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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 여름호)신작시/톡,하고 저 공터에 누가 살구씨를 뱉었을까 외 1편/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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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63회 작성일 11-03-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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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
톡, 하고 저 공터에 누가 살구씨를 뱉었을까 외 1편


공터에서 첫눈을 떴을 때
눈 맞추어주는 이 아무도 없어
살구씨는 눈을 감아버렸다
소망영아원에서 효선이가 으앙, 하고
눈을 감아버린 것처럼
뒹굴던 쓰레기더미의 발효된 음식찌꺼기가
살구씨에게 젖을 물렸다
가짜 젖꼭지를 빨며 효선이가 잠든 것처럼
살구씨도 쓰레기엄마에게 안겨
어느새 우람한 청년이 되었다
살구나무는 이제 제 마음을 분홍빛으로 물들여
효선이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효선이가 고아원으로 떠난 뒤에
살구나무는 분홍빛 마음을
누구에게도 열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살구나무가 죽었으려니 여겼다
누군가 쓰레기봉지를 나무의 발치에 버렸다
그러자 모두들 쓰레기봉지를 살구나무 그늘에 버렸다
그늘은 점점 넓어지고 공터는 점점 어두워졌다

효선이가 영아원 보모로 돌아오던 날
영아원 밖 공터는





잔칫날처럼 안방도 부엌도 마당도 환했다
살구나무는 머리에도 손에도 등에도
알전구를 줄줄이 달아내어 분홍빛 마음을 밤새 켜두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고개를 빼고 공터를 들여다보았다

톡, 하고 저 공터에 누가 살구씨를 뱉었을까.

 

 

 


죽은 길


꽃 피는 봄날 꽃무덤이 된 길이 있다
새 길이 나자 헌 길은 미동도 없이 누워있다
봄이 오고 꽃들은 약속처럼 돌아왔지만
사모하던 눈동자 이미 희미하다
꽃들의 시선은 치매노인처럼 헤매고
헌 길 옆 카페 주차장, 즐비하던
자동차들 옛 기억만 바퀴자국으로 남아있다
검은 비닐봉지는
걸쇠에 발목 잡혀서 콧방울 벌름거리는데
지나가는 발걸음이 멈추자
길이 따라죽고
길이 죽자 길옆 카페도 죽어버렸다
깨진 유리창 틈새로
향기 그윽하던 봄의 왈츠는 청각을 잃고
귀퉁이 찢긴 메뉴판은 맨바닥에서 선잠이 들었다
집단자살인지 집단학살인지
꽃잎들 죽은 길 위로 뛰어내린다
새길 따라 어언 간에 새꽃길이 생겨나고
내 묵은 길에 추억의 꽃은 여전히 피어나는데
꽃구경 오는 이 아무도 없어
내 꽃때도 따라 죽는다.


전숙∙2007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 <나이 든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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