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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 여름호)신작시/길 외 1편/김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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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우
길 외 1편
저물녘,
달라붙는 어둠에
지나온 길부터 허물어지는 골목
낡고 금이 간 담벼락 사이
좁은 길,
노인은
자전거를 끌고 간다
바퀴를 절며
머리 위로 잔뜩 부푼 구름
무거워져
켜켜 내려앉는
가등의 불빛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느리고 희미하게
또는
길은
사라져가는 산그림자를
자꾸만 부여잡는다
한사리
남자는 바닷가에 녹슨 닻처럼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바닥이 드러나는 봉지에서
새우깡 몇 개를 힘없이 꺼내들고
가까이로 날아드는 갈매기들을 향해 던져주었다
재빠른 바람이 툭 치고 갔던지
빈 소주병이 길가 화단을 기댄 남자 옆에서
나뒹굴었다 바다를 향해 있던
그의 무심한 두 눈 속으로
배 지나간 자리 물결이 가득 들어차고
출항을 알리는 낡고 때 묻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릴 때
그는 햇볕에 검게 그을린 왜소한 팔뚝으로
애꿎은 그물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메마른 바람이
한 생生의 높낮은 파도를 만들 때마다
그는 조그만 어선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항구에 묶여 흔들렸던 적 있었다
파도가 잔잔해지고 얼콰하게 취해버린 그의 앞으로
서서히 물이 빠져나간 갯벌에
하나 둘 모여든 아낙들은 쭈그려 앉아
입을 앙다문 뻘밭의 햇살을 조개마냥
조그만 대바구니에 담고
목련꽃이 떨어지자 남항에는 봄이 왔다
보름에서 그믐으로 달이 지나는 동안,
김덕우∙경남 통영 출생. 2009년 ≪경남작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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