 당신들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입니까. 골무를 끼고 긁으라니요. 새로운 음역 대를 오르내리는 불협화음들을 골무 따위로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끊으세요. 제발
햇빛
돼지고기
관계
꽃가루 같은
당신을
유부
차갑고 말캉한
주머니를 먹고 자라는
비둘기 자세에 대한 공식을 떠올리며
괄호에서 괄호까지 뛰어가는 아이들
사과를 깎고
공포를 깎고
물고기를 깎고
검정깨와 엄마를 섞어 주무르고 뭉쳐
유부 안으로
식사기도의 암송도 없이
혼자 넘는 줄넘기의 반원을 삼키도록
무엇은 곧 완성될 거라는
송곳 같은 믿음으로
맨발을 뒤집어쓰고
밤을 연습하는
머리칼과 빗방울이 엉겨붙어 범벅이 된
좀비 같은 아이들이
―총알을 닮은 포도 알처럼
주렁주렁 열릴 게요―
―종아리에 빗살무늬를 새겨 넣으며
잘 빚어 질 게요―
주머니를 뱉어내며
주머니 속에서 쏟아지는
자정의 아이들이
*채수옥 200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비대칭의 오후』, 『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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