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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 여름호) 신작시/귀로 듣는 수묵화 외1편/김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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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02회 작성일 11-03-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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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
귀로 듣는 수묵화 외 1편


먹물을 잔뜩 묻힌 굵은 붓이 화선지에 一, 을 쓰듯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허공을 쓸며 지나간다
갑자기 시커멓게 번지는 소리를 올려다 본다
귀가 젖을 만큼 먹물이 쏟아진다  
방금 시작된 이쪽의 뜨거운 소리와 저쪽의 수그러드는 소리가
농담을 조절하며 수묵화를 그린다
여럿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울음의 귀로 듣는 수묵화
아, 있는 대로 입을 벌리고
누군가를 저토록 까맣게 운 적이 내게도 있을까
여백 없는 동양화 속을 화끈거리는 귀가 걸어간다

 

 

 


어디만큼 왔나


어릴 적 어느 겨울, 고함을 지르며 걷어찬 아버지의 밥상을 안고 나자빠진 된장 뒤집어 쓴 어머니가 죽은 개처럼 끌려 다니다 아이고 이바요 한 번만 바조요 왜 이래요 가끔 살아나 숨넘어가던, 저녁이었나 형과 나는 또 아주 오래 제발 아부지요 제발 아부지요 허우적거리다 죽을 줄 알았는데 무섭게 빛을 내며 장독을 깨던 아버지의 도끼는 달에서 계수나무를 찍던 것이었을라나 헛간 나무 그림자 속에 칼을 숨기던 형의 거친 숨소리를 따라 다니던 무서운 달빛은 머리카락만 듬성듬성 남기고 냇물 속으로 끌려가던 어머니 느들은 여 이써라 가마이 이써라 가마이 형과 나는 가만히 서서 울다가 이상한 고요가 다 흘러가고 냇물처럼 꽁꽁 언 어둠이 깊어져 어머니는 언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솥에 불을 때고 다 늦은 밥상을 다시 받은 형과 나의 숟가락에 고등어를 올려 주던 아버지 품에 안겨 술 냄새 지독한 숨소리를 하나에서 열까지 헤아리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취하던 그 때가 밤이었나 헛간에 숨겨둔 칼이 두려워 눈치를 보다 입에 밥알을 문 채 쪼그려 잠든 형의 좁고 굽은 무릎에서 목숨의 어두운 밑바닥 같은 걸 처음으로 보았던 그 어린 날이 지금 어디를 가고 있을라나 어디 만큼 왔을라나


김주대∙경북 상주 출생. 89년 ≪민중시≫로 등단. 1991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작품을 4편을 발표하며 본격적 활동.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 <꽃이 너를 지운다>, <나쁜, 사랑을 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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