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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10년/여름) 특집/이십대의 발랄한 상상력들(김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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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단하지 못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 소설가입니다
김 종 소 리|대학생, 24세
왜?
발칙한 행동의 시작은 ‘왜?’라는 한 글자이다. 왜냐면 기존의 틀에 대한 의문 없인 그것을 거부하는 어떤 것도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의 경우엔 무엇에 ‘왜?’가 떠올랐는가하면, 우리나라 문단의 등단 시스템에 왜가 떠올랐다. 도대체, 왜 상을 타야만 등단, 즉 작가라는 호칭이 붙는 것인가?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 작품이 우수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수하지 않은 작품을 쓴 사람은 작가가 아닌 것인가? 또, 그 사람들은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보일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것인가? 우수하고 우수하지 않은 것은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왜 이렇게 굴러가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음악이나 미술 등의 타 예술 장르의 경우, 그 장르의 프로가 아니라할지라도 세상에 내보일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있었다. 예를 들면, 음악의 경우엔 수많은 라이브 클럽들이 있고 미술의 경우 길거리 미술전, 갤러리 카페 등 무수하게 많았다. 하지만 문학은 그럴 공간이 없었다. 그저 끼리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돌려 볼 창작집을 내는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작품을 단지 상을 타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왜 세상에 떳떳하게 내보이지 않는 건지. 자신에게 떳떳한 작품이라면 충분히 세상에 내보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퀀지를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작품을 내게 준다면 내가 만들 문예지에 싣겠다.
뭐?
주변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말하자 여러 반응들을 보여주었다.
주변 지인들의 반응. → 대답.
미친놈. 그럴 시간에 글이나 더 써서 발전시켜. 등단을 못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 아냐? → 이걸 통해서 더 많은 작품들을 쓰게 될 거야. 그리고 그건 내 글의 발전을 가져오게 될 거야. 그리고 등단이 중요한 건 아니야. 내 작품이 중요하지.
그렇게 발표해버리면 그 작품은 버리는 거야. 아깝지 않아? →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넌 작품을 왜 쓰는데? 유명한 문예지에 발표하려고 쓰는 거야? 결국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거 아냐? 이게 왜 작품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그런 잡지 누가 사서 보겠어? 지금 시중의 문예지들도 안 팔리는 판국에. 너 학비는 벌고 이런 생각하는 거야? → 팔려고 만드는 거 아냐. 돈 벌 생각도 없어. 종이 값만 받을 거야. 난 내 작품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을 뿐이고. 사람들의 생각자체에 변화를 주고 싶어. 이런 식으로 작품을 보여도 되는 거라고. 학비는 내가 알아서 해. 네 걱정 필요 없어.
그래도 난 내 생각을 꺾지 않았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해!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나의 작품 하나와, 뜻이 맞은 다른 이들의 작품 두 개가 실린 첫 언더그라운드 문예지가 나오게 되었다. 판매는 평소 알고 있던 동네의 바 몇 곳과 술집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결과는 참패였다. 발행부수 백 권 중 판매된 것이 스무 권 남짓, 공짜로 나누어준 것이 서른 권 남짓, 나머지 쉰 권은 집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자신의 작품을 나의 잡지에 게재하고 싶다고. 단지 글을 쓰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등, 그 장르는 다양했다. 그리고 다음호를 준비했다. 주변 사람들은 당연한 결과라며 나를 비웃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런 방식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문예지가 나왔다. 디자인을 해주는 사람이 생겨 책의 모습이 그럴싸해졌다. 작품들의 숫자도 늘어 여섯 편 가량의 작품들이 실렸다. 반응은, 좋았다. 발행부수 백 권 중 백 권 모두 소진되었다. 물론 공짜로 나누어준 것들까지 포함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적자였다. 상관없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게재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소규모 출판물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서점들에서도 연락이 왔다. 기존의 소규모 출판물들의 경우 미술 전시 공간, 또는 디자인의 새로운 작업 등의 대안방식으로 사용되어져 왔는데, 글은 신선하다는 평이었다.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재밌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의 글을 발표하느냐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일정 수준이 되지 않는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름이 분명히 있다고 믿었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깊이 있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과 가벼운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고, 그것들 중 어느 쪽이 더 못하다고 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그저 서로 다를 뿐이다. 독자들이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되는 것이다.
쭉…
1년을 넘게 언더그라운드 문예지를 만들고 판매해오고 있다.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한심하게 본다. 좋게 보는 사람들은 독려해준다. 나는 내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난 그들과 함께 간다. 현재 우리나라 문단의 시스템 속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작품을 발표하기란, 사실상 하늘의 별따기다. (그렇다고 되지 말란 법도 없지만.) 그래서 시스템 밖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그렇다고 등단을 하지 않겠다거나 그것이 싫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만이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고가 싫다는 것이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고. 그런 건 없다. 각자의 믿음대로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소설가고,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지, 등단을 한 사람이 소설가고 시인인 것은 아니다. 고로 난 소설가다.
김종소리∙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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