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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 여름호)신작시/투명한 끈 외 1편/조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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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74회 작성일 11-03-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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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엽
투명한 끈 외 1편


겨울바다와 입 맞춘 강물의 속살에는 물새들의 울음이 배어 있다 구름과 바람의 신음소리를 삼키며 살아온 옹몰졸몽한 돌멩이들, 강바닥에 납작 엎드려 한 자 두 자 그 끝을 알 수 없는 울음의 깊이를 잰다

12월 마지막 토요일 해질녘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찾아온 손님은
스무 번 쯤 벨을 울리다 잔잔해지고
또다시 스무 번 쯤 문을 두드려 수만 개의 귀를 열어젖혀 놓고
조용히 강 쪽으로 사라져갔다

자갈을 밟고 걷는 구두코 위로 새들의 날갯짓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다 어둠이 찾아드는 들녘엔 사내들의 검푸른 휘파람이 논둑을 타고 흩어졌다가 다시 떼를 지어 마을 어귀와 뒷길 구석구석을 쓸고 다닌다 저녁을 맞은 새들도 숨겨 놓은 지도를 찾아 강둑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내내 잊고 있었던 혼을 찾아가듯 나는 가뿐 숨결을 엮어 투명한 강물 속에 가라앉히고 고개를 든다 밤마다 눈 감을 수 없는 한숨이 여물고 여물어 잔돌로 박힌 하늘 아래 강가에는 유배자 고유의 말 없음이 별 그림자의 무게를 포개 싣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흐른다 나도 저처럼 한 방향으로 야위어가는 강으로 살아왔던 것일까

수많은 낮과 밤, 이메일 한 번 오지 않았다
기억한다는 것은 보고 싶은 무언가를 조심스레 접고 접어
동굴 깊숙이 감추어 둔다는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초인종

억겁 같은 그 소리의 길이로 헤아려보는 마음 그 깊이를 향해 저녁종이 울린다
그런 날이면 나도 모르게 동백잎처럼 고요해져 창밖을 본다
속은 이미 벌겋게 타버렸을지라도 푸른 목소리로
햇살을 받아먹고 사는 이파리들
둥그런 아기 웃음 몇 마디를 닮았다

철새들은 벌써 강가에 도착했을 것이다 수 천만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질긴 끈, 그들은 지금 울고 있을까 말하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수수만 년 아니 번개 같은 이승에서나마 끊어지지 않을 끈 하나 간절히 갖고 싶은 내 마음 속 는개처럼

 

 

 



안개


앙탈 부리듯 내리는 이 비는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
노루의 등을 타고 단숨에 달려 왔을 것이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화살처럼 쏟아지는 작달비 속을 걷다
담장의 나뭇가지에서 붙잡은 솔향기
나는 험한 산등성이를 오르는 안개의 혓바닥과
나무의 젖은 바짓가랑이와 어둠의 등뼈를 떠올린다
안개는 달아나려는 이들을 자꾸만 둥근 치마 속에 가두며
골짜기의 물소리를 나침반 삼아
수천의 혼이 잠든 산등성이들을 더듬어 간다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그들의 내면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미줄처럼 구멍 난 가슴들을 가만가만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앞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발끝 닿는 곳마다 깎아지른 절벽뿐이었으리라
한숨도 단단해지면 마침내 빛을 발하는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며
절규하는 목소리 받아들이려 아래로아래로 끝없이 내려앉았을 안개는
숲속 가득 펼쳐놓은 푸르름에 두 손 모아 경배하고 도망쳐 왔나
맨발에 와 닿는 빗줄기는 배고픈 혼령들의 송곳니인 양 살을 찌르고
번개가 번뜩 사선을 긋고 간 서편 하늘에 독수리 한 마리 날아간다
저녁의 어둠을 보자기처럼 뒤집어쓰고 주인을 기다리는 우리집 창에도
그들의 소망이 잠시 머물러 쉬어갔을 텐데
낯선 거리에서 나는 줄곧 무언가를 찾아 헤맸지만
제자리 찾아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저 멀리 암자의 종소리 등을 두드리고 비를 입은 내 몸이 점점 아래로 내려앉을 때

조옥엽∙전남 구례 출생. 2010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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