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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김명철/이전과 이후의 나날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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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56회 작성일 20-01-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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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김명철/이전과 이후의 나날들 외 1편


김명철


이전과 이후의 나날들



우리는 며칠째
산속 바람소리 같은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침대로 기어오르는 뱀의 눈을 찌르고
살을 베어 먹다가
엄동의 화사한 배꽃 아래를 걷기도 합니다
버려진다는 건
내던져진다는 건
구멍이 점점 커져 바람이 드나들고
풍화되어 먼지로 부서져 내린다는 것
우리는 산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없는 다람쥐를 보고 억지로 흥얼거립니다
먼지바람에 붙어있는 갈고리 형상의 미숙한 영혼을 마시며
얼음을 깨고 얼굴을 빠뜨려
한동안 계곡물을 마시는 척합니다
발파되는 바위에 붙어있던 흙부스러기처럼 날려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불어지지 않는 휘파람을 붑니다
우리는 부유물처럼 떠내려갑니다
손도 잃고 눈도 잃고 몸도 잃고 어두워지고 있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데
마른 나뭇잎의 속도로 생각이 흩어집니다
동면에 실패한 개구리의 사체처럼
영하零下의 사랑이 푸석하게 말라 부서지기만을 기다립니다
부서져 날리기만을 기다립니다





당신과 나의 시각이 팽창을 거듭하여



이물감異物感입니다 사물이 흐려집니다 미문美聞처럼 시야가 뒤늦게 열립니다 유년에서 밀려온 구슬이거나 노년에서 당겨온 하얀 알약일 것입니다 지하철이나 고비Gobi Desert 또는 광년光年의 거리에서 왔을 것입니다 공존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뭉쳐져 같이 등이 굽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절이기도 합니다 흐린 이마로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면서 피붙이를 낳습니다 사물이 젖어
무너져 내립니다 내피內皮처럼 없던 경계가 생겨나고 외피처럼 있던 경계가 사라집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가 잡히자마자 어디에 있는지가 무너져 내립니다 공생처럼
어제를 죽여서 오늘을 보내고 내일만 살리기도 합니다 숨겨진 발톱을 드러내고 드러난 뿌리를 덮어줍니다 엄마와 아이처럼 살을 맞대고 울다가 살을 찢어 뼈를 발라냅니다 사물이 물에 잠기고
이심감異心感입니다 마음이 저려옵니다 추문醜聞처럼 촉각이 앞서 둔탁해집니다 포탄 맞은 아이의 다리처럼 마음이 디뎌지지 않습니다 가슴에서 빠져나온 심장이 물에 떠다닙니다 공멸처럼 둥둥





*김명철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짧게, 카운터펀치』, 『바람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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