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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 여름호)신작시/나의 귀에 너의 사과가 외 1편/이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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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644회 작성일 11-03-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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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나의 귀에 너의 사과가 외 1편


개를 끌고 가는 내가 있고 발이 무거운 네가 있다. 거리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어제의 태양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너는 손바닥 안에 사과를 숨기고 있다. 사과는 둥글고 사과는 붉다. 달콤한 과육은 희고 긴 벌레들의 속죄양. 벌레의 미래는 과즙으로 출렁이겠지. 나의 귀는 너의 사과를 향해 열려 있다. 사과 속의 사과는 천천히 사라져간다. 나의 귀에 너의 사과가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 상상해본 적 없는 점선의 궤적을 그려볼 시간. 이를테면 죽음을 향해 떠나는 개미의 이동 경로를 상상해 볼 시간. 일개미 여왕개미 소년개미 소녀개미. 내 손바닥 위에서 끝나기도 하는 개미의 일생에 대해. 나의 개는 발이 아프다. 신발을 신지 않아 발을 절룩거린다. 산책로의 질감은 단 한 번도 신중히 고려된 적이 없다. 어머니 혹은 의자라는 낱말의 다정함을 거스를 수 없듯이. 나의 집은 불타 없어져버렸다. 너의 진심은 수축하고 있다. 개를 끌고 가는 내가 있고 발이 무거운 네가 있다. 사라지는 사과의 속도에 비례해서 거리가 생겨난다. 나의 귀에 너의 사과가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 첫닭이 울기 전에 너는 너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양의 창자로 요리한 수프로 만든 시


눈보라 속에서 럼주 한 잔
아름다운 동물 얼굴을 만나러 가자
운이 좋다면 진초록 오로라는 덤으로

눈이 흐릿한 집시 할멈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이 부르면 올라가리라 하늘이 부르면 올라가리라

라크―리큐어
이쉬켐베 초르바스―양의 창자로 만든 수프
오렌지
화이트치즈
로즈잼
코윤 바쉬유―양머리 통구이
체르케스 타부―호두소스를 뿌린 닭고기 냉채
아르나웃 셰리―새끼양의 간에 알바니아 고추를 넣고 기름에 튀긴 것
이맘 바윤드―토마토, 양파, 가지를 넣어 한데 끓인 요리
카딘 부두―기계로 저민 어린 양고기를 삶은 경단
미디에 돌마스―쌀과 소나무 열매를 넣은 조개
제티냐울 푸라리―양파와 쌀을 끓인 것
시가라 브레이―치즈를 넣은 패스트리
케슈쿨―아몬드와 쌀가루로 만든 커스터드
카이마르크 에르마 콤포스트―사과시럽을 익힌 것
야채 샐러드

아이란―요구르트를 물로 묽게 만들어 거품을 일게 한 음료*

늙어버린 두 손 위에 늙어버린 진심을 얹어
아무도 모르게 잠이 들리라 아무도 모르게 잠이 들리라

오로라는 꿈속에서만 타는 듯한 녹색
동물의 동공은 기억 속에서만 아름다운 느낌

입김 위에서 휘몰아치는 알래스카 윈터
낡은 선술집 창 너머로 스며드는 붉고 검은색

*터키요리의 이름과 설명: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에서 발췌.

이제니∙부산 출생.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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