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38호(2010년/여름) 특집/이십대의 발랄한 상상력들(전아름)
페이지 정보

본문
내 안의 서울
전 아 름|기자, 25세
책이 출간 된 이후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섭렵하며 인터뷰를 강행했다. 한 없이 ‘찌질한’ 우리들인데, 운 좋게 책을 한 권 냈더니 여기저기서 ‘20대 대표자’, ‘20대 명사’ 등으로 추켜세워 주는 것이다. 덕분에 거대 자본으로 요즘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는 케이블 방송 토론프로그램을 비롯,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한 바 있다. (촬영 일정 중, 우리는 ‘위험한’ 멘트들을 계속 노출시켰고, 물론 그것들은 다 잘려나갔다.) 신문, 시사지, 인터넷 매체 등은 물론이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패션지’ 인터뷰에도 응한 바 있다. 극과 극을 달리는 매체들의 요청을 소화해내며, 우리는 나름의 논리가 서고 있음을 느꼈다. 비슷한 질문을 내놓으면, 비슷한 대답을 하며 나름 인터뷰의 ‘룰’이 습득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우리가 책을 쓸 당시에도 알지 못했던 어떤 논리였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20대란 누구인가
대개 인터뷰라는 것은 ‘어쩌다가 이런 책을 쓰게 되셨냐’는 질문을 시작해 ‘가장 흥미로웠던 인터뷰이는 누구였냐’를 거쳐, ‘작금의 20대 비판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심화질문을 지나 ‘오늘날의 20대에게 희망이 있다면? 혹은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등의 질문으로 전개됐다. 그 중, 인터뷰어는 ‘20대에 어떤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집중한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가장 그럴 듯한 질문이 그럴 듯한 대답을 유도한다. 해당기사의 메인타이틀이 되는 바로, 그런 대답들이다. ‘우리는 우리 잘난 맛에 산다’, ‘중 2병 환자들이다’, ‘인터뷰이들에게서 배울 것은 없었다.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배웠을 진 몰라도.’ 등의 자극적인 멘트들이 노출되면서, 우리는 ‘중 2병에 걸려, 제 잘난 맛에 사는 오만한 요새 젊은것들’의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그런 왜곡된 이미지가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다. 보통의 소비매체라는 것이 팔릴 만한 원석들을 팔릴만하게 가공하는 것이니. 우리가 처음 책을 썼을 때, ‘팔릴 만한 책들을 만들자’고 ‘도원결의’ 했던 것처럼.(그 ‘팔리는 것’ 사이에는 분명, 나름의 간극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가공된 이미지들이 전파를 타고, 우리는 다시 논쟁에 붙어야 했다. 책이 잘 안 팔리는 시점에서 굉장히 고마운 ‘트집’이었다. 누군가는 ‘이 책은 변질된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서’라고 비꼬았고, ‘스펙 쌓는 게 뭐가 나쁘냐, 열정적인 삶이 뭐가 잘못 됐냐’며 나름의 항변을 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트집들 중, 가장 신경 쓰였던 ‘트집’은, 책을 쓴 3명의 저자와, 9팀의 인터뷰이들을 ‘요새 잘난 것들’이라 말하는 냉소였다. 서울을 비롯한, 혹은 전철만 타면 30분 안에 서울에 닿을 수 있는 수도권에 살고, 서울에서 성장 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며 풍족한 경제적 여건 하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한 이들의 이야기는 분명 흥미롭다며,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선택된 사람들이라며, 잘 살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답안지도 많았던 것 아니냐는 일련의 의견들을 접수하며 나는, 책에서 독자들이 이들의 학벌이나 가정환경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삶을 봐줘야 한다는 항변을 한 적 있다. 그러나 먹힐 만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작금의 세태’에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학벌’과 ‘환경’뿐이라는 것을
20대 비판론이 소외시킨 20대
나이로 구분했을 때, 지금의 20대란 1981년생부터 1990년생까지를 아우른다. 그 중 서울에서 4년제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전체 대학생의 14%. 나머지는 대학생이 아닌 이들과, 그리고 서울을 벗어난 수도권으로, 지방의 중소도시로, 지방으로 밀려난 이들이다. 학교가 위치한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 나고, 그 순간의 결정으로 이미 대학생 내부에서 계급이 형성된다. 소비수준이 달라지고,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지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것 역시 달라진다.
우리가 보통 문제 있는 20대들이라고 하면 이런 것일 테다. 개인의 문제에 매몰돼서 사회현안엔 쥐똥만큼의 관심도 없고, 대기업 입사가 인생의 최종목표라 스펙 쌓기에 여념 없는, 그 과정을 ‘열정이 빛나는’ 과정으로 포장하는 세대 말이다. 그러니,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고3 수험생들이 문제집을 내팽개치고 나왔을 때, 20대들은 도서관에서 숨죽여 취업공부를 했을 테고, 방학이면 어학연수를 떠나고, 졸업 후엔 대학원에 진학해 학생의 신분을 유지하며 경제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무기력한 세대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매체를 통해 말하는 것들이,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것들이 나도 모르게 서울로 집중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니까 꿈을 가지라는, 결국 우파의 논리로 귀결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서울에서 온갖 혜택을 다 받고 사는 서울에 있는 대학생을 상대로 하게 되는 말이자, 그런 논리임을 깨닫게 됐다. (하다못해 ‘집회라도 나오’라고 했는데, ‘총투쟁’이란 것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니)그리고 그 논리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서울’을 깨우게 했다.
대부분의 20대에게 ‘서울’은 존재하지 않아
나는 경기도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성장했다. ‘고향친구’ ‘동네친구’라 하는 이들 역시 그 곳에 있다. 이른바 ‘비평준화’였던 그 곳에서 지역의 사교육을 조장하는 몇몇 고등학교 빼곤 대부분의 수준이라는 것이 ‘도찐개찐’이었고, 학원의 중간고사 대비 예비시험지도 ‘학교의 수준’이라는 것과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게 배부됐다. 다른 난이도의 시험지를 받는 순간, 분열이 조장됐고, 그 분열은 대학사회의 계급으로 이어졌다. 나의 친구들과 동생들은 개발 중인 지방 신도시에 위치한, 개교한지 얼마 안 된 ‘지방대’로 진학했다. 그 안에서의 치열한 경쟁이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말하는 ‘스펙 쌓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의 ‘스펙’이란 내부의 적들을 누르고 그 안에서 1등이 되는 것으로 담당 교수의 눈에 들어 추천을 받아 학교 근처 중소도시로 출근할 수 있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기업입사, 외국계회사 입사 등은, 그들에게 ‘언감생심’이다.
우리가 20대 세대론 논쟁을 그쳐야 하는 이유가 이에 기인한다. 세대론이 부각되며 ‘386’이라고 하는 세대와의 대립각이 세워지고, 역량이 총동원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힘이 분열됐던 것. <요새 젊은것들> 또한 그 세대논쟁에 불을 붙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20대론’이라고 하며 열띠게 토론했던 논쟁들은 결국, 경쟁에서 밀려나고 밀려나 타의적으로 계급의 아래 축을 담당하고 있는 또 다른 20대의 존재를 부정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을 쓰는 중, 친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그와의 대화 이후, 쓴 글을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으로 흩어진 진짜 우리의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렇게 분화해 놓고 보니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한 예를 들어봐도 그렇다. 서울에서 ‘고연전’이라고 하는 축제가 지방에서도 인접 지역 대학끼리 비슷하게 ‘**전’ 등이라고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를뿐더러, 안다 하더라도 “제 까짓것들이……”라며 무시하고 마니까.
“……언니, 언니가 쓴 글 봤구요, 언니 책도 봤는데요, 근데요. 저는요, 알아요. 우리가 아는 세계가 그렇게 넓지 않다는 것도, 결국 우리는 서로 다 우물 안에 갇혀있는 개구리라는 것두요. 근데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 지 모르겠어요. 몇 번 폴짝거린 애들은 윗 공기 좋은 거 알고서 계속 그 공기를 맡아보려고 폴짝폴짝 대는데, 결국 안 되거든요. 근데 저는 폴짝거리는 방법도 모르겠구요……. 그런데요, 언니는 어떤 공기를 맡고 있는 개구린가요?”
전아름∙서울여대 사학과 재학 중. 월간 통일전문지 ≪민족21≫ 문화면 담당기자. 2010년 1월, <요새 젊은것들> 공동저자.
- 이전글38호(2010년/여름) 특집/이십대의 발랄한 상상력들(이현호) 10.12.07
- 다음글38호(2010년/여름) 특집/이십대의 발랄한 상상력들(박연) 10.12.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