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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신인상(시부문)/개화開花 외 4편/고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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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52회 작성일 10-08-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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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10년/봄) 신인상(시부문)

고은산
개화開花 외 4편


며느리밑씻개란 어처구니없는 이름의 꽃도*, 꽃일진대, 홀쪽한, 듬성듬성 이빨 빠진 시어머니의 등살이 뾰족하게 하얀 이를 드러낸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 홀랑 벗은 햇빛이 방금 꽃망울 터뜨린다. 속살 드러낸 햇귀 같은 작은 꽃, 너는 황홀한 아프로디테.* 망막의 전율, 혈관에 금빛이 급회전한다. 오금이 짜릿하다. 덩달아 꽃이 필 것 같은 파닥이는 심장 속, 울렁인다. 햐, 이 오르가즘!

피는 꽃이 화엄의 기둥을 세우는, 역병처럼 번지는, 돌부처 미소와 같은, 그런 
     
*김종미 시인의 시 「꽃은 언제나 진다」에서 인용.
*아프로디테:미와 사랑의 여신(비너스).





풍경소리


낯짝 빳빳한 햇빛이 차갑게 쌓이는, 절간 처마 끝, 풍경이 딸랑딸랑, 옆에 바짝 마른 고드름, 땅을 향해 붙들려 있다. 자비소리, 꺼꾸로 선 고드름의 달팽이관을 스쳐 승방 아랫목까지 왔다. 마른버짐 핀 동자승 머리끝, 쪽빛 파도처럼 출렁인다. 지금까지 퍼짐으로만 살아왔다. 은빛 향으로 절을 더듬는, 더듬이 없는 소리는 동자승 고막 속으로 들어가 허파꽈리를 흔든다. 흔들흔들 들려와 크리스탈 쟁반 위에서 꽃의 왈츠*를 춘다. 밭은기침 콜록이는 동자승, 허리춤 들어 올리자 바람에 딸려오는 가느다란 공양주 목소리, 적막을 찢는다. 입술 위에 밥알이 달라붙는다. 밥알을 훔치며 자비소리 하나 떼어낸다.

자비소리는 바람에 묻어 햇빛에 채색되는, 고요의 쇳대를 끊임없이 여는, 은어의 퍼덕거림!

*꽃의 왈츠: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발레 모음곡 8번(가장 현란하고 웅장함).





고등어


생선 좌판 앞, 뱃대끈 팽팽히 하는 아줌마, 우둘투둘 미끄러지는 아픔의 구릉, 오소소 가족의 잔영이 떨어진다. 미끈미끈한 고등어 위로 찬바람 연방 주먹질하는, 초겨울, 언 땅바닥은  의지의 힘줄 당긴다. 그녀, 잠깐, 눈을 돌려 코를 훔치는 사이 햇눈이 땅바닥에 닿는다. 다닥다닥 흙이 묻은 털장화 속, 애환의 뼛국물이 흥건하다. 해진 앞치마 두른 찬바람 속,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사람들, 곱은 손등에 주름이 깊어진다. 깡깡한 두개골 속으로 흐르는 냉혈, 창백한 위장을 건드린다. 쭉 손을 내밀어 온정화溫情花 같은 고등어를 사는 중년, 잠시 엔돌핀이 쭈뼛 머리털 세운다. 언 배춧잎 같은 부르튼 손에 온기가 돈다. 





호접


꽃이 피었다

꽃이 피기 까지
계절의 층계를 오르며 무관심 속, 오롯이, 살아온 살사리꽃*

그 연약한 몸으로 어둠의 부축을 받으며 산통 이겨낸
산모는, 울음 터트렸다

아침 되어 호접이 날아왔다

지난 밤 일은 알지 못하는, 접신하듯 날갯짓하는, 호접, 호접은
내 눈에 美의 아편주사를 놓았다

호접이 날아갔다

날아간 자리에 천연덕스레 웃고 있는 꽃술 위,
햇빛 몇 되 퍼부으며 밤의 통증 위로하는 시간,
꽃술의 금빛 촉감, 미각의 달콤함을 잃어버린 낭패감 뒤로 하고
날아갔다

나는 상자 속 핀으로 박혀 박제된 호접을 그저 보고 있었다
살아 날 것 같았다

길옆에서 꽃술을 유심히 바라보았을 때였다
눈에서 시위를 당긴 화살이 
꽃술에 명중되는 순간마다-번쩍번쩍 빛나는 불꽃놀이!
이미 호접은 날아가 없고
나는 금단증상 없는 美의 중독자가 되었다

美의 중독자인 나는 생각했다
달콤했던 꽃술도 머릿속에 박제됐을 것이라고

*살사리꽃:코스모스꽃 순 우리말.





만정滿情


궁창 아래 수돗가, 주물럭주물럭, 닥지닥지 때가 낀 메리야스 몇 벌 빠는 아내, 풍성한 세월이 담긴, 펑퍼짐한 바지, 넓은 마음 같다. 깡마른 몸에 주름진 얼굴, 뽀글파마는 나이를 푹 볶고 있다. 미끌미끌한 비눗물, 뭉텅뭉텅 묻은 인고忍苦의 찌꺼기를 뭉글뭉글 뺀다. 한쪽 귀퉁이 나간 빨래판, 잔가시 박힌 과거를 떼어낸다. 쭉 미는 팔, 쪼그린 다리의 힘줄은 참나무 같다. 머리를 쳐들자 황소 같은 남편의 어깨가 동공에 맺히는, 몇 조각 뙤약볕이 한가롭게 어깻죽지를 만지는 오후, 흔들흔들, 이마의 주름 사이, 한 줄기 은바람이 마알갛게 지난다. 옆을 힐끗 보니 맨드라미꽃이 쳐다본다. 아, 단침이 고인다. 움쭉 돋은 별 속에서 볕뉘처럼, 솟대 같은 남편 생각, 빨래하는 사이, 금빛 사발 속에 머무는





당선 소감
시는 찰랑거리는 강둑 같은 전율의 세계


시의 밭을 일구며 치열히 몇 해를 살아왔다. 협곡을 몇 개 오르내리며 등단한 기쁨은 내 생애 가장 큰 보람 중 하나이다. 어떤 시인의 권유로 김준오의
추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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