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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여름) 특집/이십대의 발랄한 상상력들(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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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비 담배가 타들어 가는 시간
이 현 호|시인, 27세
이게 몇 개째더라. 필터만 남은 꽁초가 포물선을 그리며 창밖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간다. 여운처럼 남겨진 흰 연기도 서둘러 꼬리를 감춘다. 얼마는 바닥으로 가라앉아 방 안을 맴돌고, 나머지는 밤하늘에 스며든다. 허공 중에 흩어진 연기들은 내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어두운 우주 어딘가에 본래의 거처를 마련해 두고 있는지 모른다. 그곳에서 먼 여행에 지친 서로를 위무하며 하나의 단단한 결정으로 재생하는 건 아닐까.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검은 고양이의 안광 같이 빛나는 별들을 일일이 손가락 끝으로 짚어 본다. 멀다. 손끝이 차다.
목이 따끔거린다. 누수처럼 밭은기침이 새어나온다. 몇 번인가 담배를 끊어 보려 한 적도 있지만, 삼 일을 넘기지 못했다. 단칼에 끊어야 한다는 둥 물을 많이 마시라는 둥 사탕을 물고 다니라는 둥의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아무 소용없었다. 이미 담배는 내 몸의 일부처럼 익숙했던 것이다. 그때 금단의 괴로움은 환지통幻肢痛을 앓는 것 같았다. 육신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고통이 대신했다. 해갈되지 않는, 대체 불가능한 욕구가 신경의 말단부터 가슴속까지를 무섭게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현관을 잠그는 것도 잊은 채 잠들지 않는 밤의 편의점을 찾아 내달렸다.
중독이란 늪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어렵다고들 한다. 늪은 그 무저갱의 입속으로 발버둥치는 몸뚱이를 가차 없이 집어삼킨다. ‘중독’이란 말 자체도 늪과 닮은 데가 있다. 이 단어는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늪의 성질 그대로 많은 낱말을 제 앞에 끌어당긴다. 니코틴 중독·알코올 중독·섹스 중독 · 도박 중독 · 일 중독 · 게임 중독 · 연애 중독 등등. 대부분 그 앞에 부정적인 인상을 풍기는 단어가 오긴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중독의 주된 속성은 반복이다. 중독이 되기 위해선 중독을 유발하는 무언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야 한다. 반복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독은 습관 · 버릇과 상통한다. 독서하는 습관 · 메모하는 버릇 등 ‘습관’과 ‘버릇’은 ‘중독’과 마찬가지로 앞에 다양한 말을 붙일 수 있다. 중독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습관’, ‘버릇’, ‘중독’은 행위의 주체에게 구속력을 발휘한다. 자의적이 아닌 경우 자기 의지를 배반하고 그것을 하게 하는 강제력을 갖고 있다. 도박 중독자들은 손가락이 없으면 팔목으로 팔목이 없으면 발가락으로 패를 쥔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극단적으로 술을 못 마시게 되면 화장수를 들이켜기도 한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잃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힘은 강력하다. 오늘부터 그것을 거부하겠다고 말하는 입 속에 이미 그것이 물려 있고, 손사래를 치는 손 안에 그것은 벌써 쥐여져 있다.
그것이 행위의 주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부질없음과 무익함, 나아가 해악을 알면서도 그것을 되풀이하는 데 있다. 그러는 동안 마음속에선 자기반성이 일어난다. 다음은 자기 비하와 자기모멸의 시간이다. 동시에 이 파괴적인 심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가 작동한다. 중독자는 자기 합리화가 무의미 속에서 피워낸 한 줄기 시든 의미를 생명선으로 삼는다. 썩은 밧줄도 여러 번 꼬면 한 사람을 들어올리기에 충분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늦는다. 의지와 절제의 경계를 넘어선 곳에 삶은 새 뿌리를 굳건히 내린 이후다. 뭔가에 강박적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그것이 강렬한 쾌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잠시 현실을 잊게 해준다는 점이 쾌락의 마력이다. 습관, 버릇, 중독 중 특히 중독의 이면에는 우울한 현실과 현실도피, 의지박약이 숨어 있다. 그 셋은 지옥문을 지키는 개 켈베로스의 세 개의 머리다. 환락 속에 있을 때 저쪽의 삶은 엄혹하고, 이쪽의 삶은 실체가 없을지언정 달콤하다. 멀리 모진 바람을 헤치며 전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불안과 고립감은 끊임없이 환락에서 벗어나 그들 틈에 섞이라고 종용하지만 두 발은 납덩이를 단 것처럼 무겁다. 진경眞景은 외면한 채 선경仙境만을 그리는 화가를 손가락질하는 건 정당한 일일까.
다시 말하지만 중독의 주된 속성은 반복이다. 고로 모든 인간은 중독자다. 생중독生中毒. 모두 심각한 삶 중독자들이다. 그들은 하루하루를 조건반사적으로 반복하며 살아간다. ‘일상’이란 뜻 그대로 ‘매일 반복되는 생활’일 뿐이다. 중독과 버릇과 습관 따위가 무언가를 계속하고자 하는 끊을 수 없이 강렬한 지속에의 욕구라면, 인지하고 있건 아니건 그들의 가슴속은 삶을 계속 영위하고 싶다는 지독한 욕망으로 들끓고 있다. 그것이 부질없고 무익하더라도 말이다.
그들은 죽음 중독자이기도 하다.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과 가까워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독자들이 중독 상태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하고 거기 더욱 몰입하는 것처럼 그들은 삶과 죽음에 몰두한다. 생사에 중독된 그들의 영혼은 어떤 기능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잊기 위해 중독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사전은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를 중독이라고 정의한다. 오래 머물렀던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 그들이 마주해야 할 실재는 무엇일까.
좀 더 밝은 의미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습관 내지 살아내는 버릇. 죽어가는 습관 내지 사라져 가는 버릇이라고. 이렇게 표현하고 나니 담배 맛이 달다. 아버지에게도 안 드린다는 마지막 담배 한 개비, 흔한 말로 돛대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담뱃값이 오르면서 담배 한 개비 한 개비가 더욱 소중하다. 예전에 싼 맛에 태우던 88 시리즈 담배가 그립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담뱃값에도 벌벌 떠는 88만 원 세대―8만 원이 더 적확한 말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발칙한 이십 대보다는 88만 원 세대가 입에 더 잘 감긴다.
연기가 잇대어 피어오르듯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생각만 앞서는 버릇이 있다고 해도 좋고, 생각 중독자라고 해도 좋다. 찬 바닥에서 몸을 굴리니 머릿속의 ‘8’자들도 따라서 돈다. 옆으로 누운 8은 무한대(∞)처럼 보인다. 88만 원 세대의 88은 사실 무한한 가능성의 제곱을 뜻한다고, 팔팔한 세대를 의미한다고 흰소리를 해본다. 무한토록 무안하다. ‘무한’이란 말이 범종의 여파같이 마음을 울리는 건 이상한 일이다. 곧 잔잔해진 그곳에 ‘영원’이란 말이 날아와 깃든다―가진 돈이 0원이라서가 아니다―. 흰소리 중독자로서 전할 말은 이것은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현호∙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 2007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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