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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 여름호)신작시/상처 외 1편/박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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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림
상처 외 1편
어떤 시인은 누이의 화상을 꽃으로 보았다
어떤 시인은 상처 위에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했다
정작 상처를 들여다보면 꽃은 보이지 않는데
왜 그들은 꽃을 보았다 하는가
꽃집들이 즐비한, 꽃상가에 늘어선 꽃들
미인대회라도 하는지 눈을 잡아당기고 있다
스쳐지나갈 뿐 눈은 곧 달아나고
또 다른 눈이 그 자리에 머물 동안
꽃집 주인은 셈하기에 바쁘다
누구의 상처인지
누구에게 의미가 될 것인지
아무런 관심도 없다
빙판을 건너온 삶이 그렇듯 얼음장 아래의 복수초가 그렇듯
제 필 때를 기다려온 꽃들
젖 먹던 힘까지 내어야 하는 것
일등을 위해 잠시도 멈출 수가 없는 것
일등이 되지 못한 사람들, 일등이 되지 못한 꽃들의 신음소리가
봄밤을 물들이고 있다
상처,
꽃의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달리는 풍경
그들을 마라토너라 부른다
기권 없는 발바닥을 가진
용수철을 달고 축지법도 간혹 쓰는
저 비정규직의 몸짓을
완주가 목표인
마지막 끝자리가 뭉개져 번호도 흐린
그 등 뒤, 서로 얽혀서
달리고 또 달리지만
한 번도 자리다툼을 한 적이 없다
발을 걸거나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는 그 따위의 수작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던
키도 제각각인
그들
타고난 유전적 형질 탓이라고 규정한다
저 달리는 흐트러짐이여,
멈출 줄 아는 것이 더 아름다운!
박해림∙1996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시집 <고요 혹은, 떨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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