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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10년 가을호) 신작단편/최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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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943회 작성일 11-03-1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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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라
최옥정



조금 다른 것, 많이 다른 것, 아주 많이 다른 것에 대해 그녀는 좀 아는 편이다 
그녀는 윈디 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 시카고에서 방금 이곳에 도착했다. 파란색 미국여권을 샘소나이트 미니백에 넣으며 인천공항을 나서는 중이다. 공항.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거쳐야하는 다소 번잡한 통로. 그녀에게 공항은 한 여자의 뱃속에서 열 달을 견디고 막 세상으로 빠져나온 핏덩이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도 산부인과가 아니라 공항인 것만 같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첫 사진이 공항에서 낯선 여인의 무릎에 앉아 무구한 표정으로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든 첫 느낌은 뜻밖의 것이었다. 나는 어느 의자에 앉아서 미국으로 갈 비행기를 기다렸을까. 그녀는 공항 안을 두리번거렸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었다. 공항은 실로 넓었고 의자도 많았지만 불안에 떨며 우는 아이를 달랠 곳으로는 적당치 않아 보였다. 물론 그 당시 국제공항은 인천이 아니라 김포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런 경우 사실이란 감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매끄럽고 깨끗한 대리석 바닥을 조심스레 디디며 심호흡을 했다. 긴 숨과 함께 삼십 년이란 시간을 몸 안으로 들이마셨다.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뺨을 파고드는 싸한 바람이 그녀를 맞았다. 여기도 시카고 못지않게 바람이 많이 부는군. 이곳의 바람은 녹고 있는 눈 때문인지 메마르지 않았다. 눅눅하면서도 까슬까슬했다. 새벽의 푸른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사방은 아침 햇살에 놀라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위엄 있게 우뚝 선 초현대식 공항은 동양의 길조인 봉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버스 정류장은 큼직한 가방을 앞세우고 노선표를 확인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글자를 띄엄띄엄 읽거나 고작 인사 몇 마디 건네는 정도였다. 그녀는 배낭끈을 추켜올리며 영어를 병기한 지명을 읽다 시티홀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곤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처음 방문한 땅을 대면한 그녀의 눈빛은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처럼 꼿꼿하다. 무표정. 지나친 무표정은 긴장을 감춰주기보다 더 도드라지게 했다.
도착을 알리는 기장의 안내방송을 들었을 때부터 한 가지 표정밖에 지어지지 않았다. 플라스틱 창문을 위로 밀어올리자 어스름 속에서 풍경이 구름을 젖히고 드러났다. 낮은 집들과 높은 아파트단지, 산과 강과 바다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도로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도 자동차도 갑각류의 등처럼 차갑고 딱딱해 보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그 증상이 비행기 멀미 때문이 아니라는 자각은 그녀의 울렁증을 가라앉혔다. 각각을 식별할 수 없게 덩어리로 들어오는 풍경 앞에서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일종의 응급조치였다. 눈을 감고 달라지는 고도를 몸으로 느끼며 멀미 비슷한 증상을 가라앉혔다.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품을 너무 요란스레 한 탓이야. 눈물을 흘리고 나니 더 이상 어지럽지 않았고 불편한 몸의 증상들이 사라졌다.
그날 아침, 이 도시로 오던 날 아침, 그녀는 세수를 하다 아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쓰라린 통증이 지나갔다. 칼에 베인 상처가 아직 핏물도 가시지 않고 생생했다.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 기억이 안 났다. 그건 아주 좋지 않은 징조임을 알았다. 나쁜 예감, 뭔가에 사로잡혔을 때, 특히 나쁜 일일 때, 감각이 둔해져서 잘 다치고 데이고 넘어지고 엉뚱한 일을 저지른다. 발이 오 센티미터쯤 허공에 들린 것처럼 들떠 있는 거다. 상처를 보며 자신이 무엇에 골몰했었나 되짚어보았다. 특별한 걸 발견하진 못했다. 누구나 결정적일 때 중요한 단서 하나를 자꾸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녀의 이름은 나일라. N, Y, L, A. Nyla. 잘 웃는 여자라는 뜻의 에스키모어라고 한다. 짐작할 수 있듯이 어릴 때 그녀는 울보였다. 그만 울음을 그치고 많이 많이 웃으며 살라는 부모의 바람이 담긴 부적 같은 이름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자주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그녀가 잘 웃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름이 너무 세면 거기에 인생이 갇히게 되어 소망과 반대가 되기 쉽다는 속설을 이기지 못한 거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나일라. 발음하기도 쉽고 듣기도 좋다. 햇볕이 이마를 간질이는 화창한 봄날씨가 연상되는 이름. 명랑한 소녀의 얼굴이 떠오르는 나일라라는 이름 말고도 그녀에게는 이름이 또 하나 있다. 오선미. 진짜이름인지 가짜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K80-1409 오선미. 그녀의 파일이름이다. 진짜가 아니라면 그녀한테는 이름이 하나 더 있는 셈인데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른다. 조금 복잡할 수도 있는 그녀의 소개는 차차 하기로 하자.   

그동안 소홀했던 이 세계를 탐욕스럽게 만날 것이다
그녀가 온 날 서울의 모든 시계는 고장이 났다. 버스나 전철은 제시간에 오지 않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지각을 했으며 연인들은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차들은 도로 한가운데서 엉켰고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허둥지둥, 갈팡질팡. 낯선 방문객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수선한 이 도시 역시 그녀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떼지 못했다. 소란스러운 도시의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구경거리 넘쳐나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오십 킬로그램짜리 배낭이 어깨를 파고들어도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거의 모든 사람의 얼굴이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신시아가 있었다면 뭐라고 할까? 우울증을 앓던 그 애는 스물세 살에 혼자 아이를 낳았다. 나쁜 선택의 연속이었던 그녀 인생이 결국 종착역에 다다르고 말았다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나랑 똑같이 생겼지? 잘 좀 봐봐. 정말 많이 닮지 않았어?”
얇은 입술과 이마만 비슷한 정도였지만 그 애와 가까운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이 닮은 건 사실이었다. 양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이웃도 신시아와 다르게 생겼고 그 최초의 의혹이 그 애를 우울증에 빠뜨렸다. 정부보조금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아도, 슈퍼마켓에서 잡일을 해도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신시아가 여기 오면 닮은 사람이 이토록 많은 걸 어떻게 이해할까? 그녀는 신시아를 닮고 그녀를 닮고 신시아의 아이를 닮은 이 거리의 사람들을 보며 궁금해 했다. 
그녀는 이 도시를 안다. 백 번쯤 천 번쯤 생각하고 그려보고 입에 올렸다. 첫 방문이지만 처음은 아니다. 그녀의 생명은 여기서 비롯되었으니. 도시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음식과 땀과 호흡이 뒤섞인 방을 며칠 동안 환기시키지 않았을 때 이런 냄새가 날 것이다. 이 냄새와 색깔과 소리들.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의 경계경보를 그녀의 정신과 육체는 내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후 고개를 젓는다. 흔들던 고개를 다시 끄덕거린다.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비행기표도, 카메라도, 친구의 초청도 아니었다. 왜?, 라는 질문이었다. 왜? 왜? 왜?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왜 시계도 맞지 않는 이런 곳에 오게 되었을까. 이전에는 다른 질문들이 있었다. 왜 다른 냄새와 색깔의 사람들과 한 집에서 살고 있을까. 왜 나는 잘 때 눈을 뜨는 걸까. 왜 나는 그들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숨 쉴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다른 것을 느끼는 걸까. 왜 나는 100%가 아닌가. 왜 나는 90, 80, 때로 50%의 사람처럼 느껴지는가. 
한 손에 생수병을 들고 목에는 카메라를 걸고 한 떼의 관광객들이 일제히 몰려가는 곳을 따라다녔다. 지도와 지형지물을 대조해보며 걷는 그녀는 여느 관광객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시계탑이 있는 시청은 공사 중이었다. 매일 12시에 공연이 열린다는 서울광장에서 그녀의 발길이 멈추었다. 웨딩드레스 패션쇼가 끝나자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쿼텟이 나와 영화음악을 클래식으로 연주했다. 광장 잔디밭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서 있었다. 연주자도 관람객도 모두 추워 보였다. 청결함과 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이곳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기 위해 그들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어설픈 한국어 실력으로는 농담과 뉘앙스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한국드라마를 많이 본 덕에 억양은 귀에 익었다. 가는 곳마다 한국말과 검은 머리칼의 사람들이 있어도 아직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서울광장을 벗어나 플라자 호텔 앞 건널목을 건넜다. 지도에 의하면 이곳은 식당과 술집이 밀집돼 있는 북창동이었다. 공기 속의 맵고 강한 향신료 냄새가 모든 걸 제압하고 그녀를 맞았다. 
북창동 골목을 몇 분 걸었을 때 그녀의 눈길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대성식당. 시카고에서 갔던 식당과 똑같은 이름이었다. 김치찌개 전문식당이라고 쓴 간판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자들 너덧이 소주를 곁들여 밥을 먹고 있었다. 점심시간은 지났고 저녁은 오지 않았다. 점심 장사가 끝난 시간이라 어느 식당이고 한산했다. 시카고의 한국식당과는 어딘가 달랐다. 그녀는 냄새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냄새. 
“김치찌개 주세요.”
주인여자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토종한국인의 얼굴과 이국적인 발음의 부조화가 여자에게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말은 그녀의 귀에도 어색하게 들렸다. 교실에서 연습하는 거랑 서울 한복판의 식당에서 말하는 건 정말이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조금 다른 것, 많이 다른 것, 아주 많이 다른 것에 대해 그녀는 좀 아는 편이다. 고통스러워할 게 아니라 즐길 만한 것일 수 있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겁내지 마, 잘 봐, 재미있어. 그것이 그녀가 얻은 결론이자 감상이었다.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아침마다 먹는 비타민처럼.
여행객이 한가한 시간에 식당에 가는 건 이 도시에선 별로 권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주인도 그녀를 신경 썼고 대각선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남자들도 그녀를 흘끔거렸다. 낮 시간인데 그들의 테이블에는 이미 빈 소주병이 두 개나 있었고 얼굴은 불콰했다. 그녀의 식사 속도는 느렸다. 주인여자는 안쪽의 쪽방에 누워서 낮잠을 청했고 남자들은 세 번째 술병을 거의 비워가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의 첫 식사. 김치찌개는 맵고 뜨거웠고 시금치나물과 어묵볶음은 짰다. 콩나물무침과 멸치볶음은 미국에서도 한번 먹어본 음식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꽤 맛있는 음식이었다. 밥을 다 먹는 동안 물 한 병이 바닥났다. 반찬은 절반쯤, 밥은 전부, 찌개는 삼분의 일쯤 먹었다.
  
사진처럼 찍어두기만 하고 해석하지 마 
생존법은 하나씩 늘어났다. 그녀는 버스번호를 외우며 그녀가 머릿속에 만든 새 파일에 정보가 늘어나는 기쁨을 누렸다. 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 숫자들, 글자들, 건물들, 식당들, 사람들. 머리와 수첩에, 아이폰에 되는대로 적고 그려가며 지도를 완성해간다. 처음엔 시청과 종로밖에 몰랐지만 명동과 광화문, 북촌, 동대문, 신촌, 이태원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청계천변을 따라 걷는 동안 개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띵하고 뺨이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좀 더 먼 곳을 원했고, 그녀의 발길이 딛는 땅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새 파일에 저장될 정보는 늘어났다. 메모장에 적는다. 수제비. 오늘 새로 먹어본 음식이다. 미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메뉴다. 파스타의 한 종류처럼 밀가루를 얇고 납작하게 펴서 만든 국물 있는 음식인데 야채도 듬뿍 들었고 맛도 괜찮았다. 국물에서 생선비린내 비슷한 맛이 약간 났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 사람이구나. 겨자색 코트에 검은 바지를 입고 어깨까지 오는 파마머리를 한 사십대 후반의 여인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생모의 눈동자가 커졌다. 눈꺼풀이 떨리는 눈을 그녀의 얼굴에 붙박은 채 시선을 움직이지 않았다. 너구나, 네가 선미구나, 붉은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 생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놀라거나 흥분하면 목까지 빨개지는 체질이다. 생모는 한쪽 뺨을 손으로 감싸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녀는 주먹을 쥐고 눈을 감았다. 거대한 열풍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가슴속에서 뜨거운 바람이 일었다. 피와 뼈와 몸 안의 장기들이 다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제발, 몇 번이고 제발을 되뇌었다. 흥분이나 격정은 가장 원치 않는 반응이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땐 생모가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가늘고 높은 편인 생모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안, 녕, 하, 세, 요?”
알아들을 수 없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목구멍을 간신히 뚫고나왔다. 속일 수 없구나, 연출할 수 없구나, 그런 심정이었는데 절망이라기보다 차라리 평안한 체념에 가까웠다. 그녀는 이 상황을 수 십 번 시뮬레이션 해 봤지만 막상 닥치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도 생모도 넋이 나간 듯 서로를 바라볼 뿐 말을 잇지 못했다.
홀트의 입양사후관리팀은 극구 사무실에서 사회복지사를 동반해 만나라고 했다. 상담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해도 직원들이 오가는 공개된 장소에서 첫 만남을 갖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묵살 당했다. 여기서 만난 다음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길 때는 둘만 가도 된다고 했다.
“나일라가 뭘 원하는지 잘 알아요. 미안해요. 다 들어주고 싶지만 직원으로서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나도 이 만남 때문에 어젯밤부터 걱정 많이 했어요. 나일라가 얼마나 긴장될까 생각하니 내가 더 떨려서요.”
콜롬비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회복지사 정애 씨의 맵시 나는 영어가 그녀의 귀에 거슬렸다. 비즈니스에서 상대에게 잘 보이려는 도구로 인사치레가 많은 매끄러운 영어를 익혔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일처리 방식인 모양이었다. 일단 크게 실망시킨 다음 그 실망에 물을 주듯 조금씩 어떤 정보나 호의를 베푸는 것. 매우 귀찮아하며 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큰일을 해준다는 식으로. 왜 일을 일처럼 하지 않을까. 그녀는 의아했지만 상대가 감정이 잘 다치고 변덕을 부리는 타입의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에 감정을 자극할 만한 어떤 말이나 행동도 자제했다.
정애 씨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갖다 주고 파일을 열어 양쪽에게 상대방에 대한 몇 가지 정보와 재회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사무적으로 늘어놓는 건 흥분을 식힐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그녀는 해석했다. 터무니없는 감정이었지만 그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생모 앞에서 영어로 묻는 정애 씨에게 영어로 답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입 닥치고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 점에서는 생모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생모는 굳은 표정으로 앉아서 먼저 말을 하지도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생모도 그녀도 정애 씨가 갖다놓은 인스턴트커피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과 손과 테이블에 번갈아 눈길을 주던 생모는 이제 밖으로 나가도 되죠? 하며 몸을 일으켰다. 단호하게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생모의 유일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먼저 카운터로 가서 생모가 원하는 아메리카노와 자기가 마시고 싶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생모는 그녀의 움직임과 표정에 따라 눈빛이 변했다. 주의를 요하는 곳에서는 깊어졌다가 마음이 누그러들면 편안하게 풀어졌다. 한숨만 크게 내쉬어도 깨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이 둘 사이의 공기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녀의 요모조모를 살피는 생모를 그녀도 찬찬히 뜯어보았다. 눈가에 새 발자국 같은 주름이 있지만 맑은 피부와 적당한 살집은 생모가 그리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말해준다. 표정과 태도에도 찌든 구석이 없었다. 유난히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뿜어내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본능적으로 멀리하는 자의 방어와 계산을 그녀는 놓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게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을 거라고 풀어지는 마음을 다잡는다.
삼사 분쯤 지나자 탁자 위의 벨이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카운터로 가서 커피 두 잔이 놓인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머그컵을 생모 앞에 내려놓고 자신은 적당히 크레마가 얹힌 에스프레소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온도는 조금 낮았지만 커피맛은 쓰고 진했다. 그녀가 원하는 맛이었다. 커피를 길게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 생모의 표정에 대화를 서두르려는 조급함은 없었다.
“지난 얘기는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끝도 없을 얘기. 그것을 두 사람에게서 빼앗음으로써 서로에게 잔인해지거나 무력해지는 것, 둘 사이에 치러야할 통과의례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채권자처럼 굴기 싫었다.
“너도 나도 각자의 생활과 사람들이 있겠지. 그것대로 그냥 살아야 할 거야, 당분간은.”
그렉도 생모도 ‘당분간은’이라고 말한다. 희망의 여지가 있는 말을 그녀는 버렸다. 무관함. 떼려야 뗄 수 없는 피를 나누었지만 그녀의 엄마는 무관함을 선택했고 무관함을 향해 살아왔다. 잠시 손을 잡았지만 저 문을 나서면 도로 무관함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그녀는 앞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서 붉고 기다란 손톱과 아이들이 몽키이어라고 놀리던 동그랗고 작은 귀와 변명하지 않는 성격을 물려받았다. 힘들 때 최악의 선택을 하는 점도. 다른 밥을 먹으며 다른 땅에서 살았어도 그것만은 어쩌지 못했다. 숱 많은 새까만 머리칼도 똑같았다.
일곱 살의 어느 날 그녀는 왜 내 머리카락만 검은색이냐고 양엄마한테 물었다.
“내가 너를 낳지 않았기 때문이야.”
대답은 간단했다.
“너는 멀리서 왔단다.”
양엄마는 그녀와 키를 맞추고 앉아 두 손을 마주잡고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양엄마의 눈빛, 놀라운 사실을 너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지금은 내 사랑의 전부라는 의사표시에 뭔가 더 있었다. 넌 나와 다르고 앞으로는 그걸 배워가는 인생을 살아야한다는 경고등이 깜빡였다. 그녀는 머리칼 말고는 관심 없다는 듯 양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백인 엄마의 금발을 매만졌다. 며칠 동안 조른 끝에 양엄마가 그녀의 머리를 금발로 염색해주었다. 현실은 늘 기대를 배반한다. 금발머리는 자신의 검은 눈동자를 더 눈에 띄게 만들 뿐이었다. 아이들은 그녀의 금색 실타래 같은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아무도 안 볼 때 그녀의 살을 꼬집고 잡아당기고 옷에 낙서를 했다. 그녀는 힘이 셌고 끈질겼다. 누군지 범인을 찾아서 당한 것을 두 배로 돌려주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직성이 풀렸다. 그 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지만 놀아주지도 않았다.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법을 스스로 배운 그녀는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백인 오빠랑 블루마블 게임을 하며 놀았다. 양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요리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자녀를 돌보는 의무를 수행하는 면에서는 게으른 적이 없었다. 한 가지를 확실히 깨닫는 일은 중요하다. 머리카락 색깔을 포기하자 다른 차이점을 받아들이는 일이 전처럼 엄청나게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조금 더 늙었을 때 찾아왔으면 좋았을걸.”
그 정도의 한국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 좋다는 말일까. 그녀는 자신의 빈약한 한국어를 의심한다. 그녀가 언제 찾아왔더라도 저 말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상황을 위해 준비된 알맞은 때란 없다. 이런 말을 들을까봐 그렉이 그런 다짐을 해두었던 거다. 
“보이는 것을 해석하지 마. 넌 아직 이곳을 몰라. 사진처럼 찍어두기만 하고 해석하지 마. 아무 감정도 보태거나 빼지 말고 시간을 좀 보내봐. 당분간은!”
그렉의 충고를 휴대폰의 바탕화면에 적어두었다. 보이는 것을 해석하지 마.

당신에게 나는 실패의 인장 같은 존재로군요
“내가 네 인생에 보탬이 될 거라는 자신이 없구나. 예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너를 떠나보냈다. 너와 같이 가는 내 인생이 괜찮을 거라는 자신이 없어서. 이것 봐라. 내가 하는 역할은 이렇게 달라지지 않았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혹시라도 네 피 속에 나의 이런 냉정함이 들어 있다면 네가 인생을 사는 데 아주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생모가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거짓말과 눈물로 지난 시간을 지우려는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불길로 타올랐던 그녀의 가슴은 물이 차올라 출렁이다 한쪽으로 쏠린다. 친부모에게 연락을 하면 절반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얘기 여러 번 들었다. 여태까지의 자기 인생을 지키고 싶은 동물적인 본능을 나무랄 순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버림받은 사람만 불쌍하다. 생모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데 목에 셔터를 내린 듯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밤 자신이 외운 한국말이 별 쓸모가 없음에 그녀는 점점 초조해진다.
‘당신이 수인처럼 살기를 바란 적도 상상한 적도 없어요. 얼굴이 비어 있는 한 사람을 가끔 떠올렸죠. 그걸 채우러 온 거예요. 당신도 당신 인생의 숙제를 끝마쳐야 하잖아요. 내가 아무 일도 없이 잘 사는 걸 보는 게 편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신에게 나는 실패의 인장 같은 존재로군요. 당신이 사랑을 잃고서 한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적이 있는 사람임을 폭로하는 당신의 비밀이죠, 나는.’
그녀는 그 말을 속으로 되뇌며 마지막 남은 에스프레소를 입에 털어넣었다. 찻잔을 잔받침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컸다. 그녀의 목을 통과해 나오려던 말은 더 깊숙이 숨어버렸다. 주문을 확인하는 종업원의 기계적인 목소리는 단조롭다. 들뜬 듯 웅웅대는 옆자리의 소음, 탁한 공기, 그리고 탁자의 이쪽과 저쪽의 거리. 어느 것 하나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없고 마음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다.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을 켜서 눌러대며 깔깔대는 여학생, 과장되게 지어 보이는 표정, 이어지는 환호성.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생모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과거 한가운데로 불려나온 사람이 흔히 그렇듯 단호한 말을 하면서도 목소리에 힘이 빠졌고 주변을 살피는 눈빛은 불안했다.
장소를 스타벅스로 정한 사람은 생모였다. 다분히 그녀에 대한 배려였겠지만 그 선택은 실패작이었다. 정거장마다 있는 스타벅스와 던킨도너츠와 맥도널드를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둘 다에게 적당할 거라고 타협한 선택은 둘 다 만족시키지 못하는 나쁜 선택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한 사람이라도 진짜 원하는 걸 고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생모는 유실물함 속의 주인을 잃어버린 모자나 지팡이처럼 보였다. 명랑하고 수다스러운 이십대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고립감을 안 느낄 수가 없겠지. 이게 나인가. 이게 나의 전부인가. 사는 동안 그런 감정을 수시로 느꼈을 것이다. 비밀을 가진 자의 운명이다. 생모는 손을 뻗어 커피잔을 잡은 그녀의 손등을 쓸어내렸다.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뜨거워졌다.
“예뻐요.”
한국말이었다. 거의 정확한 발음의. 그녀도 놀랐고 생모도 놀랐다. 자신이 그 단어를 배웠다는 것도, 이렇게 잘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생모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녀를 오래 쳐다보았다. 생모의 눈빛은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다시는 세상으로 올라오지 않을 것처럼 무겁고 어두웠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음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너도 예쁘다.”
생모는 늦은 대답을 했다. 정말일까. 그녀는 또 의심한다. 그 의심은 오래된 것이었다. 양엄마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으로만 숨고 걸핏하면 울먹이는 그녀에게 말했다.
“참 예쁘구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도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그게 네 인생의 숙제다.”
그녀가 만난 세상은 정반대였다. 사람들 속에 섞인 그녀는 아름답지 않았고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양엄마 말이 맞는다면 세상이 적이고, 세상 사람들이 맞는다면 양엄마가 위선자다. 처음부터 세상은 그녀에게 딜레마였다. 그래서 양엄마의 말과도 사람들의 말과도 무관해지고자 했다. 스스로를 소외시키면 되었다. 무관함의 뿌리는 불신과 거리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해야한다는 숙제를 잘 해내지 못했다.

I am ending my pain. Loneliness kills me. 
그렉은 생모를 만나보라고 했다. 앞으로 나가고 싶으면 엄마를 꼭 만나야 해. 그녀가 아무 일도 벌이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갈까 염려했다. 
“네가 누군지 알려면 너랑 비슷한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해. 누구랑 더 비슷할까는 오래 생각해야 할 거야. 미국은 네 땅이 아니야. 그들은 네 편이 아니야. 생활은 더 편하겠지만 마음은 늘 불편하지. 자잘한 기쁨 때문에 웃을 일도 자잘한 슬픔 때문에 울 일도 없으니까. 그건 인생이 아니잖아.”
낮에는 영어를 가르치고 밤에서 신촌의 스포츠바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여기 정착한 그는 작년에 생모를 만났다. 생모의 눈빛이 자신을 거미줄처럼 친친 감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온몸이 아프고 온 마음이 아프고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는데 생모가 다가와 꼭 끌어안아주었다. 엄마 냄새가 났다. 다시 가족이 될 순 없어서 일 년에 한번 설날에만 만난다. 그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상대를 얼마나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느냐가 낙천성의 증거이다. 비관주의자들은 타인을 혐오하고 불신하면서도 의존한다는 걸 그녀 인생이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
제레미는 그렉과 다른 말을 했다. 그곳에서 너를 기다리는 건 상처뿐이야. 너는 확인사살 당하러 가는 거라고. 한번 버림받은 것으로 부족해서 두 번씩 지옥에 걸어 들어갈 필요가 있니? 제레미가 죽지 않았어도 그녀가 이곳에 왔을까. 그가 서울에 다녀온 뒤로, 어렵사리 찾은 생부가 그와의 만남을 거절한 뒤로 그에게서는 어떤 기쁜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제레미가 넥타이를 맨 채 자신의 방에서 발견된 날은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꽃향기를 실어나르는 8월 10일이었다. 그의 생일 다음날이었다. 전날 그녀와 시내에서 쇼핑도 하고 근사한 디너를 먹으며 생일을 기념했다. 휴가 때 함께 뉴욕에 가자는 약속도 했다. 그가 목을 맨 넥타이는 그녀와 디즈니랜드에 놀러가서 산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파란색 넥타이였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을 하나하나 복기했다. 열시에 만나 열 번도 넘게 간 쉐드 아쿠라리움에 갔다. 열대어를 보러 가는 것은 그의 취미였다. 몇 시간씩 싫증도 내지 않고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인간은 왜 누군가의 배를 빌려서 태어나야만 하는 걸까. 꽃처럼 바람이 씨앗을 날라주든가, 물고기처럼 물속에 알을 낳고 둥둥 떠다니다 아무데서나 부화하면 부모 같은 건 필요 없을 텐데.”
아쿠아리움을 나와 근처 공원에서 튜나샌드위치 도시락을 먹고 낮잠을 잤다. 시카고의 여름은 플로리다가 부럽지 않을 만큼 환상적인 날씨였다. 5월까지 겨울인 점을 고려하면 놀랄 만한 축복이다. 바람은 부드럽고 향기로웠으며 햇살은 금가루가 섞인 듯 눈부셨고 잎이 무성한 삼나무 아래 아이리스, 베이비브레스 같은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나는 죽어서 꽃 말고 바람이 되었으면. 서울에도 시카고만큼 차가운 바람이 불더라.”
그는 허공을 쏘아보더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그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삼나무에 등을 기댔다. 웃어본 적이 별로 없는 제레미의 얼굴은 꽃향기에도 바람에도 인상을 썼다. 잔디밭에 깐 숄이 축축해질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네이비부두에서 워터택시를 타려던 계획은 그의 긴 낮잠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땐 둘에게 다음이 없다는 걸 몰랐다. 저녁으로 뭘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대성식당 가서 불고기하고 냉면을 먹자고 대답했다. 그는 빨갛고 맵기만 하다며 한국음식을 싫어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랐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서울에 가지 마. 불고기를 몇 점 상추와 된장에 싸먹더니 그는 그녀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내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그래? 그의 눈빛은 정말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어리석은 짓을 벌써 저지른 자신을 한심해하는 것도 같았다. 걱정하지 마. 매일 이메일 보낼게. 시카고의 여름바람만큼 선선한 말투로 답해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I am ending my pain.
Loneliness kills me.

깨끗이 치워진 책상 위에 그가 남긴 유서에는 단 두 줄의 문장뿐이었다. 지독히 불친절했다. 거기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말도, 외로움이 나를 죽인다는 말도 그의 인생에 그녀를 부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녀를 사랑한 적은 더더욱 없다고 그 마지막 편지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과묵하고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인생을 끝장낼 만큼 극단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고 믿었다. 대체 그는 한국에 가서 뭘 보고 온 것일까. 그가 지난 아홉 달 동안 보여주었을 심연을 그녀는 보지 못했다. 대체 그의 무엇을 사랑한 것일까.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바로 날아온 그렉은 그녀 대신 제레미를 위해 오래 울어주었다. 그녀를 대신해 욕을 해주었고 그의 짐을 챙겼고 그녀가 울도록 손수건과 어깨를 빌려주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너는 나의 형제야.”

욕망은 태생적으로 급진적이다. 직선이고 뜨겁고 타협을 모른다
어딘가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은 제레미의 생명을 거둬들일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양부모에게 그걸 바랐는데 정을 베풀기보다 올바른 인간으로 규칙을 익히고 결함 없이 성장하게 하기 위해 엄격함을 유지했다. 숙제를 안 하거나 약속을 안 지키거나 칫솔질을 하지 않았을 때 저녁을 굶게 하거나 오늘 입은 옷을 내일 똑같이 입고 등교하게 했다. 그녀가 잘못한 것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것은 불충한 신하를 책망하는 눈빛이었다. 그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진심어린 눈빛이라기엔 그녀가 겪는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이 결여되어 있었다. 대가를 치른다는 게 이런 거야, 알려주는 차가운 교도관 같았다. 그 눈빛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렉과 제레미와 그녀는 친구가 되었다.
무엇을 향한 것이든 욕망은 태생적으로 급진적이다. 길들여지지 않고 예의가 없으며 이기적이다. 직선이고 뜨겁고 타협을 모른다. 그것이 욕망의 본능이다. 제레미에게는 오직 자신을 없애고자 하는 욕망밖에 남지 않았다. 이 세상에 오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홀연히 사라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녀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본시 욕망은 그토록 자기 파괴적이다. 연필은 부러지려 하고 흰색은 더럽혀지려 하고 꽃은 떨어지려 한다. 욕망의 끝은 파멸이다. 제레미! 그래도 넌 좀 더 기다렸어야 했어.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거니?
그의 죽음과 더불어 그녀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째깍째깍 흘러가는 일 분 일 초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현존하는 시간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평면적이던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살아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에 가서 제레미가 본 것을 자신도 봐야 했다.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절망뿐이라 해도 절망조차 완전하게 절망하고 싶었다. 제레미가 남긴 진짜 유서였다.
메두사의 머리처럼 인간에게는 아홉 개의 삶이 있다고 믿었다. 자르면 또 돋아나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 삶. 피할 수 없는 것. 서른 해 그녀의 삶이 그것을 증명해왔다. 자신의 인생에 닥친 재앙을 한 번도 피하지 못했다. 그 점은 생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삼십 년 전에 뿌린 씨앗에서 돋은 싹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버티고 있지 않은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 텐데. 최소한 무감각해졌을 텐데. 자기가 뿌린 인생의 씨앗은 잊지 않고 발아한다.
제레미가 왜 그토록 절망했는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문틈으로 들어온 햇살만큼 알 것 같다. 생모의 마음도 딱 그만큼만 보였다. 생모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데 그녀의 눈동자에는 제레미가 담겨 있다. 그녀에게 고통을 가르쳐준 두 사람. 생명을 준 두 사람. 오래 곁에 있어주지 못한 두 사람. 엄마와 제레미. 철저히 그들과 무관해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어떤 필터도 없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려 한다. 흔들림 없이. 멈췄던 사랑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더 빨리 더 편히 사랑하고 화해를 청하고 타협해서 세상과 뒤섞이리라. 세상에 묻혀 살리라. 이질감, 소외감, 남다름, 더는 싫다. 이때껏 그녀의 출생은 그녀의 성장을 방해한 것이었다.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그녀는 가방에서 수첩에 끼워둔 사진을 꺼내 생모에게 주었다. 서툰 한국말. 그래서 모든 말이 진실로 들리는 한국말로 그녀는 자신은 무엇이든 사진으로 찍어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K80-1409 오선미. 그녀의 기록이 없어져도 사진이 있으니 문제없다고.
“지금 내 이름은 나일라예요. 잘 웃는 여자라는 뜻이래요.”
생모는 멈칫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나일라, 나일라, 외우며 사진을 본다. 그녀가 가진 사진 중에서 표정이 제일 밝다. 긴 머리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사진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찍은 것이다. 살구색 블라우스에 양엄마한테 생일선물로 받은 체인목걸이를 하고 있다. 
“이땐 머리가 길었구나. 나, 나일라.”
생모의 얼굴표정이 무너진다. 제발, 그녀는 한 번 더 제발이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그렉이 했던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제레미를 잊어. 우리 같은 사람은 과거에 연연할수록 인생 한심해지는 거 알지? 괜찮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생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끝내 눈물바람을 하진 않았다.
“네가 이렇게 클 동안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이렇게 클 동안 몰랐던 건 죄인가, 아닌가. 그녀의 사진을 오래이다 싶게 들여다보면 생모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얼굴에 도마의 칼자국 같은 미세한 잔금을 만들었다. 생모가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감정을 마침표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나는 옳았어요. 한번만 만나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거였군요. 사람들이 평생 가지고 사는 것, 제레미가 그토록 원했던 것,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 엄마랑 딸.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도 않고 만남조차 망설였는데,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건데도 이상하게 보호받는 느낌이 들어요.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에요. 당신한테 이 마음을 받으러 온 거였어요.’
삶의 방편으로 악의를 선택한 자가 되는 고통과 쾌감을 공유한 두 사람은 자꾸 시선이 마주치고 자꾸 시선을 피한다. 오류 때문에 인생을 망칠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다. 괜찮을 거예요. 이런 말을 담은 눈빛으로 생모를 마주보았지만 생모가 알아차릴 리 없다. 그럴 줄 알면서도 통역 없이 만나고자 했다. 둘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그녀 또한 생모의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웃음도 회한도 무표정도 알아볼 수 없게 뒤엉켜 있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미안하다.”
생모는 또 한 번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쓸어내렸다. 그녀도 생모의 손등에 도드라진 힘줄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그렉이 말한 엄마 느낌을 알고 싶었지만 느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손을 놓고 얼굴을 마주보며 지어낸 미소를 교환했다.

최옥정∙2001년 단편소설 「기억의 집」으로 ≪한국소설≫신인상 수상. 소설집 '식물의 내부'.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포토에세이집 'On the road'. 중편소설 「식물의 내부」로 허균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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