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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 여름호)신작시/방안의 습도 외 1편/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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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애
방안의 습도 외 1편
자폐증 강아지가 신문을 뒤적거리며
기상정보에 귀를 쫑긋 세우는 아침
알코올 중독의 소주병만 해장국을 먹고 있다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구름이 허리까지 들이미는 동안
몸을 비틀고 있는 사내
동공에서 한줌씩 흘러내리는 안개
후드득, 유리컵으로 쏟아진다
수많은 유리컵이 쌓인, 투명해진
거실 바닥엔 소음이 튀어다니고
청소기, 그 깊숙한 가슴으로
강아지 신음이 줄줄 빨려들어 간다
달콤함과 불안함이 반죽된 방에서
‘전국이 차차 맑아지겠습니다’
아나운서 일기예보가
강아지 얼굴에
파리똥처럼 달라붙는다
우리를 태우고 갈 기차 시간들
현수막 같은 오후를 창문에 걸고
두루말이 휴지에서 한 칸씩 젖고 있다
B병동 중환자실
링거병에 매달린 젊은이가 숨을 죽이고 있다 코와 입이 막혀 있다 산소 호흡기 속에서 표정이 굳어 가는 병실 공기들이 침대를 누른다
젊은이가 눌린다 의사의 푸른 옷에서 핏빛 어둠이, 찬바람이 쏟아진다 발자국이 정지된 무거운 시트 아래 소독 냄새가 쌓이고
침묵을 덮은 마른 눈빛들이 백야에 쌓인 병실을 바라본다 어두워지고 아득해지는 사람들 머리로 달빛이 덮인다 높은 병실을 가슴에 안고 옆에 끼고
긴 복도를 걸어가는 밤, 공포가 겹겹이 휘감긴 벽에 성근 머리칼이 흘러내린 한 노인의 구겨진 목이 꺼멓게 박히고 있었다
최정애∙2002년 ≪시현실≫로등단. 시집 <손가락 끝에서 달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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