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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 여름호)신작시/전설의 눈물 외 1편/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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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55회 작성일 11-03-1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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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
잔설의 눈물 외 1편


사할린 변두리에도 체호브산 능선을 내려온 사월이 잔설에 키스를 한다 모처럼 화창한 봄볕이 따뜻한 등을 내미는 날, 겨우내 웅크렸던 여심은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즐긴다
차디찬 바람이 맨살을 후려쳐도 비치밴치에 담요를 깔고 느긋한, 풍만한 여인의 가슴을 스치며 사할린에도 봄은 온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밭을 지나 얼음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얼음 아래서 딸려올 송어의 까만 눈을 기다린다
향신료를 넣고 장작불로 끓여낸 송어탕, 겨우내 차갑던 가슴에 따뜻한 바람이 분다
솜털을 내민 베르바가 터질 듯 물이 올라 꽃눈을 터뜨리고 잎사귀가 금방이라도 쑥쑥 손을 내밀 것만 같다
예세니야거리에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튀는 흙탕물, 눈덩이엔 구멍이 숭숭 뚫리고 사람들의 눈가엔 질척질척 얼룩이 진다
공항에는 끊이지 않는 엔진소리, 얼어붙은 눈 녹는 소리, 고향을 향한 마른 기침소리
영구 귀국길에 나선 1세대 노인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할린을 두고, 늘그막 얼마나 좋은 청산을 가겠냐며 베르바 같은 어린 손자의 올망졸망만 눈망울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노인들, 안산 고향마을로, 천안으로, 제천으로 떠나간다
사할린의 봄은 눈물의 계절이다 잔설의 계절이다

 

 

 

 


중세미술을 읽다


전시실엔 빛바랜 얼굴들이 중얼거렸지 녹슨 시간도 촘촘히 걸려 있었네 주름살을 숨긴 피사체는 근엄하기도 하여라 왜 하나 같이 여인들의 모습은 풍만한 걸까
농익은 시선들이 눌러 붙고 말았지 쩍쩍 실금 간 얼굴은 퍼즐을 맞춘 것만 같았네 뜯겨난 들판에서 바람이 불었던 거야 빛과 어둠의 시계는 점점 흐려져 재깍재깍 흐르는 그림 속으로 걸어갔었지

시간을 듬뿍 찍어 캔버스에 칠했네 붓질을 끝낸 상자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지 다들 커다란 시곗바늘을 옆구리에 차고 있었네 스포트라이트 받던 그림자도 뒤섞이고 말았지
암청색으로 내리는 비가 시야를 잠그고 빗물은 거리를 지우며 번져나갔네 기나긴 시간들이 꼬리를 물고 저물었던 거야 거리의 화가도 이젤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

그림자가 휘감긴 통로에서 길을 잃어버렸네 틀어진 캔버스 틈새로 튕겨나고서야 무채색의 골목을 들여다보았지 중세 여인의 눈빛에 그림자를 거둬들이고 차츰 어둠 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었네
형광등이 꺼진 뒤 일렁대는 잔광처럼 잠시나마 박명의 얼굴도 촛불에 스쳤네 명박산성이 허물어진 광화문에도 비가 내렸지 중세의 초저녁 불빛들이 미완성 된 수채화의 비명을 덧칠하고 있었네


임윤∙경북 의성 출생. 2007년 ≪시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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